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정적인 밀 생산기반 육성 “현장 목소리부터 들어라”

불확실한 판로 탓, 수매계약 안 되면 신품종 재배 꿈도 못 꿔

이모작 준비 바쁜데 수확 후 잔여물 활용 못 해 대다수 소각

  • 입력 2021.05.23 18:00
  • 수정 2021.05.23 18:05
  • 기자명 장수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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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장수지 기자]

안선권 햇살농축산영농조합법인 대표가 지난 18일 전남 장흥군 회진면 진목리 일대의 금강밀밭에서 밀 자급률 제고를 위한 의견을 피력하고 있다. 한승호 기자
안선권 햇살농축산영농조합법인 대표가 지난 18일 전남 장흥군 회진면 진목리 일대의 금강밀밭에서 밀 자급률 제고를 위한 의견을 피력하고 있다. 한승호 기자

 

“정부는 이전에도 몇 번이나 국산밀 자급률을 높여보겠다고 나선 전적이 있지만 농가와 업체에 생채기만 잔뜩 남겼다. 지난해부터 밀산업 육성법과 5개년 기본계획이 각각 시행되고 마련됐다지만 현장과 동떨어진 건 여전하다. 농가에서는 이러이러한 것들이 필요하고 당장 이런 문제부터 해결해야 할 것 같은데 괴리감 넘치고 뜬구름 잡는 것들뿐이다. 정말 자급률을 높이고 싶다면 현장 목소리부터 들어야 한다.”

지난 18일 전라남도 장흥군 회진면 진목리 일원에서 만난 안선권 햇살농축산영농조합법인 대표는 정부의 무관심 속에서도 묵묵히 ‘목숨 걸고 농사지어온’ 국산밀 재배 농가의 입장을 솔직히 대변했다.

지난해 11월 농림축산식품부(장관 김현수, 농식품부)가 발표한 제1차 밀 산업 육성 기본계획에 따르면 생산 분야 국내 밀 산업의 문제점은 △우수 품종 공급 부족과 품종별 최적 재배방법 미정립으로 인한 품질 차이 △이모작으로 인한 조기 수확 및 그로 인한 품질 저하 △가공적성 등 품질 평가 기준 부재 △타 작물 대비 낮은 소득으로 인한 재배면적 확대 지장 등으로 분석된다.

이에 농식품부는 ‘생산기반 확충 및 품질 고급화’를 기본계획 중점 추진방향 중 하나로 설정하고 △밀 생산단지 확대 및 재배안내서 보급 △보급종 공급체계 개선 △논활용직불금 개편 및 농작물재해보험 개선 등을 통한 생산 안전망 확충 등을 신규·보완 과제로 설정했다.

그러나 안 대표는 신품종 재배를 ‘안’ 하는 게 아니라 ‘못’하는 농가 속사정에 대해 우선 털어놨다. 요약하자면 새로 개발된 품종을 재배하기엔 판로에 대한 농가 부담이 크기 때문인데, 안 대표는 2017년 ‘백중밀’ 사태를 예로 들었다. 당시 2020년 자급률 5.1%를 목표로 내세운 정부는 생면용 ‘백중밀’ 재배를 적극 장려하고 품종 보급에도 박차를 가했다. 농가 역시 백중밀을 적극 재배했다. 농가에서 가장 많이 재배하는 금강 품종에 비해 붉은곰팡이병에 강하고 수량성까지 높기 때문이다.

하지만 소비가 가장 많은 국수류로 가공하기엔 백중밀의 단백질 함량이 낮아 적합하지 않았고 소비 부진에 생산과잉 악재까지 겹쳐 당시를 기준으로 국산밀 업계는 돌이킬 수 없을 만큼 큰 손해를 안았다. 그 피해는 아직까지도 업계 전반에 드리워져 있는 실정이다.

당시를 회상하며 안 대표는 “유통·가공 업체에 ‘백중밀은 받지 않습니다’라는 현수막이 내걸릴 정도였다. 업체에서 제분할 수 있는 물량도 한정적인데 소비까지 뒷받쳐주지 않았다. 업체가 수확한 밀을 받지 않을 경우 농가나 작목반, 법인 등에선 보관 창고를 직접 마련하고 팔렛트까지 일일이 임차해야 한다”라며 “수분과 병해충 등에 민감한 밀은 오래 보관할수록 비용은 많이 들고 품질은 안 좋아진다. 때문에 업체에서 계약할만한 품종만을 대부분 재배하는 것인데, 자급률 향상을 위해 생산기반을 육성하겠다는 의지가 있다면 가공·소비까지 고려한 품종 개발·보급은 물론 생산 농가를 대상으로 한 저장 창고 지원 등도 고려해야 한다”고 짚었다.

이어 안 대표는 생산단지 조성을 통한 종자순도 및 토양분석도 좋지만 붉은곰팡이병이나 최근 피해가 컸던 저온피해 경감 등의 재배기술 및 약제 개발·등록이 연구·실험을 통해 검증·확산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현재 적절한 진딧물·붉은곰팡이병 방제 약제가 없는 까닭에 안 대표와 법인·작목반 회원 등은 업체에 실험·제작을 의뢰해 만든 친환경 약제를 주문해 사용 중이다.

아울러 보급종 공급의 경우 “지난해 저온피해의 여파로 신청한 물량 20톤 중 5.5톤밖에 배정받지 못했다”며 농가가 원하는 수량을 적기에 공급할 수 있는 체계 마련이 시급한 과제라고 지적했다. 또 수매 가격보다 훨씬 비싼 종자 가격도 문제지만 지난해 가을 파종 시 사용한 국립종자원 보급 종자에 이종 작물이 다수 섞여 있었던 점을 지적하며 생산 관리 강화 필요성도 언급했다.

이밖에도 안 대표는 “보리 등 대다수의 맥류 재배 농가에서 수확 후 부산물을 활용할 방안이 전무하고 벼 이모작 준비에 바빠 ‘논 태우기’를 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정부에서 탄소중립 목표까지 설정한 만큼 농가에서 논을 태우는 대신 부산물을 조사료로 활용할 수 있게 장비나 기술 지원을 장려해주면 좋겠다”라며 “밀의 경우 건조된 상태에서 수확을 하기 때문에 일반적인 콤바인이 아닌 ‘범용 콤바인’을 사용하는데 사용료가 생산비에서 시간 대비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기 때문에 생산단지마다 기계를 지원·보조해주는 것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또 밀 자급률 높이자고 얘기만 할 게 아니라 현장에서 필요로 하는 것들을 정책에 반영하고 농민들이 판로 걱정 없이 열심히 농사지을 수 있도록 밀·보리 직불금 지급 등으로 소득까지 일부 보전해준다면 마늘이나 양파 등을 향한 쏠림 현상을 방지해 동계작물 가격 안정에도 크게 기여할 거라 예상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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