댁의 간장은 안녕하십니까

  • 입력 2020.08.30 18:00
  • 기자명 권순창 기자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국농정신문 권순창 기자]

지난 24일 전북 남원시 산내면 ‘맛있는 부엌’ 앞마당에서 고은정 우리장 아카데미 원장이 장독대에서 다년 간 숙성된 간장을 국자로 떠 맛보고 있다.한승호 기자
지난 24일 전북 남원시 산내면 ‘맛있는 부엌’ 앞마당에서 고은정 우리장 아카데미 원장이 장독대에서 다년 간 숙성된 간장을 국자로 떠 맛보고 있다.한승호 기자

옛날 우리 할머니들은 모든 음식의 간을 간장으로 맞추셨다. 나물무침, 죽, 뭇국 … 지금은 대개 소금으로 간을 하는 음식들에도 어디 한 군데 간장이 빠지지 않았다. 말 그대로 ‘간’을 하는 데 쓰는 ‘장’, 그것이 바로 간장이다.

간장은 여전히 우리에게 중요한 조미료다. 각종 조림·볶음·무침·찌개류를 비롯해 양념장을 만들 땐 간장이 필수며 비빔밥에 두르는 것도 간장, 부침개를 찍어먹는 것도 간장이다. 콩을 발효시켜 시간이 지날수록 깊은 맛을 내는 간장은 같은 짠맛이라도 소금과는 전혀 다른 풍미를 간직하고 있다. 우리가 먹는 거의 모든 음식의 기초가 되는 독특한 풍미의 재료. 때문에 간장은 한식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중요한 요소이기도 하다.

장을 담그는 문화는 우리 민족의 거대한 동질성이면서 개별 가정의 독창성이기도 했다. 집집마다 특색 있는 맛을 자랑하는 장은 누대에 걸쳐 전승되고 혼인이나 교류를 통해 융화하면서 점점 발전하고 완성돼왔다.

그러나 일제강점기와 산업화를 거치면서 우리는 우리의 장을 대거 잃어버렸다. 어느 집을 가든 볼 수 있었던 장독대가 하나 둘 사라져갔고 그 공백을 공장제 장류 제품이 메웠다. 우리 음식의 뿌리, ‘집밥’의 뿌리를 기업들에게 맡기게 된 것이다.

기업에 내맡긴 우리의 간장은 안녕할까. 썩 그렇지가 않은 것 같다. 단지 수입산 GMO 콩의 문제가 아니다. 염산으로 콩찌꺼기를 녹여 만든 정체불명의 화학조미액이 간장이라는 이름을 달고 시장을 점령했다. 그 맛 또한 단맛이 대거 가미돼 왜색을 띠고 있다. 정작 일제강점기에 우리나라에 이 가짜 간장을 전파한 일본에선 가짜 간장을 찾아보기 힘들다 하니 통탄스러운 일이다.

간장이 없으니 된장이 만들어질 리가 만무하다. 시판 공장제 된장은 대개 콩메주를 으깨는 대신 탈지대두 등을 띄우는 방식으로 만들어져 역시 일본의 ‘미소’에 가까운 맛을 낸다. 이와 별개로 시판 고추장 역시 전통 발효식품이 아닌 ‘고추장맛 페이스트’라는 오명을 뒤집어쓴 지 오래다.

장의 위기는 한식의 위기다. 예나 지금이나 우리 음식이 장에 기초하고 있는 이상 한식은 어쩌면 뿌리부터 흔들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발전은 정직한 토대 위에서 이뤄져야 한다. 우리 식문화의 본 모습을 회복하고 보존하려 한다면 그 성찰은 장에서부터, 특히 사용범주가 가장 넓은 간장에서부터 시작해야 마땅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잘 모르는 사실이 있다. ‘장 담그기’는 국가무형문화재 제137호로 지정돼 있으며 별도의 전승자나 전승단체가 없다. 대한민국 국민 모두가 장 담그기 ‘무형문화재 전승자’라는 뜻이다. 장은 전 국민의 것이고 그 전승책임이 전 국민에게 있다. 오늘도 결코 안녕하지 못한 우리의 장을 지키기 위해 당장 나부터 장에 대한 관심과 애정, 실천, 최소한 올바른 인식만이라도 다잡아야 할 일이다.

저작권자 © 한국농정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