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배추 폭락에 농가 피해 속출

김치소비 위축이 폭락 부채질

산지수집상들 수확 포기 속출

농가는 잔금 미수금으로 울상

언론은 엉뚱한 ‘금배추’ 보도

  • 입력 2021.05.23 18:00
  • 기자명 권순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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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권순창 기자]
 

경남 의령군 부림면의 한 배추밭에서 수확 작업이 한창이다. 설 이전까지 지독한 폭락에 시달렸던 배춧값은 최근 다시 한 번 바닥으로 내려앉고 있다.
경남 의령군 부림면의 한 배추밭에서 수확 작업이 한창이다. 설 이전까지 지독한 폭락에 시달렸던 배춧값은 최근 다시 한 번 바닥으로 내려앉고 있다.

배추가격이 석달만에 다시 폭락하면서 봄배추 농가들이 피해를 입고 있다. 재배면적이 늘어난 데다 작황까지 좋아 피해는 앞으로 더욱 불어날 것으로 우려된다. 이런 가운데 유력 언론들은 엉뚱하게도 ‘배추 폭등’ 기사를 쏟아내 가뜩이나 쓰린 농민들의 속을 들쑤시고 있다.

배추는 지난해 고랭지배추 폭등의 반작용으로 가을부터 연초에 이르기까지 기나긴 폭락을 겪었다. 가격이 반등된 건 설 이후부터다. 1월 지독한 한파로 한순간에 월동배추 작황이 무너지자 10kg당 2,000~4,000원대를 전전하던 도매가격이 마침내 8,000~1만원대로 회복된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이 중국 ‘알몸배추’ 파동이다. 배춧값이 한창 올라오던 지난 3월, 절임배추를 다루는 중국의 비위생적 작업 영상이 국내에 퍼지면서 중국산·국산을 가리지 않는 김치 소비저하 현상이 나타났다. 당시의 수급상황은 지난해 고랭지배추처럼 10kg당 2만~3만원의 폭등이 일어났어도 이상하지 않다는 것이 업계의 중론이지만, 알몸배추 파동과 코로나19 재유행이 배춧값을 8,000~1만원대의 ‘정상 수준’으로 붙들어둔 것이다.

문제는 봄배추 출하와 함께 시작됐다. 극심한 공급부족에도 겨우 정상 가격을 유지했던 배추인지라, 물량이 그리 크게 늘어난 게 아닌데도 곧바로 폭락이 찾아왔다. 불과 봄배추 출하 초기부터 도매가격은 급락하기 시작, 이달 중순 이후 3,000~4,000원대 가격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봄배추 산지 분위기는 침울 그 자체다. 포전을 매입한 산지수집상들이 터무니없는 가격에 수확을 포기, 절반만 수확되거나 아예 통으로 방치된 배추밭을 곳곳에서 볼 수 있다. 김치공장 등에 고정가격으로 납품하는 일부 물량은 문제가 없지만, 일반출하 물량은 수확하는 족족 손해가 나는 상황이다.

의령군 부림면의 또 다른 배추밭. 작업비도 건지기 힘든 시세에 포전을 매입한 산지수집상이 한 필지의 절반만 수확하고 나머지 수확을 포기, 방치해둔 상태다.
의령군 부림면의 또 다른 배추밭. 작업비도 건지기 힘든 시세에 포전을 매입한 산지수집상이 한 필지의 절반만 수확하고 나머지 수확을 포기, 방치해둔 상태다.

포전거래가 이뤄졌다고 농민이 안전한 것도 아니다. 민간 계약재배는 보통 파종 전에 계약금 30%를, 정식 이후 30~40%를, 수확기에 나머지를 정산받게 된다. 상인이 수확을 포기하면 30~40%의 잔금을 정산받지 못할 뿐만 아니라, 비닐을 수거하고 밭을 정리하는 데 별도의 인건비와 노동력을 투입해야 한다.

경남 의령군 부림면에서 배추 2,700평을 재배하는 김주일씨는 “수확 이후 받아야 할 잔금이 800만원인데 그걸 하나도 못 받게 생겼다. 트랙터·인건비 등 제반 비용을 생각하면 1,000만원 이상 손해본 셈”이라며 “밭을 정리하고 빨리 모를 심어야 하는데 의욕이 나지 않는다”고 푸념했다.

같은 지역 배추농가 김진욱씨는 “농민들은 상인한테서 잔금을 받아야 수익이 생기는데 대부분 잔금을 못 받고 있다”며 “병해라든지 농사가 잘못됐다면 농민도 책임을 져야 하지만, 물건이 좋고 수급상황이 크게 나쁜 것도 아닌데 이런 일이 생기니 어이가 없다”고 말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올해 시설봄배추 생산량은 평년대비 7.3%, 노지봄배추 생산량은 16.1% 늘어날 전망이다. 경북·충청 등 아직 봄배추 출하지역이 많이 남아있어 피해는 더욱 길어지고 커질 가능성이 있다.

한편 이처럼 폭락이 심각한 가운데 일부 주류 언론들은 ‘배추 폭등’, ‘금배추’ 등의 엉뚱한 보도를 연달아 쏟아내고 있다. 이미 봄배추 출하기인 데다 월동배추 저장량이 거의 소진된 상황임에도 철 지난 월동배추 가격 분석자료(aT)를 단순 보도한 것이다. 더군다나 1월 폭락이 3월 정상회복한 것을 두고 ‘폭등’을 운운하면서 최근 한 달의 폭락 상황은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현장 농민들은 “산지폐기까지 거론되는 상황에서 도대체 어떻게 저런 보도가 나오는지 모르겠다”며 분노를 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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