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직불금 지급품목이 적을까?

법률상 발동 요건·수입기여도 측정 현실과 맞지 않아
품목별 피해 보전은커녕 피해 외면에 면죄부 주는 셈

  • 입력 2018.06.17 12:46
  • 수정 2018.06.17 12:54
  • 기자명 홍기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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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홍기원 기자]

FTA 체결이 농업에 미치는 악영향은 점차 짙어지는데 정작 FTA 농어업법에 따라 피해를 인정받고 지원을 받는 농축산물 품목은 매우 제한적이다. 되레 FTA 피해를 받아온 품목일수록 지원받기 어려워지는 모순된 상황도 나오고 있다.

지난 2013년 4월 농림축산식품부는 FTA 피해보전직불금을 최초로 한우와 한우송아지에 지급한다고 밝혔다. 이후 지난해까지 FTA 농어업법에 따라 지원을 받은 품목 수는 20개(중복 포함)에 불과하다. 지난해엔 도라지만 바늘구멍을 통과해 FTA 피해보전직불금을 받았고 올해엔 호두, 양송이버섯 등 5개 품목이 확정됐다.

이처럼 FTA 피해를 인정받아 지원을 받기 어려운 이유는 법률상 발동 요건이 현실과 맞지 않기 때문이다. 농식품부는 올해 기준 모니터링 품목 42개와 농업인 등이 신청한 품목 66개의 지급기준을 조사해 지원 대상을 선정한다. 이들 품목은 가격 요건, 총 수입량 요건, 협정체결국 수입량 요건을 모두 충족해야 피해보전직불금을 받을 수 있다. 폐업지원까지 받으려면 FTA 농어업법 시행령 제6조의 기준들을 별도로 충족해야 한다.

이 중 제일 넘기 힘든 장벽은 가격 요건이다. 이 요건은 FTA 협정의 이행으로 품목의 해당 연도 평균가격이 직전 5년간 최고·최저치를 제외한 3개년 평균가격의 90% 미만으로 하락해야 충족할 수 있다. 올해에만 총 108개 품목 중 옥수수, 감자, 밤, 감귤시설, 당근, 건고추 등 24개 품목이 총 수입량 요건과 협정체결국 수입량 요건을 동시에 충족했지만 가격 요건에서 탈락했다.

가격 요건을 도식적으로 계산하는 건 농업의 현실을 도외시한 방식이다. 질병·재해 등으로 흉작이 와 가격이 오르면 FTA에 따른 수입이 늘어나도 그에 따른 피해를 인정받을 수 없다. 또, 수년 동안에 걸쳐 FTA의 영향으로 가격이 내려가서 기준가격이 급락해도 지원 품목에서 제외된다. 잣의 경우, 2년 전 기준가격이 ㎏당 4만1,558원이었지만 올해 기준가격은 2만8,316원으로 뚝 떨어져 지난해 가격이 2만7,735원으로 조사됐음에도 지원 품목에 선정되지 못했다.

수입기여도 반영도 문제가 있다. 농식품부는 FTA가 실제 미친 영향만 반영하겠다는 명분으로 피해보전직불금 산출방식에 수입기여도를 적용하고 있다. 이 수입기여도는 한국농촌경제연구원 FTA이행지원센터에서 전문가 검증위원회를 거쳐 측정한다.

이 수입기여도가 0%로 측정돼 2014년엔 조, 2015년엔 옥수수와 녹두, 2016년엔 우엉이 발동 요건을 모두 충족했음에도 지원을 받지 못했다. 지난해엔 블루베리와 포도를 피해보전직불금 지급 품목에 추가하자는 의견이 있었지만 모두 법률상 발동 요건을 충족하지 못하고 수입기여도와 관련된 이의 신청이 없어 반영되지 못하기도 했다.

정녕 농식품부가 FTA에 따른 실제 영향을 반영하겠다는 의도였다면 해당품목을 채소·과수·육류로 구분해 분류별 수입기여도를 측정하는 게 더 현실에 부합하는 방식일 터다. 총 수입량 요건과 협정체결국 수입량 요건 역시 해당 품목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모든 품목의 물량으로 대체해 계산해야 FTA에 따른 피해를 정확히 알 수 있다.

결국 FTA 농어업법은 법의 취지와 달리 정부가 농축산물의 FTA로 인한 피해를 외면할 수 있도록 면죄부를 주고 있다. 대대적인 FTA 농어업법 개정과 함께 수입물량을 규제할 수 있는 제도 마련이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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