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발표] 가격보장, ‘주요농산물 공공수급제 도입’으로 해결하자

  • 입력 2020.10.30 09:11
  • 수정 2020.10.30 09:48
  • 기자명 한우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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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한우준 기자·사진 한승호 기자]

지난달 27일 국회 의원회관 제1세미나실에서 열린 ‘농산물 가격보장을 위한 근본 대책을 세우자’ 토론회에서 이무진 전국농민회총연맹 정책위원장이 주제발표를 하고 있다.
지난 27일 국회 의원회관 제1세미나실에서 열린 ‘농산물 가격보장을 위한 근본 대책을 세우자’ 토론회에서 이무진 전국농민회총연맹 정책위원장이 주제발표를 하고 있다.

 

매년 농산물 가격 급등락 현상이 반복되는 가운데, 올해는 이상기후로 인한 작황부진이 심해 전년 대비 진폭이 더욱 크게 기록될 전망이다. <한국농정>은 지난 27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위성곤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전국농민회총연맹·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전국쌀생산자협회·전국양파생산자협회·전국마늘생산자협회·전국배추생산자협회와 함께, 농산물 가격보장을 위한 근본적 대책을 논의하는 공론장을 열었다.

 

가격보장, ‘주요농산물 공공수급제 도입’으로 해결하자<br>
이무진 전국농민회총연맹 정책위원장

올해 배추 가격은 작년 대비 240%까지 올라갔다. 2년 전에 양파 값이 폭락했을 때는 이것과 반대 상황이었다. 지난 2018년 8월 문재인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이 문제에 대한 근본적 대책마련을 지시한 적이 있다. 대통령이 변화를 요구했음에도 불구하고 농민들이 보기에는 우리나라 농정이 여전히 비교 우위적 경제논리로 농업을 바라보고 있고, 철학이 부재하며 여전히 정책에서 농민들을 소외시키고 있다. 또 생산에 대한 여러 가지 대책은 나오고 있지만 유통에 대한 문제는 놓치고 있다.

우리나라 농산물 가격의 가장 큰 문제는 최저치와 최고치의 격차가 굉장히 크다는 것이다. 이런 수준의 변동성을 가지고 있는 농산물을 어떤 대책으로 안정화시킬 것인가. 가격지수의 진폭이 미국은 133.9%, 일본은 18.1%인 반면 한국은 211%다.

농민들은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을 중심으로 농산물을 공공재로 보고, ‘주요농산물 공공수급제’를 통해 정부가 수매·비축을 진행하라는 요구를 해왔다. 재원은 WTO가 정한 AMS(감축허용보조금) 한도 약 1조4,900억원, DM(최소허용보조) 5조원 이내에서 충분히 가능하다.

또한 수입농산물에 대한 구체적인 관리 체계가 필요하다. 특히 김치의 경우 수입량이 가파르게 늘어나고 있는데, 이 경우 김치에 포함된 양념채소류는 가격을 안정시킬 수 있는 어떠한 방법이 없다. 위생 및 식물위생조치 신설, 검역절차 비관세 대응, 김치공장 국내산 배추 구입비용 지원 등으로 수입을 제한하는 조치가 특히 필요하다. 또 국내 농산물과 수입 농산물 모두 유통이력제를 의무화해 농산물이 어떻게 소비되는지 확인하고 대응할 필요가 있다.

아울러 채소가격안정제 확대를 요구한다. 현재 전체 생산량의 15% 수준이지만 어떤 품목은 5% 이내로 아주 낮다. 대상 품목 전체 생산량의 15%까지 확대해야 한다. 현실적으로 정부가 설정한 30%는 불가능할 것 같다.

미국 농업은 수출호황인 상황에서도 2014년 농업법 개정안에 최저가격보장제도의 역할을 하는 유통융자지원제도를 존치시켰고, 유럽연합의 경우에도 목표가격과 개입가격을 설정한다. WTO 출범 이후에도 세계 각국은 여전히 여건에 따라 가격지지정책을 시행중이다. 식량자급률이 OECD 최하위권인 우리나라도 가격지지정책이 매우 필요하다.

농민들이 가격지지 정책을 요구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농민들은 높은 가격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지속가능한 생산을 위한 ‘안정적 가격’이 유지되는 것을 바란다. 새로운 생산을 위해 전년도 가격을 기준으로 투자를 다 해놨는데 다음 해엔 폭락해버리면 그야말로 대책이 없다. 정부는 농민들이 주장하는 가격안정제도에 대해서 항상 과다하게 예산이 들고 WTO의 보조금 감축대상에 든다는 이유로 반대하고 있다. 이는 감축대상은 맞지만 허용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 WTO가 허용하는 정부조달 방식의 공공영역 공급으로 제도를 마련할 수 있다.

