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민이 ‘농의 가치’ 배우는 다양한 방법

  • 입력 2021.05.14 11:28
  • 수정 2021.05.14 13:18
  • 기자명 한우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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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한우준 기자·강선일 기자]

지난 8일 개장한 인천광역시 연수구 소재 ‘이음텃밭’에서 젊은 부부 한 쌍이 아이들과 함께 밭을 가는데 전념하고 있다. 한우준 기자
지난 8일 개장한 인천광역시 연수구 소재 ‘이음텃밭’에서 젊은 부부 한 쌍이 아이들과 함께 밭을 가는데 전념하고 있다. 한우준 기자

‘순환’ 실천하는 도시농부 공동체, 인천도시농업네트워크

지난 8일 인천광역시 송도경제자유구역 한 부지에서 정식으로 개장식을 연 ‘인천 생태순환 이음텃밭’은 2020년 주민참여예산제도를 통해 제안된 공간이다. 인천광역시가 예산을, 도시개발회사가 부지를 제공했으며, 오랜 기간 도시농업 운동을 이끌었던 시민단체가 운영을 맡았다.

이 텃밭은 사실 도시의 개발이 순조롭게 이뤄졌다면 볼 수 없었을지도 모를, 유휴지를 이용해 조성된 임시 공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가가 높은 송도신도시의 한 켠을 일시적으로나마 자연친화적인 용도로 사용하기로 결정했다는 사실은 도시농업의 달라진 위상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시민들의 관심 역시 뜨거웠는데, 온라인 신청 시작 3분도 안 돼 적잖게 준비한 텃밭 부지의 분양이 모두 마감됐다.

12평 텃밭을 분양받은 ‘용담마을과 꿈수레(청학동 용담마을아파트 내 공동체)’의 김경희씨는 “단지 내 어르신들이 텃밭 가꾸기를 하며 공동체 생활을 하실 수 있도록 지원했다. 밭을 일구는 작업은 연세가 있는 분들이 하실 수 없어 젊은 사람들이 이렇게 하고 있다”라며 웃음 지었다. 어린 자녀 두 명과 함께 텃밭에 나온 이수연·김준년 부부는 “도시에서 아이들이 자연의 흙을 만지는 경험을 하기가 어렵기도 하고, 심고 수확하는 과정을 겪으면서 얻는 배움이 큰 도움이 될 것 같아 아이를 키우는 세 가구가 함께 신청하게 됐다”라고 말했다.

현재 도시농업 운동은 ‘전국도시농업협의회’를 구심점으로 대부분의 대도시에서 진행되고 있어 관심 있는 도시민 대부분 첫발을 내딛기 어렵지 않다. 이음텃밭 역시 인천 도시농업 운동의 결과물로, 운영을 맡은 주체는 지난 2007년 창립 이후 지금까지 인천을 넘어 도시농업의 전국적 확산에 기여했다고 평가 받는 사단법인 인천도시농업네트워크(대표 김충기)다. 인천도시농업네트워크는 단순히 도시에서의 경작과 수확만을 목적으로 하는 도시농부가 아닌 ‘농업의 다원적 가치’를 실천하는 도시농부의 양성을 주창한다. 이를 위해 주관하는 각지의 텃밭은 공동체를 구성해 생태적 농법으로 경작되며, 이를 뒷받침할 퇴비 자급·토종씨앗 보급·도시꿀벌 양봉 등의 활동도 곁들인다. 또한 이러한 가치를 앞서 실천하고 있는 농민들과의 교류도 매년 진행하고 있다.

그래서 이음 텃밭에도 도시농업 운동이 지향하는 바가 다양한 형태로 녹아있다. 텃밭 곳곳에 조성된 쉼터는 폐 팔레트를 재활용해 만들었으며 같은 방법으로 제작된 ‘퇴비간’ 역시 기존의 도시농업 공동체 텃밭에서 쓰이고 있던 다양한 퇴비저장소 사례 가운데 하나다. 쉼터 지붕은 빗물을 모아 농업용수로 사용할 수 있게끔 만들어 수도의 사용을 줄였다. 텃밭경작에 처음 참여하는 시민들도 자연스레 순환농업, 공동체농업을 실천하며 농업의 가치를 체감할 수 있도록 고안된 셈이다.

