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원 한 장 거머쥐고 농민 1만8천여명이 뭉쳤다

한 달 안 되는 짧은 기간 동안 3천여명 1차 소송 참여

  • 입력 2020.11.08 18:00
  • 수정 2020.11.08 19:33
  • 기자명 장수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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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장수지 기자]

2012년 공정거래위원회의 비료업체 담합 사실 공표 이후 전국농민회총연맹은 농민 소송단 모집을 위해 신문에 광고를 싣는 등 집단소송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섰다. 한승호 기자
2012년 공정거래위원회의 비료업체 담합 사실 공표 이후 전국농민회총연맹은 농민 소송단 모집을 위해 신문에 광고를 싣는 등 집단소송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섰다. 한승호 기자

공정거래위원회가 13개 비료업체의 담합 사실을 적발·공표한 2012년 당시는 구제역 대확산과 쌀값 폭락, 한-미 FTA 발효에 이어 한-중 FTA 협상까지 진행돼 그야말로 아비규환이었다. 특히 쌀뿐만 아니라 대다수 농산물 가격이 하락해 농민들의 고충은 날로 커졌던 반면 비료가격 상승 폭은 당시 18.8%에 육박해 생산비 부담이 가중됐다.

이러한 시점에 1995년에서 2010년까지 16년의 기간 동안 담합으로 비료회사가 이익을 챙겼다는 공정위 발표가 나왔고, 전국농민회총연맹은 ‘16년 간 눈뜬장님처럼 빼앗긴 농민의 피땀을 되찾아야 한다’는 전국 농민들의 목소리에 힘입어 손해배상 소송을 결정했다.

당시 소송인단 모집·정리 등 실무를 도맡은 곽길자 전 전농 정책국장은 “처음 소송인단 모집을 공고할 땐 농번기라 농민들이 한창 바쁜 시기고 비료 구입 내역을 개개인이 증빙해야 해서 과연 많이들 참여하실까하는 걱정이 앞섰었다. 그런데 모집 공고가 나간 이후로 전국 각지에서 매일같이 서류가 밀려와 사무실 한 켠에 택배박스째로 쌓아두기조차 바쁠 정도였다”라며 “당시 농민들의 의지가 대단했던 만큼 소송인단을 모집한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예상했던 3,000명을 훌쩍 넘겼다. 2012년 3월 1차 소송인단과 소송을 제기했으나 전국 각 지역에서 꾸준히 참여를 희망해 당해 9월경 1만8,000여명을 대리해 법무법인이 소장을 접수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곽 전 정책국장은 덧붙여 “농민들의 소송 참여 열기가 뜨거웠지만 처음 시작할 때만 해도 소송을 제기해 과연 이길 수 있을지에 대해선 확신할 수 없었다. 소송에 참여한 농민들도 ‘언젠가 끝나기는 할지 배상을 받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면서 농민의 권리를 되찾는데 소소하지만 ‘보태겠다’는 마음으로 증빙자료를 구비하고 소송비용을 납부했다”고 전했다.

소송인 명단을 취합하고 증빙자료를 제출받은 이후로도 지난한 작업은 계속됐다. 담합이 워낙 오랜 기간 이어진 까닭에 담합 도중 비료 품목명이 바뀐 경우도 있었고 지역 농협별로 자료를 정리한 방식 등이 달라 당시 전체 소송인단 1만8,131명의 자료를 일일이 재구성하고 전산화해야 했다. 또 농민 개개인이 납부한 소송비용을 활용해 담합에 의한 손해 규모·금액 산정을 위한 경제전문가 연구용역을 의뢰하기도 했다. 이후 2016년 10월 요소비료 등의 가격이 기준보다 5~15% 높게 유지됐단 법원의 감정 결과가 나왔고, 원고와 피고가 손해배상 범위 등을 주요 쟁점으로 다투며 4년이 더 지난 뒤에야 1심 판결은 마무리될 수 있었다.

노주희 법무법인 수륜아시아 변호사는 “소송규모가 워낙 커 전국에서도 손꼽힐 만한 수준으로 전자소송 과정 중 사이트가 멈추거나 피고 측이 자료를 내려 받는데 오류가 발생할 정도였다. 입증자료를 모으고 정리하는 것 자체부터가 큰 난관이었는데 전농이 지역 농민회를 통해 역할을 잘 해주셨다”면서 “이번 승소는 농민을 모았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밝혔다.

한편 전농은 이번 비료담합 손해배상 승소 판결을 지역 농민회 보고대회 등을 통해 알리고, 구매금액별 배상액 정리에 돌입하겠단 계획이다. 오랜 기간 자료를 취합·정리하며 자료와 위임장 등이 누락되거나 소송인이 사망하기도 했으며, 배상 대상에서 제외되는 경우 등이 있었지만 전농은 법무법인과 합리적인 방안을 찾아 최종적으로 소송에 참여한 1만7,333명의 모든 농민에게 배상액을 제대로 분배하겠다는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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