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끝나지 않은 ‘비료담합’ 손해배상 소송

농민의 분명한 승리에도 여전히 과제 남아
집단소송제 확대·업계 자정 및 대책 마련 절실

  • 입력 2020.11.08 18:00
  • 기자명 장수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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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장수지 기자]

지난 2012년 2월 27일 [한국농정]이 게재한 만평. 한승호 기자
지난 2012년 2월 27일 [한국농정]이 게재한 만평. 한승호 기자

 

농자재 업계 담합으로 인한 농민들의 피해가 비단 비료에 국한돼 있지 않은 실정이다. 비료담합이 적발되기 이전과 이후에도 다양한 품목의 농자재 담합이 지속적으로 진행·적발됐으며, 이는 농민이 비료담합 손해배상 소송에서 승소했음에도 이후 농자재 업계 내 자정과 특단의 대책 마련이 필요한 이유기도 하다.

농림축산식품부와 공정거래위원회 등에 따르면 2011년엔 상토 판촉경쟁 제한 담합과 비닐하우스 등 농업용 필름 판매가격 담합을 적발해 제재한 바 있고, 비료담합이 적발·조치된 이후에도 트랙터·콤바인·이앙기 3종의 농기계와 배합사료 등의 가격 담합 사실이 확인되기도 했다. 상토와 농업용 필름, 농기계 담합의 경우 비료 담합 건과 비교해 그 기간과 규모가 상대적으로 작아 과징금이나 세간에 불러온 파장이 크지 않았으나, 2015년에 적발·확인된 11개 배합사료업체의 담합은 국내 배합사료 시장의 43%에 달하는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었던 만큼 그 여파가 적지 않았다.

공정위에 따르면 11개 배합사료업체는 2006년 10월부터 2010년 11월까지 총 16회에 걸쳐 돼지·닭·소 등 가축별 배합사료의 평균 인상·인하 폭과 적용 시기를 담합했다. 이에 공정위는 시정명령과 함께 773억3,400만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일부 배합사료업체들과 공정위 간의 ‘시정명령 및 과징금 납부명령 취소 소송’이 아직 진행 중이기는 하나 비료담합을 둘러싼 농민들의 손해배상 소송이 당시 한창 진행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배합사료담합의 피해자 격인 축산업계의 손해배상 소송은 이뤄지지 않았다.

일련의 농자재 담합이 손해배상을 위한 소송으로 진행되지 ‘못한’ 까닭은 법과 제도가 미비하다는 데 그 이유가 있다. 법조계에 따르면 현행법 상 담합으로 인한 피해는 소비자가 직접 피해 사실과 액수를 입증해 소송을 청구해야 배상받을 수 있다. 비료담합 소송을 대리한 법무법인 수륜아시아 측 설명에 따르면 개인인 소비자가 상품 가격에 영향을 미치는 시장 구조 및 거래 조건 등을 따져 담합으로 인한 피해 규모를 산출하는 일은 매우 어렵다.

또 현재로썬 집단소송제가 증권분야에만 적용되고 있어 이번 비료담합 손해배상에 소송인단으로 참여하지 않은 농민은 승소 판결이 났음에도 배상을 받을 수 없다. 집단소송제는 한 피해자가 가해자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면 다른 피해자들이 별도의 소송 없이 그 판결로 피해를 구제받을 수 있는 제도다.

이와 관련해 그간 소송을 대리한 송기호 법무법인 수륜아시아 변호사는 지난달 30일 판결 직후 “농민이 승소했지만 소송에 참여하지 않으면 실제 담합으로 인한 손해 배상을 받기 어려운 현행법 상 단체소송법 제정이 시급하며, 담합 사실 적발 시 공정위가 제품별 피해액을 직접 책정하는 등의 제도 개선이 뒤따라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공정위는 당시 비료담합을 적발한 뒤 “화학비료 시장에서 실질적인 가격경쟁이 활성화됨으로써 농민들의 비료가격 부담이 낮아지고 업계 전체의 경쟁력 강화에도 기여할 것”이라는 기대를 내비쳤다. 농협중앙회도 담합 적발 이후 “입찰담합과 관련해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점, 비료업계를 대신해 사과드린다”며 부당행위 방지교육 정례화 및 상시 모니터링 제도, 신고포상금 제도, 손해배상예정제 등의 입찰담합 사전·사후 방지대책을 발표한 바 있다.

하지만 박흥식 전농 의장은 지난 3일 국회 소통관에서의 기자회견을 통해 “여전히 농촌에는 농자재 업계 카르텔이 심각하다. 정부가 지원하는 농자재 가격은 정부 보조금을 받아 구입하는 것보다 현금으로 구입하는 게 60% 가까이 저렴하다”며 비료회사의 대농민 사과와 농자재 업계 자정, 현행 농자재 지원사업에 대한 정부의 법·제도적 보완을 촉구했다.

이에 이번 비료담합 손해배상 소송 결과를 반면교사 삼아 농자재 업계 및 관련 사업의 불합리함이 개선될지 농민들의 관심이 집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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