지난 8일 경기도 양평군 양서면에 위치한 천주교 서울대교구 우리농촌살리기운동본부의 ‘천주교 농부학교 실습농장’에서 도시민들이 고추 모종을 심는 방법 등을 농민으로부터 배우고 있다. 한승호 기자
지난 8일 경기도 양평군 양서면에 위치한 천주교 서울대교구 우리농촌살리기운동본부의 ‘천주교 농부학교 실습농장’에서 도시민들이 모종 등을 심고 있다. 한승호 기자

천주교 농부학교의 ‘토종씨앗 대물림’, 선후배 농사꾼을 잇다

도시를 벗어나 농업 현장에서 생태농사를 배울 수 있는 학교도 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우리농촌살리기운동본부(본부장 이승현 신부, 서울우리농)의 천주교 농부학교(농부학교)는 도시민에 대한 농사교육을 통해 생태농법과 토종씨앗을 대물림하는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2006년 시작된 이래 올해 14기를 맞이한 농부학교에선 시민들에게 생태농업의 철학과 농법을 가르치고, 시민들이 직접 농사짓는 공간을 마련한다. 올해도 4월 10일~6월 22일에 걸쳐 경기도 양평군 양서면 부용리의 천주교 농부학교 실습농장에서 12주차에 걸쳐 이론·실습교육이 진행되고 있다.

농부학교의 특징은 무엇일까? 우선 교육과정에서 철저한 생태농업, 토종씨앗 보전 철학을 시민들에게 교육하고자 노력한다. 가급적 토종씨앗으로 농사짓는 기조이며, 멀칭 또한 비닐이 아닌 신문지 또는 풀로 하게끔 교육한다.

토종씨앗 구하기가 어려운 상황에서 어떻게 토종농사 기조를 유지할까? 여기서 농부학교의 진가가 드러난다. 김선영 서울우리농 교육홍보팀장은 “선배 교육생들이 직접 농사지으며 채종한 토종씨앗을 후배 교육생들에게 물려준다는 점이 돋보인다”고 밝혔다.

한 해 농부학교가 끝났다고 관계가 단절되는 게 아니라, 농부학교 출신 선배들이 11월에 채종한 씨앗을 다음 기수에게 물려주고, 이후 기수 교육에 선배들이 결합해 교육도 함께 하는 식으로 관계가 이어진다는 게 김 교육홍보팀장의 설명이다. 졸업생들은 총동문회를 꾸려 분과활동도 활발히 하는데, 그중 하나인 ‘우리씨앗 주머니분과’는 토종씨앗 보전 활동을 진행한다. 이 같은 ‘토종씨앗 대물림’은 2013년부터 이어지는 전통이다.

선배들은 후배들에게 토종씨앗만 주는 게 아니다. 지난 8일 오전 양평 농부학교 실습농장에서 진행된 교육 때도 6개의 모둠마다 한 명씩 이전 기수 선배들이 ‘멘토’로서 함께했다. 이날 텃밭 관리에 대한 실습교육을 진행했던 가톨릭농민회 수원교구연합회 두물머리분회 농민 박정국씨도 농부학교 5기 졸업생이다.

농부학교는 졸업생들에게 어떤 걸 남겼을까. 박씨는 “과거에 대기업 다니다 10년 전 농부학교 교육받고 양평으로 귀농했다. 양평엔 나 외에도 대여섯 명의 농부학교 출신 농민들이 있다”며 “새로운 사람들과 함께 농사짓고, 내가 배운 걸 후배 교육생들에게 전수하는 과정이 보람찼다”고 말했다.

