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종주국’이 밥 먹여 주나

  • 입력 2020.11.29 18:00
  • 기자명 권순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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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입김치를 막아내겠다는 농민들의 운동이 제주에서부터 시작됐다. 연간 30만톤을 넘어서기 시작한 수입김치는 김치의 원료가 되는 수많은 국산 노지채소들의 숨통을 틀어막고 여타 모든 품목에 도미노 피해를 유발하는, 농산물 만성폭락의 최대 원인 중 하나다.

하지만 비장한 농민들의 표정과 달리 정부의 얼굴은 천진난만하다. 농식품부가 주최한 제1회 김치의 날 행사는 국내 김치산업과 농민들이 닥친 절체절명의 위기를 직시하기보다 김치의 우수성과 향후 비전을 설파하는 데 치중했다. 지금까지 정부의 수입김치 대책만 봐도 스스로 할 일을 찾아 하기보단 농업계와 김치업계가 한참 동안 옆구리를 찔러 겨우 하나씩 나온 것들이다.

기자는 최근 국산김치와 중국산김치의 차이점을 취재코자 관련기관에 문의전화를 돌린 적이 있다. 그런데 농식품부 산하 연구기관 어느 곳에서도 그 차이를 대강조차 설명하지 못했다.

입맛이 예민한 사람이라면 국산김치와 수입김치는 단번에 구분할 수 있다. 수입김치는 대개 기분 나쁜 물컹한 식감에 젓갈의 감칠맛이 빠져 있으며 육안으로 봐도 희고 멀건 빛을 띤다. 하물며 그 원료와 제조법, 성분과 효능을 분석해 들어가면 분명 중대한 차이가 있을 터다. 하지만 공신력 있는 정부기관이 그걸 모른다 하는 이상 국산김치와 수입김치는 공식적으로 다른 점이 ‘없는’ 것이다.

세계 각국에서 김치의 인기가 높아지고 있다는데, 해외에 비싼 한국김치와 저렴한 중국산김치가 동시에 선보여질 때 우리는 한국김치가 더 뛰어난 점을 뭐라고 설명해야 할까. 단지 ‘종주국’이라는 설득이 통할까. 내수도 마찬가지다.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한 대아청과㈜의 블라인드 실험 결과 중국산김치가 한국김치보다 압도적인 선호도를 보였다. 이미 중국산김치로 입맛이 기울고 있는 아이들에게 우리는 뭐라고 교육을 해야 할까.

모든 것이 정부의 그릇된 인식에서 나오는 문제다. 단순히 ‘우리 김치 만세’라는 팔자 좋은 구호가 아니라 ‘국산김치의 궤멸적 위기’ 현상을 직시하고 ‘어떻게 하면 수입김치에 맞설 수 있을까’라는 현실적인 고민에 집중해야 정책도, 연구도 그에 맞게 나올 수 있다. 언제까지 종주국이라는 자부심 하나로 저 맹렬한 중국산김치에 맞설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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