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고은정·우춘홍 간장협회 준비위원회 공동위원장

“대기업이 차지한 간장이라는 이름, 이제 되찾아야”

  • 입력 2020.08.30 18:00
  • 수정 2020.08.31 10:18
  • 기자명 박경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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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박경철 기자]

비발효 유사간장으로 불리는 산분해간장. 일제시절 염산으로 식물성단백질을 분해해 만드는 방식을 답습해 식민지 유산이라는 비판을 받지만 시판 혼합간장에 섞여 지금도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생산되고 있다. 간장협회 준비위원회가 8.15 광복절을 기념해 지난 15일 전개한 산분해간장 추방 캠페인이 주목을 받은 이유다. 이제는 대기업이 차지한 간장이라는 이름을 되찾아야 한다는 게 간장협회(준)의 목소리다. 간장협회(준)는 앞서 지난 6월 전국의 한식간장 제조자와 장 담그기 강사 70여명이 한식간장 진흥에 뜻을 모아 발족했다. 지난 24일 간장협회(준) 공동위원장인 고은정 우리장 아카데미 원장과 우춘홍 아미산쑥티된장 대표를 전북 남원시 산내면 ‘맛있는 부엌’에서 만나 우리 간장에 대한 목소리를 확인했다.

고은정 우리장 아카데미 원장(오른쪽)과 우춘홍 아미산쑥티된장 대표가 간장협회 준비과정에 대해 설명하던 중 밝게 웃고 있다. 한승호 기자
고은정 우리장 아카데미 원장(오른쪽)과 우춘홍 아미산쑥티된장 대표가 간장협회 준비과정에 대해 설명하던 중 밝게 웃고 있다. 한승호 기자

- 간장, 무엇이 문제인가?

고은정: 우리나라 간장은 애초에 ‘간장’ 하나다. 예전엔 초가삼간부터 구중궁궐까지 모든 집에서 다 장을 담갔다. 장맛은 대물림되며 점점 더 좋아졌다.

하지만 일제 강점기 시절 부산, 마산지역에 공장을 지어 전쟁을 대비해 적은 비용으로 빠르게 많은 양을 만들기 위한 산분해간장을 썼다. 이를 왜간장이라 부르며 간장은 크게 두 갈래가 됐다. 왜간장과 조선간장이다. 산업화 이후 업체들이 조선간장이라는 이름을 빼고 국간장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조선간장을 쓰면 왜간장이라는 그림자가 따라 붙어서다.

이후엔 1960년대 정부가 아파트를 짓기 위해 단독주택을 없애야 하니 장독대를 없애라고 했다. 실제로 와우아파트가 무너졌는데 옥상에 있던 항아리들 때문이라는 발표도 있었다. 이렇게 장을 담그는 사람들이 사라졌다. 그리고 그 자리엔 대기업 간장이 자리를 잡았다.

우선 대기업에서 나오는 일본식 간장이 간장이 아님에도 간장이라고 불리고 있는 게 문제다. 또한 많은 사람들이 간장을 미역국 끓이는 용도로만 알고 있는 점도 심각하다. 일련의 과정 속에서 사람들이 시판 간장에 익숙해지며 우리 음식이 사라졌다. 일본식 간장, 된장이 들어간 된장국과 찌개, 잡채를 하면서 한식이라고 할 수 있을까? 언어를 잃어버리면 민족의 얼을 잃는 것처럼 우리 음식을 잃으면 우리를 잃는 것이다. 한식간장을 지켜 간장이라는 이름을 되찾고 우리 음식도 이어가야 한다.

우춘홍: 전통을 살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최소한 우리가 무엇을 먹고 있는지 알고는 먹는 게 기본이다. 우리가 어떤 재료로 만든 무슨 장을 먹고 있는지를 알면 선택도 뒤따를 것이다.

- 간장협회 준비 배경은?

고은정: 대기업이 자본으로 간장 시장을 장악한 상황에서 전통의 방식으로 장을 만드는 한식 장류 업체는 지자체 등의 도움 없이 자생이 어려운 상황이다. 한식간장 제조자들이 하나로 엮여 제대로 된 지원 아래 전통 장류에 대한 정보를 소비자들에게 제공하고, 이에 기반한 조리방법까지 널리 알려내 전통의 이음과 더불어 이분들이 살아남을 수 있도록 돕고자하는 의도다. 또한 한식간장 제조자들만으로는 어려움을 겪을 수 있어 장 담그기 강사들이 함께 해 간장협회(준) 사업에 활력을 불어넣으려 한다.

우춘홍: 장 담그는 사람들은 생존에 급급하다보니 우리의 목소리를 내기 어렵다. 장 담그기 강사들의 도움으로 한식 장류 업체들의 목소리를 내보려 한다. 이런 활동은 한식간장 제조자들이 더 좋은 장을 만드는 과정이 될 것이다.

- 강조하고 싶은 얘기는?

우춘홍: 우리는 체험 속에서 알고 있다. 소비자들이 시간을 들여 전통 장류를 소비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하지만 한식 장류 업체들이 소규모 업체다 보니 아직까지 신뢰성에 물음표가 붙는다. 간장협회(준)라는 우산아래 모인 제조자들이 제대로 만들고 있다는 믿음을 더 세워가는 것은 앞으로의 과제다.

한편으론 사실 겁도 난다. 대기업으로부터 해코지를 당할 수도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그래도 누군가는 해야 될 일이라고 생각한다.

고은정: <한국농정>을 통해 발간한 책이 ‘장 나와라 뚝딱’이다. 장 담그기가 라면 끓이는 것보다 쉽다. 내 손으로 장을 담그고 음식을 만들어 먹으면 스스로 자부심이 생기면서 대기업으로부터 독립된 식생활을 할 수 있는 힘이 생긴다. 장을 담그는 사람이 사라진 것처럼 밥을 할 줄 아는 사람이 사라질 수 있다. 삶에 있어서 자기가 먹는 밥 한 끼 정도는 해먹을 수 있는 사람이 돼야 한다. 그 기본이 장이다. 담가 먹자. 못 담가 먹으면 적어도 한식 장류 업체에서 사 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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