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얘기, 지금 드러내지 않으면 사라진다”

[인터뷰] 부석희 전농 구좌읍농민회 부회장

  • 입력 2020.06.07 18:00
  • 기자명 박경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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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박경철 기자]

제주도 동북쪽에 위치한 제주시 구좌읍 평대리는 마을의 옛 모습이 잘 보전돼 있다. 하지만 이곳도 하나둘 높은 건물이 들어서며 개발의 풍파가 밀려들고 있다. 이에 마을주민들은 마을여행을 중심으로 사라지고 있는 마을의 역사와 문화, 환경, 농업의 가치를 알려내고 있다. 부석희 구좌읍농민회 부회장은 지난 2016년부터 지난해까지 마을발전추진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이런 노력의 중심에 섰다. 지난 1일 그를 만나 평대리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을 확인했다.

사진 한승호 기자
사진 한승호 기자

- 옛 모습이 잘 보전돼 있다.

평대리의 평대가 평평하고 넓은 들녘을 뜻하는데 작은 언덕에만 올라도 옆 마을까지 보이고 한눈에 바다가 들어온다. 그만큼 편안하고 아늑한 동네다. 그래서 못사는 마을이라도 마음만은 풍요롭다. 마을 주민들이 이 느낌을 다 안다. 그래서 주변 땅이 비싼 값에 팔려도, 아무리 많은 돈을 줘도 땅을 팔지 않는다. 자손들이 돌아와 살 수도 있는 땅을 온전히 전해주고 싶은 마음도 크다. 육지로 나간 사람들도 꼭 돌아오고 싶다고 한다. 마을 주민들의 의식이 남다르고 자부심도 큰 것이다. 그래서 이 모습을 유지하고자 평대리 정관과 향약에 ‘2층집 안 짓는 법’을 넣고자 수년간 노력했는데 쉽지 않았다. 그래서 2~3층 건물을 지으면 이혼하거나 암에 걸린다고 소문을 냈다. 근데 실제로 그랬다. 그래서 자식들이 돈을 벌어와 건물을 지으려 하면 부모들이 이혼할 일 있냐고 말리는 일도 많았다.

- 마을여행 시작 배경이 궁금하다.

제주도에서 평생 농사를 지은 사람도, 이제 살아보겠다고 들어온 사람도 마을이 이어질 수 있도록 활기를 만들어야 하는데 우리 마을에 원래 있던 것을 활용하자고 생각했다. 마을에서 일어나는 일이나 그동안 봐왔던 것들을 관심을 갖고 바라보면 다른 게 보인다. 2017년 마을여행 시작 전 마을 삼촌들(할아버지, 할머니)을 만났다. 가장 강렬했던 기억을 여쭤보면 몇 시간씩 얘기를 하신다. 동화책처럼 재미있는 얘기부터 4.3항쟁으로 인한 아픈 가족사까지 다 나온다. 마을의 역사도 어느 마을에나 다 있다. 숨겨져 있을 뿐이다. 삼촌들의 입을 통해 지금 드러내지 않으면 다 사라지게 된다. 이런 얘기를 마을여행에 녹여내니 올레길 20~30m를 가는데 몇 시간이 걸린다. 경험자들이 또 오기도 하고, 입소문을 타고 계속 방문객이 늘고 있다.

마을여행 등의 마을사업이 주민들과 마음을 모아 제대로 성공하는 사례를 꼭 보여주고 싶었다. 이를 통해 주변에서 일어나는 개발 등의 제주를 해치는 일 보다 옛것을 보전하고 아름답게 가꿔나가는 일에 가치를 느끼고 이를 도모하는 과정을 만들겠다.

- 평대리에도 개발의 여파가?

평대리도 조그마한 모래사장 앞에 해상풍력발전사업을 유치한다고 들썩이고 있다. 물론 에너지사업도 필요하지만 있는 그대로의 풍경을 유지하는 게 주민들에겐 더 큰 이익이다. 성산공항 문제도 마찬가지다. 성산공항을 가장 앞장 서 막아야 할 곳이 구좌읍이다. 이미 기존 공항 주변이 개발도 안 되고 사람도 없어지고, 주민들이 엄청나게 시달린 것 뻔히 안다. 실제로 지난해 이착륙 동선이 드러났는데 우리 마을 바다와 초등학교 위를 날아간다고 돼 있다. 이걸 어떻게 지켜보고만 있나.

- 향후 계획은?

마을여행 등 마을사업 활성화를 위해 마음이 맞는 분들과 동뜨락(동쪽의 들녘)협동조합을 만들었다. 협동조합에서 이달 내로 ‘당근과 깻잎’이라는 카페도 연다. 마을여행을 하면서 필요해진 화장실, 먹거리, 숙소 등을 협동조합을 통해 해결하고, 당근 등 지역의 주요 농산물 판매 문제도 마을사업을 통해 풀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젊은 청년들을 마을로 모으고 있다.

물론 마을 내에서 풀어야 하는 문제도 있다. 사업 추진을 두고 여러 논란이 있어서다. 한 사람의 힘만으로 안 된다. 마을여행 등의 사업을 시작하면서 화장실을 내어주는 등 도와주는 분들이 많이 생겼다. 이분들이 있어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농민운동을 한 사람은 문제를 풀려고 수차례 노력하고 돌아다니고 고생하는 일은 의례 있는 일이라 생각한다. 이미 어려운 일을 푸는 전문가다. 먼저 나서서 풀어나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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