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 자급률 제고, 여전히 ‘갈 길 멀다’

  • 입력 2021.05.23 18:00
  • 기자명 장수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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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장수지 기자]

 

「밀산업 육성법」이 시행됐지만 1%에도 미치지 못한 국산밀 자급률 제고를 위해선 여전히 갈 길이 멀다. 지난 18일 전남 장흥군 회진면 진목리의 밀밭에서 이달 말 수확을 앞둔 금강밀이 잘 자라고 있다. 한승호 기자
「밀산업 육성법」이 시행됐지만 1%에도 미치지 못한 국산밀 자급률 제고를 위해선 여전히 갈 길이 멀다. 지난 18일 전남 장흥군 회진면 진목리의 밀밭에서 이달 말 수확을 앞둔 금강밀이 잘 자라고 있다. 한승호 기자

 

 

아침을 먹지 않는 기자는 지난 한 달 30일의 식사, 즉 60끼 중 밀 음식을 약 26끼 먹었다. 한 달간의 카드 사용 내역과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게시글 등을 통해 어림잡은 결과다. 짐작은 했지만 따지고 보니 충격적이다. 식사를 제외한 빵·과자 등의 간식까지 포함하면 기자의 밀 소비는 어쩌면 쌀을 뛰어넘을 수도 있을 거라 짐작된다.

밀은 ‘제2의 주곡’이라 불릴 정도로 국민들이 많이 소비하는 곡물이다. 농림축산식품 주요 통계에 따르면 2019년 기준 1인당 연간 밀 소비량은 31.6kg으로, 같은 기간 통계청 쌀 소비량 59.2kg의 약 53.4%를 차지할 정도다.

하지만 잘 알려져 있다시피 국민이 소비하는 밀의 99% 이상은 수입산이다. 사료용을 제외한 2019년 밀 자급률은 0.7%에 불과했다. 당장 기자가 지난달 먹은 밀 음식을 떠올려 봐도 ‘국산밀’ 혹은 ‘우리밀’로 만든 것은 없었다.

이처럼 수년간 우리나라 밀 자급률은 1% 내외를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서구화된 식습관이 보편화되며 국민 1인당 밀 소비는 빠른 속도로 늘었지만, 값싸게 공급되는 수입 밀과 1984년 정부의 수매제도 폐지 등의 여파로 국산밀 생산 농가를 비롯해 유통·가공업체 등 업계 전반은 존폐의 기로에 서 있을 만큼 그간 힘든 시기를 겪어왔다.

1984년 이후 국산밀은 사실상 ‘내놓은 자식’과 다름없었다. 민간 차원의 국산밀 육성 시도가 없지는 않았지만, 가격 경쟁력 면에서 수입산에 크게 뒤져 자급률 확대로까지 이어지진 못했다. 정부에서도 지난 2008년부터 수차례 목표치를 수정하며 국산밀 자급에 손을 뻗었지만 제대로 된 소비 진작 대책 없이 생산만 장려됐던 까닭에 생산 농가와 유통·가공업체는 넘쳐나는 재고로 되레 이전보다 더 큰 손해를 감내해야 했다. 국산밀 업계 전반에 드리워진 고충에 정부의 책임이 전혀 없다고 말하기 힘든 이유다.

2년째 계류됐던「밀산업 육성법」은 지난 2019년 8월 국회를 마침내 통과했다. 지난해 2월 육성법이 시행되고 농림축산식품부는 그에 따라 ‘제1차 밀 산업 육성 기본계획(2021~2025)’을 11월경 수립·발표했다. ‘지속가능한’ 국산 밀 산업 기반 구축을 위해 2025년 밀 자급률 5%, 2030년 10% 달성을 목표로 설정했으며, 5개 분야 14개 과제가 제시됐다.

주된 내용은 △생산단지 조성을 통한 ‘생산기반 확충과 품질 고급화’ △비축제도 운영을 골자로 한 ‘국산 밀 유통·비축 체계화’ △원산지표시제 도입 등을 담은 ‘대량·안정적 소비시장 확보’ △안정적 생산 작부체계 구축을 위한 ‘현장문제 해결형 R&D 확대’ △국산밀산업발전협의체 운영 등의 ‘국산 밀 산업계 역량 강화’ 등이다.

육성법 제정과 기본계획 마련 그 자체만으로도 적지 않은 의미가 있지만, 국산밀 생산 농가와 업계는 정부가 외치는 ‘2030년 밀 자급률 10% 달성’이 구호에 그치지 않으려면 보다 세부적이고 현장 중심적인 대책과 장기계획 등이 마련돼야 한단 입장이다. 5개년 기본계획과 올해 초 발표한 시행계획에 소비 확대 전략이 사실상 전무하다는 것 역시 상당한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국산밀 자급률 제고에 앞장서야 할 농림축산식품부 청사에서조차 기존 계약 기한 및 공공기관 우선구매 입찰 방식 등의 한계로 국산밀을 사용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은 분명히 반성해야 할 대목이다.

관세청에 따르면 지난해 밀 수입량은 처음으로 250만톤을 넘겼다. 사료용을 합치면 밀 수입량은 361만톤에 가깝다. 반면 지난해 밀 생산량은 1만2,000톤에 불과했다. 예상 못한 저온피해의 여파가 컸다지만 여전히 갈 길이 멀다는 의미로도 해석된다.

국산밀 자급률 제고는 식량주권 확립의 의미 외에도 가격 폭락을 반복하는 동계작물의 해법으로 작용할 여지 또한 크다. 이에 이제 막 발돋움을 시작한 국산밀 육성 정책이 보다 효과적으로 자급률 제고에 기여하도록 생산 농가와 유통·가공업체의 의견을 들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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