지난 7일 경북 상주시 외서면에 위치한 사회적협동조합 ‘상주다움’에서 진행된 ‘농사자립과정’ 교육에서 임성삼 천연농업영농조합법인 상무가 친환경 퇴비 제조법을 교육생들 앞에서 시연하고 있다. 한승호 기자
지난 7일 경북 상주시 외서면에 위치한 사회적협동조합 ‘상주다움’에서 진행된 ‘농사자립과정’ 교육에서 임성삼 천연농업영농조합법인 상무가 친환경 퇴비 제조법을 교육생들 앞에서 시연하고 있다. 한승호 기자

귀농인-지역민 연결하는 상주다움의 ‘정착돌봄’

지난 2009년 설립된 ‘상주공동체귀농지원센터’를 전신으로 하는 사회적협동조합 ‘상주다움’은 체험의 단계를 넘어 귀농·귀촌을 고려하는 이들이 눈여겨 볼만한 공간이다. 경북 지역은 물론이고 전국적으로 봐도 흔치 않은 사례로, 자주와 자립·자치를 표방하며 주민들이 스스로 운영하고 있는 귀농·귀촌교육 및 지역공동체 육성기관이다. 40여명의 조합원들이 공동체귀농지원센터와 더불어 서울특별시 도농상생 사업의 일환인 ‘서울 상주농장’을 위탁 운영하고 있다.

김승래 상주다움 상임이사는 상주다움의 정체성을 한마디로 ‘귀농·귀촌 희망자와 지역민을 연결하는 중간 매개체(플랫폼)’라 요약했다. 그는 “다른 지역도 실상은 대부분 마찬가지일 텐데, 저희가 살펴보니 정착을 이룬 분들은 지역민과의 관계망 구축에 성공한 경우가 많았다. 즉 ‘나도 이렇게 살면 좋겠고, 또 같이 살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정착하는 것”이라며 “그래서 귀농인들과 지역민들이 어울려 학습하는 사례를 만들었다. 창업이나 영농기술을 배우는 것도 필요하지만, 농촌에서 경제행위를 시작할 때 가장 중요한 건 사람들과의 관계라고 생각한다”라고 설명했다.

상주다움이 진행하고 있는 교육과정들을 살펴보면 그 생각이 어떻게 녹아있는지 알 수 있다. 한 예로 지난 4월 시작된 프로그램 ‘농사자립과정’은 총 10주 과정으로, 이주 준비를 마쳤거나 혹은 이제 막 농촌에 발을 들인 사람들을 대상으로 자급생태농사를 가르친다. 올해 참가자들은 대부분 상주로 이주한지 얼마 되지 않았거나, 아직 서울에 몸을 둔 채 농촌생활을 탐색하고 있는 예비 귀농인이다.

상주 서울농장이 갖고 있는 논과 밭을 활용해 친환경적 텃밭농사·논농사법을 배우는데, 토박이 생산자나 오래 전 정착에 성공한 선배 귀농·귀촌인이 교육을 맡는다. 예를 들어 텃밭정원농사 과정엔 외서면 봉강리 여성농민들의 자립생산자조직 ‘언니네텃밭 상주봉강공동체’의 생산자(김정열 상주시여성농민회 교육부장)가 나서는가 하면, 그 텃밭에 뿌릴 친환경 퇴비를 제조하는 실습은 지역 유기농업 농가들이 효율적 퇴비생산을 위해 꾸린 ‘상주천연농업영농조합법인’의 임성삼 상무가 맡았다.

임 상무는 “12년 전 출범해서 지금까지 문 안 닫고, 농민들이 자발적으로 출자해 생존한 제조영농법인은 우리밖에 없을 것”이라며 자부심을 드러냈다. 이렇듯 지역에 깊숙이 뿌리 내리는데 성공한 이들과 자연스레 조우하고 관계 맺을 수 있다는 것이 상주다움의 가장 큰 장점이다.

건강 문제로 남편 박종두씨와 함께 1년 전 서울에서 상주 함창읍으로 이주한 서은미씨는 “귀촌하면서 농사를 내가 지을 수 있을지 없을지 판단하고 싶은데 지자체엔 그런 교육이 없고, 요즘 많이 하는 ‘살아보기’ 같은 프로그램도 내가 원하는 내용은 아니었다”라며 만족감을 드러냈다. 곧 모서면으로 이주 예정인 박석찬씨도 “이것뿐만 아니라 ‘농촌생활기술학교’ 또한 여러 기술을 배우고 사람들을 만나며 자신감을 얻는데 도움이 됐다”라며 교육을 통해 농촌생활의 즐거움을 발견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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