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환경농산물, 때깔이 다가 아니다

  • 입력 2019.12.01 18:00
  • 기자명 강선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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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강선일 기자]

친환경 학교급식에 배를 공급하고 있는 한 농민이 병해충 피해로 흠집이 생긴 배를 가리키고 있다. 이 농민은 “껍질을 깎아 먹으면 아무런 이상이 없지만 깨끗한 모양을 선호하는 분위기 탓에 스스로 걸러낸 배”라고 설명했다. 한승호 기자
친환경 학교급식에 배를 공급하고 있는 한 농민이 병해충 피해로 흠집이 생긴 배를 가리키고 있다. 이 농민은 “껍질을 깎아 먹으면 아무런 이상이 없지만 깨끗한 모양을 선호하는 분위기 탓에 스스로 걸러낸 배”라고 설명했다. 한승호 기자

“친환경 학교급식은 교육이다.” 이 말에 공감 안 할 사람들은 적으리라. 아이들에게 건강한 먹거리의 중요성을 알게 하고, 식생활을 변화시키기 위한 교육과정이란 뜻이다. 그중 일부 전문가들은 “친환경 학교급식을 통해 먹거리가 어디서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를, 그리고 농업의 중요성을 아이들에게 가르쳐야 한다”고 강조한다.

자, 그렇다면 친환경 학교급식은 정말 농업을 가르치는 ‘교육과정’으로서 기능 중인가? 아니다. 작금의 친환경 학교급식은 아이들에게 건강한 먹거리의 중요성을 알게 하는 장도 못 될뿐더러, 농업의 중요성을 가르치는 장은 더더욱 아니다. 이를 입증하는 것 중 하나가 학교급식에 들어가는 친환경농산물의 품위(品位)와 관련해 발생하는 각종 문제들이다.

여기서 품위라는 건, 학교급식에 들어가는 농산물의 ‘품질 등급’을 의미한다. 현재 학교급식 현장에선 특상품·상품·중품·하품 등의 등급에 따라 농산물 품위가 나뉘어진다. 지역 또는 학교에 따라 다르나, 대체로 특상 또는 상 등급이 아닌 농산물은 반품되거나 따로 걸러져 가공품으로 처리되기 일쑤다. 지역에 따라선 상(上)품도 반품된다. 그러나 그중 가공품으로나마 가는 상·중·하품 농산물은 극히 일부이며, 대부분의 물량은 반품된다. 이유는 “벌레가 먹은 흔적이 있어서”, “모양이 울퉁불퉁해서”, “크기가 작아서”, “약간의 흠집이 나서”, “못 생겨서” 등 다양하다. 껍질만 깎으면, 흠집난 부위만 잘라내면, 하다못해 빻거나 즙으로 만들면 먹을 수 있을 각각의 친환경먹거리가 반품 과정에서 학교로 못 간 채 창고에서 갈 곳 없는 판로를 갈망하게 된다. 모양이 ‘못 생겨서’ 그렇지, 오히려 건강과 생태환경 보전 측면에선 더 많은 기여를 하는 친환경농산물의 ‘품위가 떨어진다’는 말 자체부터 사실 역설이긴 하다.

진짜 문제는 왜 이 농산물들의 크기가 작은지, 왜 흠집이 나는지, 왜 못 생겼는지에 대한 ‘교육’이 없다는 점이다. 여기서 교육의 대상은 학생이 아니다. 영양교사, 영양사 등 학교급식을 책임지는 영양담당자들이다. 그들은 식품영양 관련 교육과정에서 친환경먹거리의 특징, 친환경농업 과정을 배울 기회가 없다. 일부러 시간을 빼 농가에 가지 않는 한 친환경농가의 현실과 농사방식을 알 수 없다.

영양담당자들도 친환경 학교급식의 중요성을 알고 있으며, 품위문제에 대해 농민들과 소통할 생각을 갖고 있다. 그러나 지금의 학교급식 관련 행정·교육체계는 농민과 영양담당자들의 만남마저 어렵게 하고 있다. 영양담당자들부터 농업·농민·농촌을 배우기 어려운 현재의 교육구조에서, 아이들에게 ‘건강한 먹거리’와 ‘농업의 중요성’에 대한 온전한 교육이 이뤄지는 건 어불성설이다.

품위문제에 대한 논의를 놓침으로서 지금의 기후위기가 농업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친환경농산물을 만드는 농촌의 고령화가 얼마나 심각한지, 그 농촌이 어떻게 비어가고 있는지도 놓치게 된다. 미국선녀벌레라는 벌레가 왜 늘어났는지, 그 벌레가 왜 학교급식에 들어온 과일에 달라붙었는지, 그걸 잡으려는 농민의 등골이 얼마나 빠지는지, 그리고 그 농민들이 올해 얼마나 많이 세상을 떠나는지에 대한 산교육을 놓치게 된다는 것이다.

정말로 친환경 학교급식을 먹거리와 농업에 대한 교육의 장으로 활용하려면, 지금의 친환경농산물 품위문제에 대해 농민과 영양담당자, 학부모, 학생, 행정·교육당국 등 모든 당사자들이 모여 다시금 논의해야 한다. 먹을 수 있는 걸 먹게 만들고, 그 먹거리가 만들어지는 과정이 얼마나 험난한지에 대해 온전히 이야기하고 논의할 수 있는 게 진짜 교육이다. 친환경 학교급식 품위기준에 대한 재논의를 통해, 친환경 학교급식이 진짜 시민대상 교육으로 이어지도록 만들 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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