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상물가 비상’ 호들갑, 그 경박함

장마철 농산물 폭등 기사 난무
불과 열흘 만에 가격 원상복귀
일부 언론은 아직도 폭등 보도

  • 입력 2020.09.06 18:00
  • 기자명 권순창 기자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국농정신문 권순창 기자]

이슈가 됐던 채소들의 8월 일평균 최고 도매가격과 지난 3일의 가격. 폭락에서 정상가격으로 회복할 땐 ‘200% 폭등’, ‘300% 폭등’ 기사가 도배되지만, 폭등에서 정상가격으로 회복할 땐 ‘반토막’, ‘3분의1토막’은커녕 ‘원상복귀’라는 사실보도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 자료출처: aT 농산물유통정보
이슈가 됐던 채소들의 8월 일평균 최고 도매가격과 지난 3일의 가격. 폭락에서 정상가격으로 회복할 땐 ‘200% 폭등’, ‘300% 폭등’ 기사가 도배되지만, 폭등에서 정상가격으로 회복할 땐 ‘반토막’, ‘3분의1토막’은커녕 ‘원상복귀’라는 사실보도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 자료출처: aT 농산물유통정보

경기 부천에 사는 김정희씨는 지난 2일 시장에 장을 보러 가서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사방팔방에서 쏟아지는 ‘밥상물가 비상’ 기사에 큰 지출을 각오하고 집을 나섰는데, 생각보다 너무 저렴한 채소 가격에 어리둥절할 뿐이었다.

지난달 상순까지 이어진 장마와 집중호우는 농촌에 막대한 피해를 안겼다. 벼·과수·채소 할 것 없이 광범위한 피해를 입었으며 이로 인해 소비자 물가체감도가 높은 채소류의 가격이 일시 상승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애당초 밥상물가를 운운할 상황은 아니었다. 시기상 마늘·양파는 이미 수확이 끝나 창고에 들어가 있고, 배추·무는 강원도 고랭지 재배철이라 직접적인 피해를 비껴갔다. 가격이 오른 품목은 대개 재배기간과 출하주기가 매우 짧은 엽채·과채류에 국한됐다. 당장 작황이 무너졌더라도 2~3주 안에 정상 회복이 될 것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다.

이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농업전문지를 제외한 거의 모든 매체들은 일제히 ‘밥상물가 비상’이라는 기조의 기사를 도배했다. 일부 유력 언론들은 추석 물가와 김장 물가까지 우려하고 나섰다. 당시 추석이 2개월 가까이나 남았던 데다 김장배추는 파종조차 이뤄지지 않은 시점이라 농업을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혀를 찰 수밖에 없었다.

예견했던 대로 지금은 거의 모든 채솟값이 완전히 제자리를 찾았다. 가격이 상승했던 기간은 불과 열흘에서 보름 정도였다. 다수 언론이 폭등 대표품목으로 꼽았던 청상추는 지난달 중순 6일 동안 4kg당 6만원대의 도매가를 기록하고는 22일부터 급락하기 시작, 현재 2만원으로 내려앉았다. 평년보다 오히려 1만원 이상 낮은 시세다.

대파·깻잎·얼갈이배추 등의 가격도 열흘 만에 반토막나면서 평년수준 혹은 그 이하로 회귀했고, 20개 기준 7만원까지 뛰었던 애호박 도매가격은 최근 2만원을 찍었다. 소매가격 ‘개당 4,000원’으로 폭등의 상징이 됐던 애호박이지만 최근엔 인큐 개당 1,000원, 비인큐 3개 2,000원에까지 거래되고 있다.

후발 가격상승이 우려됐던 배추·무도 예상보다 작황이 건재하다. 최근 고랭지배추 10kg 도매가는 2만원 내외로 평년보다 조금 높은 수준이며, 고랭지무 또한 평년대비 가격수준이 배추와 비슷하다. 그 외 토마토·오이나 호우피해를 정통으로 입은 고추의 가격이 높게 나타나고 있고, 반면 양배추·시금치 등은 평년 미만으로 가격이 떨어졌다.

장마·호우기간 쏟아졌던 ‘밥상물가 비상’ 보도들은 대중매체들이 얼마나 농업에 무지하며 깊이 들여다보려 하지 않는지를 다시 한 번 입증했다. 일부 언론들은 채소류 가격이 제자리를 찾은 9월 초 현재까지도 사실을 확인하지 않은 채 같은 내용의 기사들을 양산하고 있다. 소비자들의 구매심리를 위축시키는 무성의한 보도들이 호우에 큰 타격을 입은 농민들의 가슴을 이중으로 짓누르고 있다.

저작권자 © 한국농정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