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 기만하는 시판 간장의 민낯

염산으로 분해한 산분해간장
간장 탈 쓰고 소비자 식탁에

  • 입력 2020.08.30 18:00
  • 수정 2020.08.30 18:55
  • 기자명 권순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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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권순창 기자]

서울 소재 한 대형마트의 간장 코너. 진간장·국간장·양조간장 등 다양한 이름의 간장 제품이 진열돼 있다.
서울 소재 한 대형마트의 간장 코너. 진간장·국간장·양조간장 등 다양한 이름의 간장 제품이 진열돼 있다.

오늘날 시중에는 불필요하리만치 다양한 종류의 간장들이 진열돼 소비자들을 혼란케 하고 있다. 하지만 그 실체는 생각보다 간단하며 소비자들이 조금만 들여다보면 원하지 않는 제품을 피해 구매할 수 있다.

우선 한눈에 확인할 수 있는, 라벨상의 제품명을 살펴보자. 조선간장이나 양조간장 같은 이름은 업체들이 제조방식을 홍보하기 위해 붙인 것이다. 일반적으로 조선간장은 콩메주를 사용해 전통 방식으로 만든 간장이고, 양조간장은 탈지대두에 밀 등을 혼합해 비교적 짧은기간 발효시킨, 단맛이 도는 일본식 간장이다.

진간장·국간장·맛간장 등은 단순히 용도에 따른 구분이다. 국에 넣어도 색이 잘 나지 않을 정도로 연한 간장이 국간장, 그 반대가 진간장이며 조미성분이 보다 많이 들어간 것이 맛간장이다. 모두 그런 것은 아니지만, 조선간장·양조간장처럼 구태여 제조방식을 홍보하고 싶지 않은 제품들에 이런 이름을 붙이는 경향이 있다.

제조방식을 확실히 알고 싶다면 라벨 앞면의 제품명이 아닌, 뒷면의 ‘식품유형’을 보면 된다. 우리나라 간장 식품유형은 한식간장·양조간장·산분해간장·혼합간장의 네 가지다. 극소수(0.1%)의 효소분해간장도 있지만 논외로 한다.

한식간장과 양조간장의 제조방식은 각각 앞에 설명한 조선간장·양조간장의 제조방식과 같다. 비록 수입산 콩을 사용하고 각종 첨가물이 들어갈지언정 이들 한식간장과 양조간장은 발효를 통해 만든다는, 간장으로서 최소한의 정체성을 갖는 제품이다.

시판 간장제품의 라벨 뒷면을 유심히 보면 간장의 제조방식을 알 수 있다. 이 제품의 ‘식품유형’은 양조간장과 산분해간장의 혼합을 뜻하는 ‘혼합간장’이고 그 혼합비는 5대 95다.
시판 간장제품의 라벨 뒷면을 유심히 보면 간장의 제조방식을 알 수 있다. 이 제품의 ‘식품유형’은 양조간장과 산분해간장의 혼합을 뜻하는 ‘혼합간장’이고 그 혼합비는 5대 95다.

문제는 산분해간장이다. 산분해간장은 탈지대두를 염산으로 강제 분해한 뒤 탄산수소나트륨을 넣어 그 산성을 중화시키고, 각종 조미료·색소·방부제를 첨가해 만든다. 원료에 콩 성분이 들어갔다는 걸 제외하면 간장과 아무 상관이 없는 화학 조미액이다. 혼합간장은 양조간장에 산분해간장을 혼합한 제품인데 산분해간장 함량이 제품별로 70~95%에 달한다. 마찬가지로 사실상 ‘간장’이라는 범주를 벗어났다고 볼 수 있다.

업체들은 진간장·국간장이라는 이름표 뒤에 산분해간장이라는 얼굴을 숨긴다. 전통간장의 제조기간이 최소 10개월인 데 반해 산분해간장은 2~3일이면 충분하다. 제조비용도 양조간장의 56%, 한식간장의 28%에 불과하다. 대다수 간장 제조업체들의 주력이 산분해간장으로 굳어져 있는 가운데 업체들이 나서 산분해간장의 존재를 알릴 필요는 없다.

정보의 은폐는 소비자들의 선택권 상실로 이어진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018년 간장 유형별 판매량 비중은 혼합간장 55.4%, 산분해간장 23.9%, 양조간장 18.7%, 한식간장 2% 순이다. 혼합간장의 70~95%가 산분해간장임을 감안하면 우리 국민들이 먹는 간장의 약 70%가 산분해간장인 셈이다. 국민들이 스스로 원해서 산분해간장을 70%나 섭취했다고 보기엔 무리가 있다.

안전성 문제도 있다. 산분해간장 제조과정에서 탈지대두에 남아있던 지방산이 염산과 반응하면 ‘3-MCPD’라는 화합물을 만들어내는데 이는 국제적으로 인체발암가능물질로 분류돼 있다. 우리 정부는 최근 산분해·혼합간장 내 3-MCPD 허용기준을 0.3ppm에서 0.1ppm으로 강화했고, 2022년까지 EU 수준인 0.02ppm으로 규제할 계획이다. 하지만 아무리 안전이 보장된다 한들 평생을 먹어야 하는 것이 간장이고 보면, 그 취사선택은 소비자가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핵심은 대다수의 소비자들이 산분해간장의 존재 자체를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 식약처가 혼합간장의 산분해간장 비율을 제품 라벨 앞면에 표시하도록 고시 개정을 추진했는데 간장 제조업체들의 반발로 진행이 늦어지고 있다. 표시제가 시행되기 전까지, 현재로선 라벨 뒷면에 작은 글씨로 된 ‘식품유형’을 확인하는 게 소비자가 간장의 제조방식을 식별할 수 있는 방법이다. 만약 한식간장이나 양조간장을 고르려 해도 GMO와 첨가제가 꺼림칙하다면, 국산콩을 사용하는 작은 업체들의 제품을 구매하거나 혹은 직접 장을 담가보는 것도 대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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