또 예산이 과다하게 필요하다고 얘기할 게 아니라 농업예산 비중 5%를 달성해 가격정책에 예산을 투입하려는 의지가 필요하다. 생산 과잉과 수급 불균형이 심화된다는 걱정도 조건이 다른 외국 사례를 일방적으로 적용해 나타나는 문제일 뿐이다. 전체 농산물 생산이 안정적이면 주산지를 무시하면서까지 한쪽으로 쏠릴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농민들이 제안하는 주요농산물 공공수급제는 정부의 공공급식 확대 및 지역 먹거리 순환 계획에도 부합한다. 주요 농산물 생산량의 20%를 계약재배 및 비축하고 15%는 공공급식에, 5%는 시장상황과 연계하며 처리할 것을 제안한다. 이에 맞춰 공공급식을 확대하고, 취약계층 꾸러미 사업 등 소비처도 늘려야한다.

정부조달 가격 관련해서는 하한선을 설정했으면 좋겠는데, 정부가 받아들이기 어려운 부분일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실제로 이런 제도를 시행하는 다른 나라도 있을 뿐더러 패리티(시장 가격과 생산비 사이 균형의 정도를 나타내는 지수) 지수를 활용해 새로운 방식으로 생산자·소비자 모두 만족할 수 있는 가격을 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수매비축 대상 선정에 있어서도, 농업과 농촌의 지속을 위해 상위 1%가 아닌 가족농을 중심으로 할 필요가 있다.

대상품목은 10대 주요 농산물을 우선적으로 시행했으면 한다. 쌀이 포함돼야 하는 것은 당연하고, 밀과 콩은 자급률이 너무 낮아서 정부도 고민하는 품목이다. 7대 수급채소(무·배추·고추·마늘·양파·대파·당근)는 가격변동이 너무 크고 정치적 이해관계까지 얽혀있다. 10대 품목은 2018년 농림업 생산액 가운데 26.7%를 차지하고 있고. 면적으로는 전체 경지면적의 58.6%를 차지하고 있다. 규모는 생산량의 20%로 주곡은 전국 모든 농가를 대상으로, 채소류는 주산지별 3ha 미만의 농민과 계약하되 가족농의 규모를 새롭게 설정해서 그 기준에 맞춰가야 한다.

물론 수입농산물 관리도 병행돼야 한다. 우리 밀의 자급률이 0.98%인데 수입농산물 관리를 포기한 상태에서는 절대 자급률을 높일 수 없다. 계약재배, 정부비축, 공공급식 확대로 공정가격이 실현되고, 생산기반이 안정되며 식량자급률 향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중요한 건 재원 조달이다. 너무 많은 돈이 들어가면 불가능하겠지만, 구입한 물량을 다시 공급하는 방식이기 때문에 애초 들어간 비용 자체가 없어지는 게 아니라 시장 가격과의 차액지원 정도만 정부 지원을 필요로 한다는 점이 중요하다. 예산과 관련해서는 깊이 있는 고민이 필요한 부분이 있는데, 안정적인 제도 유지를 위해서는 기금이 마련돼야 한다. 예를 들면 마늘, 대파는 생물도 있지만 가공용이 많다. 가공 판매를 통해 수익이 창출되면 기금을 통해 그 수익을 적립하고 제도에 활용할 수 있다.

다른 제도와의 관계를 보면, 정부가 채소생산안정제의 목표를 전체 물량의 30%로 보고 있지만 2021년 목표가 17%에 그치는 것을 보면 현실적으로 20%를 넘기 어렵다고 본다. 농협 자체 계약재배 사업은, 농협이 모든 위험부담을 안고 간다는 특성 때문에 생산안정제에 비해 농협의 선호도가 낮아서 아무리 늘려도 생산량의 10%를 넘기기 어렵다. 그럼에도 공공수급 비축 20%가 더해진다면 총 생산량의 50%를 공공영역에서 유통 가능해지고, 여기에 상대매매 등의 활성화로 유통단계 축소까지 더해지면 가격 변동성을 크게 줄일 수 있다.

농산물 가격 정책은 이제껏 농민의 목소리가 배제되고 관료와 학자 중심으로 설계됐고, 농민들은 현실적이지 않다며 정책을 외면해왔다. 이 제안은 전농이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및 쌀·마늘·배추·양파 생산자단체, 농업농민정책연구소 녀름과 함께 ‘농산물 가격보장 TF’를 구성해 6개월 동안 함께 고민한 내용이다. 비록 거칠 수 있으나 이에 대해 좀 더 많은 고민과 합의가 진행됐으면 좋겠다. 농민들의 제안이 농산물 가격 변동성을 줄이는 데 조금이나마 역할을 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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