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본연의 가치 지키는 평대리 주민들

  • 입력 2020.06.07 18:00
  • 기자명 한우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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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한우준 기자]

잔디마당과 돌담을 잘 가꾼 김정숙 할머니의 고택이 고즈넉한 풍경을 자아내고 있다. 한승호 기자
잔디마당과 돌담을 잘 가꾼 김정숙 할머니의 고택이 고즈넉한 풍경을 자아내고 있다. 한승호 기자

지난 1일 찾은 평대리의 한 켠에선 오는 6월 중순 문을 열 카페 ‘당근과 깻잎’의 막바지 실내 공사 작업이 한창이었다. 평대리 등 구좌읍 주민들의 주도로 가정집을 개조해 만든 이곳은 단순한 카페가 아닌 ‘동뜨락협동조합’의 본거지가 될 예정이다.

“저희가 이걸 한 이유는 딱 2가지인데, 첫째는 지역농산물 홍보에요. 제주 당근 좋은데 모르는 사람이 너무 많아요. 농가들은 한 번에 수확해서 모두 공판장으로 넘기니 체험도 뭣도 없죠.”

대표를 맡고 있는 유도균씨는 옆마을 송당리에 귀농해 유기농 당근농사를 지은 지 7년이다. 제주당근 품질에 비해 축제는커녕 변변한 당근카페 하나 없다며 안타까워하는 유씨는 협동조합을 통해 제주당근의 명성을 높일 계획이다. 협동조합이 내세울 브랜드 이름이 ‘당근과 깻잎’이 된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카페는 당근을 활용하는 음료를 판매할 뿐만 아니라 유씨의 경험을 토대로 텃밭 부지를 활용해 체험농장 등 다양한 사업을 병행한다.

제주농업을 알리는 것과 연계할 또 다른 한 가지는 바로 마을여행이다. 구성원 가운데 농민이자 평대리 주민으로 수년 전부터 마을길을 탐구하며 고유의 내용물을 준비한 부석희 전 마을개발위원장이 핵심이다. 지금 당장 방문객이 오더라도 만족할만한 여행 상품을 제공할 수 있을 만큼 풍부한 이야기들을 보유하고 있다. 협동조합을 준비하면서 마을 주민 소유의 집을 연계 숙소로 꾸미는 작업까지 마쳤다.

무엇보다도 부씨의 활동은 그 가치에 공감하는 평대리 어른들의 지지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관광객들의 ‘마을길 탐방’이 지속적으로 이어지자 한 주민은 자신의 집 마당에 온갖 골동품으로 꾸며놓은 포토존을 만드는가 하면, 고석만(72)씨는 최근 자신의 집 외벽 페인트칠을 손수 새로 하고, 자신의 집 마당에 있는 화장실을 외부인들에게 개방하기까지 했다. 또 많은 주민들이 마을의 옛이야기나 요즘 제주의 분위기를 말해주길 주저하지 않았는데, 그 자체로 훌륭한 여행의 일부가 된다.

“노인네들 뭐 다 개발이요. 비만 안 새면 그냥 사는 거지. 에유, 하르방은 살기 좋은데 가버라(4.3사건 때) 50년도 넘었수다예(김정숙, 90).”

“(마을이 잘 운영되려면) 동네서 사무장 월급도 주고 행정 집기들도 사놓고 해야 하니까, 나도 술 한 잔 덜 먹더라도 마을회비(2만5,000원)를 내야겠다는 생각을 하지. 근데 바깥에서 온 사람들은 떵떵거리면서도 그걸 안 내려고(이충의, 78).”

“개발이라고 하는데 사실 사라지고 파괴되는 모습이 많고, 오히려 관광 산업에 악영향을 줘요. 관광객들도 원래 제주의 모습을 보고 싶어 하지 (도시 같은) 세련된 모습을 보려고 제주에 오지는 않거든요. 마을을 지켜나가는 게 되게 멋있다고 봐요.”

평대리에 사는 조준희(38)씨는 이날 협동조합 ‘삼촌’들의 작업을 도우러 왔다. 외지 출신으로 제주에 귀촌한 지 7년, 여전히 젊지만 제주 본연의 모습을 보존해야 한다는 생각은 똑같다. 동뜨락협동조합의 구성원들은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모아갈 계획이다.

‘당근과 깻잎’이 그런 것처럼, 평대리에서 영업하고 있는 상점들 가운데 현지 주민이 직접 운영하고 있는 곳은 으레 제주 고유의 가치를 살리기 위한 깊은 고민을 하고 있다. 한 예로, 해안로 자신의 집 2층에서 ‘갯동산 평대바당 국수’를 운영하고 있는 김문석씨는 제주 전통 음식인 ‘돗죽’을 재현하고 있다는 것을 자랑스레 여긴다.

“여기는 대대손손 눌러 산 집이에요. 식당을 시작하면서 가장 제주다운 맛을 찾고 찾다보니 돗죽이라는 게 있었어요. 제주산 돼지의 전체 부위가 제주의 해초류 ‘모자반’과 함께 어우러지는 이곳 전통음식입니다. 할머니·할아버지들 뵈며 귀동냥하고, 도서관에서 자료를 찾아 최대한 복원한 거에요. 어제는 스물일곱분이나 드시고 가시는 바람에 오늘은 품절이네요.”

2년 전 가게를 연 김씨는 ‘제주스런 맛’을 최대한 살리려 고심한 끝에 돼지고기와 이를 이용한 국수, 돗죽 등 메뉴를 네 가지로 한정해 집중하고 있다. 이날 맛 본 고기국수의 육수는, 양손으로 사발을 들고 싶은 마음이 들게끔 담백하고 정갈한 맛을 추구했다.

그의 열정은 식탁에 앉으면 보이는 바닷가 풍경에서도 숨어 있다. 해변에는 우물 같이 생긴 원형 돌담이 보이는데, 김씨가 가게를 열 때 복원한 제주 고유 건축물 ‘당’이다. 제주 고유의 ‘밭담’에 대해서도 남다른 애정을 가지고 있는 김씨는 당의 흔적만 남아 있던 자리에 모자라는 돌들을 직접 날라 얹고, 망치로 깨뜨려 돌구멍을 채워가며 3개월 동안 작업했다고 한다. 먼 옛날 제주 사람들이 바닷바람을 피해 소원을 빌던 자리가 관공서의 사업이 아닌, 주민 스스로의 의지와 그 손으로 복원돼 있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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