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정신문 강선일 기자]
“다른 지역에서 다 (석산 개발 문제 관해)싸우는데 암치리만 안 싸우는 게 이상하다는 이야기들이 나왔었다. 지난 25년 동안 우리가 어떻게 참았는지 모르겠다.”
지난 2일 고창군청 앞에서 열린 ‘고창군 석산 개발 연장 문제 규탄 집회’에 참가한 남성 농민의 한 마디였다. 25년간 계속돼 온 고창 성송면 석산 발파공사는 지역 주민들에게 심각한 피해를 안겼다. 특히 공사장이 코앞인 성송면 암치리 150여명 주민들은 지난 4월의 석산 개발 연장에 대해, 더는 참을 수 없다고 어깨띠를 둘렀다.
석산 발파공사로 인한 주된 피해양상은 △발파 시 발생하는 땅의 진동으로 인근 시설 피해 △발파 시의 굉음으로 인한 소음공해 △공사장 돌가루 먼지 비산으로 인한 주민 건강 및 농축산물 피해 △공사장 오폐수 유출로 인한 인근 농작물 및 농업용수 오염 피해 등을 꼽을 수 있다. 고창군청 측은 이 문제들에 대해 “딱하다”는 입장은 보이나, 어찌할 도리가 없다고 한다. 특히 오폐수 유출과 소음 건의 경우, “오폐수와 소음 규제를 위한 기준에 미달하는 상황이기에, 어떻게 조치를 취하고 싶어도 법적으로 그럴 근거가 없어 답답할 지경”이라는 게 고창군의 입장이다.
하지만 ‘법적 기준’만 따지기엔 25년 동안 주민들이 겪은 피해가 심대하다. 이하 내용에선 위에 언급한, 주민들의 네 가지 피해양상에 맞춰 사례를 언급하고자 한다.
발파 시 생기는 진동, 시설 피해 산적
석산 발파현장이 있는 암치리에 가니, 몇몇 가옥에 세로로 금이 간 게 보였다. 한영선 암치·송산 대책위원장(암치리 이장 겸임)은 “거의 모든 가옥 및 담벼락이 발파 시의 진동으로 금이 갔다”고 밝혔다. 가옥 중엔 지은지 4년밖에 안 됐는데 벌써 집 곳곳에 금이 가고 비가 새, 대대적 수리를 거치지 않으면 무너질 위기인 집도 있었다.
한편 암치리 마을 가운데엔 옛 강씨 문중 전통가옥이 남아있다. 그런데 이 가옥의 담벼락 위 기와에 전부 그물망을 쳐 놓은 상태였다. 마을의 한 주민이 그 그물망 친 기와에 대해 설명했다.
“언제 또 발파로 인한 진동으로 담벼락의 기왓장이 떨어질지 몰라, 혹시라도 담벼락 밑을 지나는 아이들이 다치는 데 대비해 그물망을 친 것이다.”
특히 대발파 시의 진동은 발파현장에서 약 2km 거리까지 전해질 정도로 강하다. 땅 밑의 뿌리를 타고 진동이 멀리까지 전파되기 때문이란 게 마을 주민들의 설명. 발파현장에서 2km 떨어진 곳에 거주하는 정정숙씨는 “진동 때문에 창문과 창틀이 어긋나, 창문도 제대로 끼울 수 없는 상황”이라고 호소했다.
발파 시 발생하는 소음공해
발파 시 발생하는 엄청난 크기의 소음 또한 주민들의 고통 요인이었다. 소음으로 인한 스트레스와 작업 곤란 문제는 말할 것도 없고, 일부 주민들은 이명증을 호소하는 등 건강상의 문제도 발생했다.
마을주민 강진이씨는 “이 마을에 처음 들어왔을 때 (발파 소음 때문에)미쳐버리는 줄 알았다”며 “특히 대발파 시의 소음은 그 충격을 이루 말할 수 없다. 엄청난 굉음 때문에 다들 깜짝 놀랐다. 낮에 작업하다 쉴 때도 방 안에 누워 있으면 계속 발파소리가 들려 바깥에 일부러 나온다”며 “그나마 4월부터 주민들이 집회를 시작한 뒤 (업체가)대발파는 안 하고 소발파만 눈치 보며 진행하는 상황”이라 언급했다.
발파 소음으로 인한 가장 큰 피해자들은 할머니들이다. 지난 2일 집회에 참가한 할머니들은 이구동성으로 “날이면 날마다 생기는 발파 소리 때문에 시끄러워서 못 살겠다”고 하소연했으며, 이명증을 호소하는 할머니도 상당수 있었다.
한편 소음피해의 또 다른 피해자들은 어린이들이다. 원래 10명이던 이 마을의 성송초등학교 학생 수는 최근 5명으로 줄었다. 어린이들의 소음에 대한 고통 호소로, 주민들은 어린이들을 다른 마을의 유치원이나 초등학교로 전학 보냈다. 이로 인해 점점 마을에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줄어드는 것도 고민거리다.
공사장 돌가루 비산 문제
석산 발파현장에 들어가니, 현장 한구석에 석재 채취 후 생긴 돌가루들이 언덕을 이루고 있다. 그 주변은 먼지 비산으로 뿌옇다. 현장 바로 옆엔 암치리 주민들의 논밭이 있다.
발파현장의 돌가루가 비산해 농작물에 피해를 끼친 사례 이야기도 나왔다. 그 문제에 있어선 한영선 대책위원장부터가 피해자였다. 한 위원장은 “원래 우리 집 앞에 텃밭을 만들어 채소를 재배했다. 그러나 한창 발파가 진행될 때, 돌가루가 비산해 우리 텃밭을 덮었다. 그로 인해 텃밭은 못 쓰게 됐고 농작물도 재배할 수 없게 됐다. 그때 이후 텃밭 자리에 대신 소나무를 심었다”고 씁쓸한 기억을 언급했다.
돌가루 비산은 주민 건강권도 침해했다. 지역 거주 어린이들 중 일부는 원인 모를 알레르기 및 두통으로 잠도 못 잘 정도로 고통을 겪었다. 주민들은 이러한 질환이 돌가루 비산 및 소음, 그로 인한 스트레스로 생긴 것이라 판단하고 고창군청에 정보공개 청구를 매번 했지만, 단 한 번도 청구 결과를 받지 못했다.
오폐수 유출
농민들은 또한 오폐수로 인한 농업용수 오염 및 농작물 훼손 등도 지적한다. 한영선 위원장은 기자에게 사진을 하나 보여줬다. 공사장 바로 옆 논바닥 물에 기름덩어리가 둥둥 떠 있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그로 인한 농작물 훼손은 말할 필요도 없다. 주민들의 농지 바로 옆에 공사장이 있기 때문에 이런 문제가 발생했다.
이처럼 성송면 주민들은 석산 발파로 인해 생존권의 심각한 침해를 겪고 있다. 이 뿐만 아니라, 주민들은 국민으로서 당연히 요구할 수 있는 정보공개 청구에 대한 정보도 받지 못하고 있는 등, 민주시민으로서의 권리도 제대로 보장 못 받고 있다. 애시당초 석산 발파 허가가 결정되는 과정에서도 주민들 절대 다수는 외면당했다. 주민들은 훼손된 자신들의 생존권과 정치적 권리를 되찾고자 싸움을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