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는 그대로의 제주 속으로

[탐방] 제주도 평대리 올레길

  • 입력 2020.06.07 18:00
  • 수정 2020.06.10 08:58
  • 기자명 박경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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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박경철 기자]

지난 1일 제주도 제주시 구좌읍 평대리의 유일한 초가집에서 부석희 전국농민회총연맹 구좌읍농민회 부회장이 기자에게 ‘혹하르방’의 유래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한승호 기자
지난 1일 제주도 제주시 구좌읍 평대리의 유일한 초가집에서 부석희 전국농민회총연맹 구좌읍농민회 부회장이 기자에게 ‘혹하르방’의 유래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한승호 기자

제주 평대리 올레길은 아직 그 흔한 지도하나 없다. 하지만 평대리를 찾는 여행객의 발길은 오히려 더 늘어나고 있다. 돌담과 올레길 등 옛 마을의 모습이 온전히 남아있는 데다 마을 주민들의 얘기가 더해진 까닭에 시간이 지날수록 주목을 받고 있어서다. 실제로 평대리 마을여행을 주도해온 부석희 구좌읍농민회 부회장은 마을여행 성공사례로 강연을 다닐 정도다.

지난 1일 나선 평대리 올레길 탐방은 동뜨락협동조합이 준비 중인 ‘당근과 깻잎’ 카페에서 시작했다. 카페로 연결된 밭으로 나가니 당근꽃이 환하게 얼굴을 드러낸다. 1m 남짓 자란 줄기엔 하얀 부케를 연상케 하는 당근꽃이 지름 10㎝ 정도로 내려앉아 있었다. 일부러 남겨둔 것이라고 한다. 평소에 사소하게 지나치던 것도 자세히 보면 그 안에 또 다른 모습이 있다는 부 부회장의 설명이 이어졌다.

조금 더 걸어 나지막한 토끼동산에 오르니 동네와 앞바다가 훤히 보인다. 카페와 식당, 현대화된 숙소 등이 난립하며 관광지가 된 마을의 전경과는 다른 평온함이 느껴졌다. 토끼언덕의 풍광은 이 마을에 평대리라는 이름이 왜 붙었는지를 직설적으로 보여준다.

토끼언덕을 내려와 포장길을 벗어나자 옛길이 드러났다. 여기서 길잡이로 나선 부 부회장이 첫 문제를 냈다. 올레란? 전국 최고의 브랜드로 선정되고, 지리산 둘레길을 태동시킨 올레. 올레는 큰길에서 자기집 마당으로 들어가는 양쪽 돌담이 있는 작은 길을 뜻한다.

제주 대부분의 집이 돌담을 통해 서북쪽의 거센 바람을 막았고, 돌담이 크고 길수록 잘 사는 집이었다고 한다. 그럴수록 우영팥(텃밭의 제주말)도 컸다. 곧 마을 훈장집이 나왔는데 말 그대로 돌담이 집을 폭넓게 둘러싸고, 안쪽까지 쭉 뻗어 있었다. 무엇보다 폭낭(팽나무의 제주말) 한 그루가 눈에 띤다. 부 부회장은 역사 기록이 별로 남아있는 게 없어 폭낭이 마을의 역사를 보여주는 기준이 된다고 했다. 훈장집 폭낭은 400년가량 됐으니 이 마을의 역사도 400년으로 추정하는 것이다.

부 부회장이 별안간 “갑주!”라고 외친다. ‘가십시다’란 뜻의 제주 존대어다. 제주말은 바닷바람 속에서 언어를 전달하려다 보니 발음을 짧고 강하게 해 생긴 말이라고 한다.

조금 더 걷다 보니 마을에 전설처럼 전해지는 얘기의 주인공, ‘혹’하르방 집이 나왔다. 이 마을에 남아있는 유일한 초가집으로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안고 있다. 혹하르방은 마을 삼거리에 늘 나와 사람들이 싸우면 “혹, 혹, 혹!”이라고 해 동네 아이들이 무서워 피할 정도였다고 한다. 그의 친척들을 만나보니 6.25때 징병된 아들이 훈련을 받다 죽었고, 그 이후 말을 잃고 겨우 쥐어 짜낸 말이 혹이라는 것이다.

혹하르방 옆엔 ‘좀좀’하르방도 있었다. 자식이 없었는데 아이들을 참 좋아해 호주머니에 한 웅큼씩 넣어 나온 동전을 용돈으로 줬다. 제주말인 좀좀은 잠잠이라는 뜻이다. 조용히 하라는 얘기다. 혹할아버지의 “혹”에 아이들이 겁먹으면 좀좀하르방이 옆에서 “좀좀”이라며 말렸다. 또 그 옆엔 늘 삼거리에서 술을 먹던 ‘술’하르방도 있었다고 한다. 혹하르방을 지나 좀좀하르방에게 용돈을 받으며 환하게 웃는 아이들의 모습이 눈앞에 그려진다. 마을의 이런 어르신들이 있어 싸움도 줄고 아이들도 비뚤어지지 않았다는 게 부 부회장의 설명이다.

마을길을 지나며 들여다본 돌담 사이엔 마당을 아름답게 꾸민 집들이 많았다. 특히 보기 드물게 쌍올레길이 난 한 할머니의 집은 잘 관리된 초록색 잔디 마당으로 눈길을 붙잡았다. 이 마을엔 4.3항쟁 당시 상황으로부터 남편을 지키기 위해 부인이 돈을 구해 몰래 육지로, 일본으로 피신시켰고, 그 이후 많은 할머니들이 홀로 됐다. 부회장은 이들을 ‘자진 과부’라 일컬었다. 홀로 억세게 세월을 버티는 가운데 하나의 낙이 마당을 꾸미는 것이었을 터. 이들이 경쟁적으로 마당을 가꿔 마을 풍경이 더 고즈넉해졌다고 한다.

마을의 중심길인 수리앗길은 보물길로 통한다. 산에서 큰물이 내려오는 걸 막기 위해 모래동산을 이용해 만든 길로 한 사람이 걸어갈 수 있을 정도로 폭이 좁은 길이지만 마을의 중심에 있고 자연경관과 함께 옛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다른 길들은 마을 주민들이 서로 땅을 조금씩 내놓아 길을 넓혔지만 이길 만은 그럴 수 없었다고 한다. 땅주인이 고집을 부린 것이다. 결국 그 고집이 지금의 보물길을 만든 셈이다.

부 부회장은 돌담을 만드는 어느 ‘돌챙이’하르방 얘기를 더했다. 제주의 돌담은 4.3항쟁 당시 군경이 저지선을 만들며 동네 돌담을 동원해 한 차례 무너졌지만, 이후 마을 주민들이 다시 복원하며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4.3항쟁 당시만 해도 돌담이 없어진 마을이 폐허처럼 휑했다고 한다. 마을사람들의 기억 속에만 남아 있는 얘기다. 언제나 그 자리에 서있었을 것만 같은 돌담이 다시 보인다.

이날 평대리 올레길 탐방은 혹하르방. 좀좀하르방, 술하르방이 모이던 마을 삼거리에서 마무리됐다. 부 부회장은 마을여행 동선을 만들기 위해 꼬박 3개월을 걸어 다녔다고 한다. 50년 동안 살면서 자신의 동네를 잘 알거라 생각하지만 속속들이 들여다보면 매일 하루씩 달라 보인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의 노력 덕분에 있는 그대로의 제주도를 짧지만 강렬하게, 또 깊숙이 들여다본 여운이 길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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