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 주권을 확립하라

  • 입력 2021.04.11 18:00
  • 기자명 권순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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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권순창 기자]
 

지난 5일 경기도 연천군 청산면에 위치한 경기농협식품 김치가공공장에서 마스크와 모자, 위생복을 착용한 직원들이 100% 국내산 재료를 이용해 만든 김치를 포장재에 담고 있다. 경기농협식품은 HACCP 적용 및 ISO 22000 인증으로 최고 수준의 식품안전경영시스템을 유지하고 있다.한승호 기자
지난 5일 경기도 연천군 청산면에 위치한 경기농협식품 김치가공공장에서 마스크와 모자, 위생복을 착용한 직원들이 100% 국내산 재료를 이용해 만든 김치를 포장재에 담고 있다. 경기농협식품은 HACCP 적용 및 ISO 22000 인증으로 최고 수준의 식품안전경영시스템을 유지하고 있다.한승호 기자

때 아닌 중국의 ‘김치공정’이 우리 국민들의 심기를 건드리고 있다. 지난해 11월 중국이 자국의 절임채소 ‘파오차이(泡菜)’를 국제표준화기구(ISO) 규격에 등재한 걸 계기로 중국 관영매체와 고위공무원, 민간 누리꾼·유튜버들이 일제히 “김치는 중국 것”을 외치고 있다.

원인은 김치를 파오차이의 일종으로 여기는 중국인들의 잘못된 인식에 있다. 김치의 성질을 고려하지 않고 단지 자신들에게 친숙한 파오차이라는 이름으로 뭉뚱그려버린 것이다. 실제로 중국 내에서 김치를 유통할 땐 규정상 한국산 김치조차 반드시 파오차이라는 이름표를 달아야 한다.

김치와 파오차이는 본질부터 다른 음식이다. 파오차이는 끓인 물에 조미료·향신료를 넣고 채소를 담아 단순히 절이는 데서 그치지만, 김치는 배추를 소금에 절인 후 고추·마늘·생강·파·젓갈 등으로 양념하고 이들 양념을 통해 ‘발효’과정을 거친다. 중국이 김치의 단위당 세균 허용 수를 멸균식품인 파오차이 수준으로 설정하는 바람에 2011~2015년 한국김치의 대중국 수출이 막혔던 사례는 발효식품인 김치에 대한 중국의 몰이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우리나라는 이미 2001년에 ISO보다 까다롭고 공신력 있는 국제식품규격위원회(Codex)에 ‘Kimchi’라는 우리 이름으로 김치 세계규격을 등재했다. 결정적으로 중국이 ISO에 등재한 파오차이 규격에도 “This document does not apply to kimchi(이 문서는 김치엔 적용되지 않는다)”라는 단서조항이 명기돼 있다. 국제적으로는 확실히 한국의 김치와 중국의 파오차이가 구분되고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14억 인구를 가진 중국이 조직적으로 사실을 호도하고 있는 국면은 분명 부담스럽다. 종주국이라는 자부심에 취해 손을 놓고 있다가는 어느 순간 어처구니없게 종주국 타이틀을 뺏기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 이번 사태를 ‘동북공정’에 빗대 ‘김치공정’이라 이름붙이는 이유다.

사실 지금도 김치 종주국이라는 이름은 그 알맹이가 야금야금 사라져가고 있다. 한-중 FTA 체결 이후 우리나라의 중국산 김치 수입은 폭발적으로 증가, 이제는 연간 200만톤 소비량 중 30만톤을 중국에 의존하고 있다. 자가제조를 제외한 상품김치로 치면 절반이 중국산이며, 특히 식당에서 구입하는 상품김치는 90% 가까이가 중국산이다(세계김치연구소 추정). 우리 국민도 문제지만, 한국에 관광오는 외국인들이 먹는 김치는 대부분이 중국산인 것이다.

김치 수입은 무엇보다 농민들에게 직격탄을 날린다. 김치 10kg을 만드는 데는 20kg 이상의 배추와 2kg가량의 고춧가루·마늘·생강·쪽파·무 등 각종 농산물이 들어간다. 김치 수입이 늘어날수록 그 원료 농산물들이 폭락을 맞을 수밖에 없고 이는 모든 농산물 품목의 도미노 피해로 이어진다. 최근 한층 빈도가 잦아진 채소류 연쇄폭락에 30만톤까지 불어난 중국산 김치의 영향이 결코 작다고 할 수 없다.

중국산 김치는 일반적으로 멀건 색감과 무른 식감에 푸른잎이 없고 양념이 겉도는 특징이 있다. 품질 격차가 조금씩 줄어들고 있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국산엔 크게 못 미쳐 다수 소비자들이 기피하고 있다. 단지 맛 뿐이 아니라, 최근엔 ‘알몸 포클레인 김치’로 대표되는 중국산 김치 위생 논란이 대두, 국민건강을 직접 위협하는 문제로 떠올랐다.

김치공정, 농산물 폭락, 국민건강 위협. 그 하찮았던 중국산 김치가 우리나라의 문화·경제·보건을 한꺼번에 공격하는 무서운 적으로 다가오고 있다. 그동안 소관부처인 농림축산식품부조차 안일하게 대응했던 김치주권, 김치자급 문제를 이제는 범정부 차원에서 고민해야 할 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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