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청년들에게 미안하지도 않소?

이진천 전국귀농운동본부 상임대표

  • 입력 2018.09.02 10:19
  • 기자명 이진천 전국귀농운동본부 상임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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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천전국귀농운동본부 상임대표

처음에는 호기심이었다. 스마트팜밸리라는 사업이 있는데 춘천 그것도 내가 사는 면에 들어선다니 궁금했다. 사업계획서를 들여다보았더니 믿을 수 없었고 믿고 싶지 않았다. 이게 촛불혁명을 계승했다는 정부가 모처럼 꺼내든 농정이라고? 정부의 초안은 타짜들이 짠 대형사기 개념도였다. 지자체들은 초안을 받아 지역맞춤형 사기 시나리오를 짰다. 농업예산 수천억 먹고 빠질 속셈의 개발귀신들은 오매불망 첫 삽질만 기다리고 있다.

이런 황당한 사기극이 대명천지에 어떻게 가능할까를 생각해 보았다. 핵심은 아주 교묘하게 무지와 무관심을 이용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대체로 무지하다. 스마트니 4차 산업혁명이니 잘 모르겠고 들어도 어렵다. 그렇다고 이런 무지가 우리 잘못은 아니다. 그러나 무관심은 우리의 잘못이다. 스마트팜밸리는 청년농업인육성을 명분이자 가면으로 뒤집어쓰고 있다. 그래서 얼핏 농정인 듯 보이고 사람과 미래에 대한 투자인 듯 보이는 것이다. 우리가 대체로 무관심했기에 벌어진 일이다.

춘천은 피해갔지만 상주와 김제가 폭탄을 맞았다. 무거운 마음으로 갔던 토론회에서 발제를 하며 이런 질문을 던졌다. “스마트팜밸리에서 청년농업인 육성이 가능하기는 한가?” 만약 이것이 불가능한 사기라는 것만 제대로 밝혀진다면, 스마트팜밸리는 스스로 무너질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 이게 의외로 쉽지가 않다. 시작도 하지 않았는데 어떻게 그 결과를 단언하느냐고 반박하면 난처하다.

왜 난처한가? 그때부터는 근본적인 문제에 직면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 근본적인 문제는 실증적이라기보다는 철학과 인문정신에 깊숙이 닿아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서로 논쟁하기가 난처해지는 것이다. 근본적인 문제는 이것이다. “대한민국 농업농촌의 미래가 될 청년농민의 모습을 우리는 어떻게 그리고 있는가?”

짧게 말하자면, 청년 한사람을 농가와 공동체와 지역이 함께 소통하며 인내하면서 가르칠 때만 비로소 온고지신하는 농민으로 커갈 수 있다. 비바람과 가뭄을 같이 견디며 동고동락하는 청년만이 위대한 농업농촌의 유산을 물려받은 농민으로 거듭날 수 있다. 나는 이 오래되고 확실한 길 말고 미래로 가는 다른 길은 잘 모른다.

운동가로서 농촌에 투신했던 청년들이 있었고 세월이 지나 이제는 흰머리 가득하다. 서울·부산·광주귀농운동본부 생태귀농학교에는 단순소박함을 생존전략으로 삼겠다는 가난한 청년들이 찾아온다. 부모의 농사를 이어 도전하겠다는 약간 불안하지만 어쨌든 기특한 청년들도 늘고 있다. 그런데 몇 년 뒤에는 스마트팜밸리에서 전문기술을 익힌 청년들이 등장할지도 모른다.

단언한다. 스마트팜밸리는 청년농민을 키워낼 수 없다. 스마트팜 보급기술자를 양성하고 기껏해야 농산업 종사자가 될 뿐, 진정한 농민은 되지 못한다. 밸리 안에 있는 숙소에서 온실로 출퇴근하고 공무원·연구원·기술자·관광객만 만나던 청년이, 들녘과 마을의 미래를 걸 농민으로 성장할 리가 없다. 손톱에 흙때 끼지 않고도 농민이 될 수 있다니, 농경이 시작된 이래 역대급 사기다. 청년들에게 미안하지도 않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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