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TA 직격탄 맞은 ‘포도벨트’, 1년 80만원 직불금으론 못 살려

김천·영동·옥천 포도농가들, 소득 감소로 폐원·작목 전환
그나마 받던 직불금도 냉해 뒤 가격 소폭 오르자 중단

  • 입력 2018.06.17 00:41
  • 수정 2018.06.21 10:33
  • 기자명 강선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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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강선일 기자]

충북 영동군 황간면의 포도재배 농민 조정환 씨가 자신의 포도밭을 살펴보고 있다. 조씨는 1만5,000~1만8,000원은 나와야 하는 포도 5kg 한 상자 가격이 6,000~8,000원까지 폭락한 현실을 담담하게 언급했다. 한승호 기자
충북 영동군 황간면의 포도재배 농민 조정환 씨가 자신의 포도밭을 살펴보고 있다. 조씨는 1만5,000~1만8,000원은 나와야 하는 포도 5kg 한 상자 가격이 6,000~8,000원까지 폭락한 현실을 담담하게 언급했다. 한승호 기자

FTA 피해보전직불금을 지원 받은 농가도 상황이 크게 나은 건 아니다. 수입농산물로 인한 가격 폭락 및 점차 어려워지는 농촌 현실을 생각할 때, 현재의 단발적인 FTA 직불금 제도론 어려워지는 농가 현실을 개선하긴 어렵다. 더 나아가 직불금 지원 단계를 넘어서는 장기적·근본적인 피해농민 대책이 절실하다. FTA로 인한 대표적 피해품목인 포도 재배 농가들의 상황을 보자.

경북 김천시 농소면에서 25년째 포도농사를 짓는 이유덕 씨는 2004년 한-칠레 FTA, 2012년 한-미 FTA 등 잇따른 FTA 발효 이후 포도 가격 폭락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한-미 FTA 전만 해도 1,000여평 농지에서 포도농사를 지으면 1년 총 수입이 8,000만원은 나왔으니 상황이 나쁘진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4,000만원으로 반토막 났다.

그나마 이씨는 사정이 나은 축이다. 이씨는 “3,000만원 정도 버는 농가가 농소면 포도농가의 20% 정도 된다. 나머지 80%는 거의 대부분 1,000만~1,500만원 수준으로 버는데, 거기서 농자재 비용 및 인건비, 시설비용 등을 빼면 거의 안 남는 수준”이라 말했다.

김천 및 이웃 지역인 충북 영동군, 옥천군으로 이어진 ‘포도벨트’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포도 생산지대다. 그러나 FTA 이후 들어온 수입 포도로 인해 전반적인 가격 폭락을 겪었다. 영동군 황간면에서 유기농 포도농사를 짓는 조정환 씨는 “포도 5kg 한 상자당 최소 1만5,000~1만8,000원은 돼야 그나마 안정적인 생활이 가능한데, 지난해 영동에서 생산한 포도는 시장에서 평균 6,000~8,000원 수준에 팔렸다”고 지역 포도농가 상황을 증언했다.

조씨는 유기농 포도를 생활협동조합에 공급하기에 5kg 한 상자 당 1만8,000원 수준으로 납품한다. 그러나 수입포도로 인한 국산 포도 소비 부진은 친환경 포도에도 영향을 끼쳤다. 친환경 포도도 소비가 지지부진해져서 조씨는 생협과 기존 약정량대로 출하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조씨는 “심지어 작년엔 포도 가격을 10% 내려 전국 매장을 돌아다니며 소비촉진활동을 벌일 정도였다”고 말했다.

이씨와 조씨는 2015~2016년 FTA 직불금을 신청해 매년 80만원씩 총 160만원을 받았다. 이씨는 “이 금액은 딱 농약값 수준이다. 폭락한 포도 가격 및 여타 생산비에 대한 보전 차원에서 보면 무의미한 수준의 금액”이라 밝혔다. 지난해 정부가 FTA 피해보전직불금 대상을 도라지 한 작목만 지정해 이씨와 조씨는 그 정도의 직불금도 못 받게 됐다. 작년 초 냉해 때문에 포도 가격이 약간 회복됐기에 포도농가는 직불금 지급대상이 될 수 없단 이유였다.

포도농가들의 생산비는 날이 갈수록 오른다. 이씨의 수입은 FTA를 거치며 반으로 줄었는데 인건비는 2000년대 중반 하루 4만원에서 올해 8만원으로 2배 올랐다. 포도농사는 필연적으로 일손이 많이 필요하다 보니, 그만큼 전체 인건비도 많이 들 수밖에 없다. 이씨는 “1,000평 농지 전체의 비닐하우스를 전부 교체하는 데도 인건비 및 시설비를 합쳐 600만원 가량이 든다”며 “인건비 뿐 아니라 시설비용, 각종 농자재 비용도 전부 오르다 보니 더더욱 어려운 상황”이라 토로했다.

어려움을 겪는 포도농가들 중엔 아예 폐원하거나 작목을 전환하는 경우가 많다. 황중환 옥천군농민회 사무국장은 “피해보전직불금을 받았음에도 지난해와 올해에 걸쳐 포도농가의 3분의 2가 폐원했다”고 말했다. 작목을 전환하는 경우도 많다. 조정환 씨는 “영동군 포도농가들의 절반 가량이 지난해 복숭아로 작목을 전환했다. 아마 조만간 복숭아 가격이 폭락할 것”이라 말했다. 기존 재배 작목의 가격 상황이 어려워 다른 작목으로 전환하니 또 해당 작목의 가격이 폭락하는 식의 악순환이 반복될지도 모른다는 우려이다. 정부의 근본적인 지원대책 및 가격안정 정책이 없다면 한반도의 ‘포도벨트’는 사라질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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