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급식 품위기준, 다시 만들자

  • 입력 2019.12.01 18:00
  • 기자명 강선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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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강선일 기자]

학교급식 친환경농산물의 품위기준을 재설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 재설계는 학교급식을 만드는 이들인 농민과 영양교사, 행정·교육당국 등이 모여 논의하는 데서부터 시작된다.

농업환경에 맞는 품위기준 필요

현재의 학교급식 품위기준은 기존 도매시장 품위기준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농산물 상태와 크기에 따라 특상품·상품·중품·하품으로 농산물을 분류하고, 그 기준대로 파레트에 담는 식의 품위기준이 도매시장에서 통용돼 왔다. 이러한 품위기준이 친환경 학교급식 시스템으로 넘어왔는데, 그 과정에서 친환경농업 자체의 특성, 즉 일반농업 대비 기후변화에 영향을 많이 받는 특성은 고려되기 어려웠다.

따라서 현재의 품위기준을 변화하는 농업환경에 맞게 설계해야 한다. 경기도의 경우 최근 구성된 도 친환경급식지원센터 운영위원회에서 품위기준 재설계 필요성이 제기됐다. 김상기 경기도친환경농업인연합회 원예분과위원장은 “현행 학교급식 체계에서 학교들이 요구하는 품위기준을 충족하는 농산물은 생산량의 50% 미만 수준”이라며 “특히 감자의 경우 학교에서 받는 정품비율(학교가 요구하는 품위기준에 맞는 물품)이 매년 떨어지고 있다. 기후변화의 심화로 품위와 가격이 계속 들쑥날쑥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올해 경기도에서 생산된 친환경 감자 중 품위기준에 맞는 건 33% 수준이었다.

김 위원장은 이 문제를 타개하려면 △현실에 맞는 품위기준 설계를 위한 생산자·소비자 간 논의 강화 △생산안정기금·가격안정기금 작동 등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생산안정기금과 가격안정기금은 지자체와 교육청 등 유관기관이 기금을 조성해 농가들이 불안정한 기후 여건에서도 안정적인 계약생산이 가능하도록 지원하자는 의도로 제안됐다. 생산자와 학교 영양담당자 간에 자주 교류하며 서로의 애로사항을 공유하고 품위기준의 합의점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다는 게 김 위원장의 입장이다.

농민-영양담당자가 만날 공간부터

위와 같은 상황을 고치려면 농민과 학교 영양담당자 간 만날 수 있는 구조부터 만들어야 한다. 경기도 안양시 삼성초등학교 영양교사 정명옥씨는 “2017~2018년 경기도 친환경 학교급식 운동진영에서 각지의 친환경농가들을 방문해 토크콘서트를 열며 농민-영양교사 간 교류 강화를 추진했으나, 영양교사들은 초대를 받아도 학교 근무 때문에 갈 시간이 없었고, 토크콘서트 등 생산자와의 교류에 참여해도 직무연수 점수로도 이어지지 않는 현실이라 참여율이 저조했다”며 “영양교사들은 자기 시간을 떼서 가지 않는 한 농민들에게 생산과정 이야기를 들을 기회가 사실상 없다”고 밝혔다.

학교 영양담당자들이 친환경먹거리의 생산과정과 영양학적 특성에 대해 교육 받을 기회는 사실상 전무하다. 대학교 식품영양학과 교육과정 및 영양담당자 대상 교육 프로그램에서도 친환경먹거리 관련 교육 내용은 없다. 친환경먹거리에 대해 배우고 싶어하는 영양교사들도 늘어나고 있지만 위와 같은 제약들로 농민들을 만나기도 힘들다.

만들어진 기준 ‘준수’와 ‘조율’도 중요

물론 학교급식 당사자들이 모여 품위기준을 설계하고자 노력한 전례가 없진 않다. 서울시의 경우 2017년 1월 생산자·농축산물 전문가·영양교사·유통관계자 등의 논의를 거쳐 ‘지속가능한 친환경 학교급식 조달기준(조달기준)’을 만들었다. 충청남도에서도 현재 생산자·영양교사·전문가들이 모여 학교급식 조달기준을 만든 상태로, 이번 달 중에 발표할 예정이다.

그러나 새 품위기준을 만드는 것과 그걸 현장에서 적용하는 건 또 다른 문제다. 서울시 조달기준 작성에 참여했던 정영기 전국친환경농업인연합회 교육국장(당시 서울시 친환경급식 담당 주무관)은 “새 기준을 만든 지 3년이 다 돼 가나, 여전히 일선 학교에선 해당 기준마저 그대로 준수되지 않는다”며 “감자도 130g 이하 물품은 가격을 이원화해 공급하는 게 원칙임에도 일부 학교에선 이를 안 받아, 농민들은 130g 이하 물품을 전처리업체에 맡겨서 30g 알감자로 만들어 새 판로를 찾는 상황”이라 지적했다. 따라서 만들어진 조달기준이 현장에 적용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학교당국 대상 교육과 홍보가 중요하다는 주장들이 제기된다.

‘새 기준’도 농업환경의 변화에 따라 ‘옛 기준’이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따라서 학교급식 관계자들 간의 끊임없는 교류와 소통을 통해 품위기준을 지속적으로 논의하는 것도 중요하다. 정명옥씨는 “경기도교육청 차원에서 영양교사 농촌체험 프로그램을 만들어 직무연수에도 포함시킬 필요가 있다. 1박 2일이 됐든 오후 반나절이 됐든 농촌을 경험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밝혔다. 친환경 학교급식 확대 추세 속에서 영양교사와 농민 간 교류 프로그램을 교육당국에서 지속적으로 강화해야 한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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