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정신문 한우준 기자]
경기도 안성시 고삼저수지(고삼지)는 농업용수 공급을 위해 지난 1963년 축조된 저수지로, 경기도 친환경농산물의 대표 생산지로 꼽히는 고삼면을 비롯해 안성의 많은 농촌에 농업용수를 공급하고 있다. 안성의 많은 저수지들 가운데서도 대표성을 지닌 곳으로, 그 면적이 무려 94만평에 달해 안성의 드넓은 평야에 걸맞는 규모를 자랑한다. 호수라는 호칭이 더 잘 어울리는 고삼지에선 매년 봄 수문이 열릴 때를 즈음해 풍년과 안전영농을 기원하는 통수식이 크게 열린다.
여의도보다도 조금 넓은 크기를 자랑하는 면적 덕에 고삼지는 시가 스스로 ‘안성 8경’으로 지정해 자랑하는 안성의 명소 중 한 곳이기도 하다. 가장 큰 매력은 ‘고요함’으로 이곳에선 도심 근처 유원지 수변에서 으레 볼 수 있는 휴게음식점의 무질서한 향연을 찾아보기 어렵다. 소위 그린벨트라 불리는 개발제한구역의 커다란 산물로, 태생이 농업용 저수지인데다 그 엄청난 둘레의 수변 대부분이 국유지인 덕에 상업구역이 거의 형성되지 않았다.
거기에 더해 고삼면은 농사짓기에 좋다는 분지 지형으로, 산세 속에 웅크린 고삼지는 시기를 가리지 않고 훌륭한 경관을 자랑한다. 특히 일교차가 심한 환절기가 되면 새벽녘마다 어김없이 피어오르는 대량의 물안개가 대단한 장관을 만들어낸다. 안개가 만들어내는 몽환적인 분위기는 가을철 들녘에도, 좁디좁은 둘레길에도, 수상좌대의 붉은 지붕에도 이색을 더한다.
“전국을 기준으로 보자면 고기가 많이 낚이는 편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조용한 게 좋아서 오신다는 분들이 많죠(유성재 새마을어업계 회장).”
이 거대한 양의 물을 품은 저수지를 돌보는 사람들은 지역조직인 ‘고삼면 새마을어업계’다. 일반적으로 어업계라고 하면 어로 혹은 뭍의 내수면에서 어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협동조합을 의미하지만, 이곳의 어업계는 저수지를 무대로 낚시터를 운영하는 사람들이 모인 공동체다. 본래는 농업을 영위하던 토착민들이 낚시업을 병행하기 위해 시작한 자생조직으로, 낚시 영업이 자리를 잡은 오늘엔 3대째 낚시터를 운영하는 집안도 있다고 한다. 고삼저수지가 축조된 뒤 이듬해 결성돼 55년이 넘도록 활동했으니 제법 유서가 깊다.
새마을어업계는 정식으로 한국농어촌공사에 임대료를 지불하고 이곳에서 영업할 권한을 갖는 한편, 이곳의 핵심기능이 농업용수 공급인 만큼 공사의 위탁을 받아 저수지 수변의 불법 행위감시 및 청소 등 기본적인 관리를 수행할 의무 또한 지닌다. 또 어업계는 주기적으로 토종 어류 치어만을 내보내 수상생태계를 위한 자구적인 노력도 병행하고 있다. 덕분에 어업계는 순수 관광객을 제외하고 낚시로 이곳을 찾는 연인원만 3만명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예전에는 말 그대로 그저 낚시를 목적으로 오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요즘은 낚시가 목적이 아니라 그냥 구경하고 놀러 오시는 분들이 많아요. 인식도 많이 달라져서 쓰레기도 많이 줄었죠(홍석호씨, ‘느티나무 좌대’ 운영).”
강태공들만 주로 찾았던 이 인공호수는 최근 여가 문화의 변화로 자연을 찾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캠핑’의 성지로도 꼽히기 시작했다. 서울 등 수도권 내 인구밀집 지역과 상당히 가까운데다, 최근에는 코로나19 확산으로 독립적으로 여가를 즐기려는 이들이 늘어나면서 차량을 이용해 캠핑을 하는 ‘차박’ 인구가 많이 찾고 있다. 한파의 기세가 조금이라도 누그러지면, 겨울철 평일에도 차량과 한 덩어리가 된 텐트 속에서 경관을 즐기는 사람들이 수변 곳곳에 보일 정도다.
도시에서 이곳을 찾을 때 굳이 ‘1박’을 하지 않아도, 낚시를 하지 않아도 수변의 경관을 누릴만한 거점 또한 있다. 저수지 남쪽 수변에 위치한 농촌 ‘꽃뫼마을’은 연꽃재배가 눈에 띄는 농촌체험마을로, 숙박시설과 체험장, 지역농산물판매장 등을 갖췄다. 마을과 인근에는 카페형 휴게소와 펜션 등 호수를 바라보며 쉴만한 장소가 곳곳에 조성돼 있다. 세 달 전엔 수변에 ‘어울림광장’을 준공한 것을 필두로 마을만들기 사업도 시작해 거점으로서의 가치를 더욱 높이려하고 있다.
안타깝게도 현재 고삼지의 앞날은 그리 밝지 못하다. 인근 용인에 반도체 공장을 새로 짓는 한 기업이 지난해 고삼지로 흘러드는 ‘한천’에 일 36만톤의 폐수를 방류하겠다는 계획을 밝히면서 일대 전체가 술렁이고 있다. 저수지의 물로 생업을 이어가는 고삼면 농민과 어업계, 지역 시민단체 모두 거센 반대 활동에 나섰지만 대기업의 거대한 손을 뿌리치기엔 역부족처럼 느껴진다. 언제고 자리를 지킬 것만 같았던 이 고귀한 가치를 지키기 위해선 안팎으로 더 많은 관심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