군급식, ‘폐쇄성’ 극복하고 ‘공공성’ 강화해야 발전한다

50년 묵은 국방부-농협 중심 폐쇄적 논의구조 극복해야

  • 입력 2021.08.08 18:00
  • 기자명 강선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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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강선일 기자]

지난 5일 경기도 포천시 가산면 마전리의 한 저장시설에서 경기도농수산진흥원 직원들과 친환경 농민들이 군급식에 납품할 마늘을 파레트 위에 쌓고 있다. 한승호 기자
지난 5일 경기도 포천시 가산면 마전리의 한 저장시설에서 경기도농수산진흥원 직원들과 친환경 농민들이 군급식에 납품할 마늘을 파레트 위에 쌓고 있다. 한승호 기자

진정한 군급식 개혁방안은 무엇일까? 국방부가 추구하는 민간위탁·경쟁입찰이 잘못된 대안임을 감안해도, 기존 국방부-농협이 함께 만들어 온 군급식 체계에 문제가 많았던 것도 부인할 순 없다. 군급식 발전을 위해 계속 농협만 바라보고 있을 순 없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결국 농민들의 주체적 조직화 노력 및 이와 연계되는 농민 참여 민·관협치 체계 마련, 농산물직거래법에 근거한 지자체의 적극적 개입 등이 요구된다.

국방부는 1970년 농·수·축협과「군 급식품목 계획생산 및 조달에 관한 협정」을 맺었다. △농·수·축협 통한 계획생산 체계 구축으로 지역산 먹거리의 안정적 공급 △지역산 먹거리 판로 확보 △군납 비리 근절 등의 목적으로 맺어진 이 협정은 농협 주도 군급식의 토대로 작용해 왔다.

그러나 지난 50년 세월 동안 협정의 원래 의도대로만 국방부-농협 합작 군급식이 진행된 건 아니었다. 그동안의 문제를 보면, 첫째로 농협이 계약생산과 생산자 조직화 역할을 맡긴 농민인 단지장들 중 일부가 원래 역할은 소홀히 한 채 비리행위를 저지른 사례를 들 수 있다.

대표적인 비리 사례로, 단지장이 지역민들의 농산물을 공급하는 대신, 가락시장 등 타 지역 도매시장에서 농산물을 구매해 군부대에 납품한 사례들을 들 수 있다. 2018년 10월, 경기도(지사 이재명)는 접경지역 군납조합 지정품목 납품실태 조사 보고서를 발표했다. 당시 보고서에 따르면, 경기 북부 접경지역 6개 시·군 14개 군납조합의 농산물 공급액 463억원 중 접경지역산 공급액이 130억원(28%)에 그친다고 밝힌 바 있다.

30~40년 남짓한 기간 동안 군납조합이 물품 공급을 독점한 채 단지장들에게 물량을 배분해 3~5%의 수수료를 챙기는 동안, 정작 지역 내 나머지 농민들은 제대로 군납에 참여하기도 어려운 시기가 있었던 것이다. 보고서가 발표됐던 시점에 접경지역 농민 9만8,000여명 중 군납에 참여하는 농민은 0.46%인 453명으로 드러난 바 있다.

뒤늦게나마 이 사실이 밝혀진 뒤, 경기도는 접경지역 군급식 개선에 직접 나섰다. 경기도는 2019년부터 도비 17억원을 활용해 ‘접경지역 친환경·일반농산물 차액지원사업’을 벌였으며, 이와 함께 접경지역 농가 생산자 조직화 교육에 나섰다.

한 농민단체 관계자는 “‘공식적’으론 단지장 비리문제는 근절됐다는 게 농협 입장”이라면서도 “일부지역에서 암암리에 단지장들이 여전히 타 지역 도매시장 물품을 받아 군부대에 공급한다는 이야기가 도는데, 향후 사례에 대한 점검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고 언급했다.

‘공식적’으로 단지장 문제는 해결됐다 하나, 아직 국방부-농협 공조하의 군급식 체계엔 해결되지 않은 문제가 남아있다.

특히 일부 군부대-지역농협 간 관계에서 노출되는 문제들이 있다. 군급식 문제를 분석한 한 비공개 보고서에선 “지금까지 군부대와 농협 담당직원만 농산물 필요물량 및 (그에 대한) 소통을 했”음을 지적하며, 그로 인한 두 가지 문제로 △농협 담당직원이 ‘을’의 입장에서 ‘갑’인 군부대 요구사항에 그대로 따르는 문제 △군급식 정보의 폐쇄적 성격으로 농협 담당직원이 물량배분의 전적 권한을 가지는 문제 등을 거론했다. 단지장 비리문제도 이러한 폐쇄적 소통구조 속에서 나타났다고 볼 수 있다.

또한 군급식 목적의 생산자 조직화를 위해선 물량정보가 필수건만, 농협과 군부대에선 물량정보가 중요한 정보이기 때문에, 또는 양자 계약 내용이기에 관련 정보 공유를 지역 농민에게 꺼린다는 점도 문제다.

따라서 이러한 폐쇄적 구조를 바꿔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경기도 군급식 참여농가 조직화 관련 교육을 맡았던 송원규 농업농민정책연구소 녀름 부소장은 “지역먹거리 협치체계를 통해 지역 농민과 군부대, 농협, 지자체 관계자 등이 함께 군급식 관련 현안을 논의하고, 적어도 해당 지역의 농산물 생산을 책임지는 생산자에겐 정보가 공유되는 구조가 만들어져야 한다. 그래야 안정적인 군납 공급체계 구축이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점차 변화의 조짐은 보인다. △지역 농민들의 주체적 생산자 조직화 노력 △지역먹거리의 군급식 공급을 위한 지자체 노력 △각 주체들 간의 민·관협치 체계 구축으로 지역산 농산물의 지역 군부대 공급을 점차 늘려가는 사례도 있다.

경기도 포천시에선 지난 4월 26일 지역 농민·지자체 관계자들이 함께 구성한 ‘접경지역 농·축·수산물 군납 품목지정 협의회(품목지정협의회)’를 통해 지역산 깐양파, 깐마늘(홍산마늘)을 추가로 군급식에 공급하기로 결정했다. 포천시는 품목지정협의회를 통해 농민과 지자체가 공동으로 군납 품목을 지정하는, 전국에서 몇 안 되는 지자체 중 하나다.

올해 포천시의 군납 품목은 사과·느타리버섯·감자 등 14개 농산물과 돼지고기·닭고기·계란 등 축산물 3개 품목으로 총 17개 품목이었는데, 4월 품목지정협의회에서 깐양파, 깐마늘이 추가돼 19개 품목으로 늘었다.

품목지정협의회에 참여하는 이대순 포천시친환경농업인연합회 회장은 “포천 품목지정협의회도 과거엔 농협 조합장들 일부만 참석하는 구조였으나, 지역 농민들의 생산자 조직 강화 노력과 적극적인 자치 참여 시도로 현재는 생산자·품목 대표 위주로 바뀌었다”며 “향후 농민들은 포천시 먹거리계획(푸드플랜)에도 적극 결합해, 군급식 등의 영역에서 지역 먹거리가 선순환할 수 있도록 만들고자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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