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공동체로 초대합니다

[창간 17주년 특집]

  • 입력 2017.07.01 11:21
  • 수정 2017.07.01 11:57
  • 기자명 원재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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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원재정 기자]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하교를 하고 모여든 아이들의 왁자지껄한 목소리가 마을 골목에 울려 퍼진다. 술래에 잡혀 새끼손가락을 건 아이도, 조심스레 술래에 다가서는 아이도, 심지어 술래마저도 모두 미소 가득한 얼굴로 긴장한(?) 채 다음 단계를 기다린다. 지난달 27일 경북 상주 외서마을 문화자립사회적협동조합에서 만난 아이들은 ‘얼음땡’, 피아노, 독서 등 갖은 놀이를 하느라 좀처럼 가만히 있질 못했다. 아이들의 구김 없는 표정은 마을의 농촌공동체가 일궈 낸 풍경이었다. 한승호 기자

문이 닫히려는 찰나, 빽빽한 지하철 틈에 겨우 비집고 들어서 안도하는 도시 직장인들의 아침은 스마트폰과 꿀잠으로 숨는다. 지각하면 어쩌나, 조바심 속에 발걸음을 재촉해 사무실에 들어서면 점점 더 진해지는 커피 한 잔의 각성제로 하루를 열고 월요일부터 주말을 손꼽는다.

더 짧아지는 잠, 더 복잡해지는 일. 도시는 바쁘고 복잡할 뿐 아니라 개별적이다. 어깨를 부딪친다고 다 인연은 아닌 고립무원, 도시.

반면 전통적으로 농촌은 공동체 사회다. 농촌에는 정이 남아 있고 이웃과 의지하고 도우며 지역사회라는 울타리가 있었다. 이웃집 숟가락이 몇 개인지 누구네 아들이 직장을 들어갔는지 비밀이란 없는 동네, 농촌.

이런 농촌들이 급격한 산업화와 함께 변했다. 개방농정이 휘몰아치면서 경쟁력 강화가 농민의 삶을 지탱해 줄 ‘동아줄’로 여겨졌다. 영농규모는 더 커지고, 논밭에 하우스가 들어서는가 했더니 농기계 소리가 들판을 메웠다. 이제 품앗이나 울력으로 농사를 지탱하지 못하는 규모가 됐다. 이웃은 함께 살아갈 공동체 구성원이 아니라 잠재적 경쟁자다.

그래도 농촌은 마음의 ‘고향’이 아닌가. 피폐해진 농촌을 다시 일으켜 생기를 돌게 하는 희망의 현장이 곳곳에 ‘공동체’라는 울타리 안에서 살아가고 있다.

마을 전통음식인 ‘모시떡’을 통해 동네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이게 됐다. 초고령 사회라는 농촌에서 70대, 80대 노인이 당당히 내 몫의 경험과 기술을 발휘하고 있다. 고요한 농촌마을은 떡을 빚으며 활기가 넘친다.

한우를 키우는 농민들은 각자도생을 졸업하고 공동매장을 만들어 미래를 키우고 있다. 이 매장에선 직접 농사지은 농산물도 판매한다. 농민들에게 좀 더 나은 소득과 안정적인 농사는 꿈의 실현이다.

어렵지만 가야할 길이란 신념으로 친환경 농업공동체를 이루기도 한다. 환경과 생태가 보존되는 마을에는 직거래로 소득도 향상될 뿐 아니라, 도시인들과 어울리는 도농 연결 창구로도 제몫을 해낸다.

평생 노동에 안 아픈 곳이 없는 농촌노인과 주민들은 십시일반 ‘우리동네의원’을 모셔오기도 했다. 아플 때마다 자주 보고 문턱이 낮아 편하니, 서울 유명 대학병원이 부럽지 않다.

학교가 끝난 농촌 어린이들은 마을도서관에서 ‘자립’하는 것을 배우며 성장한다. 독서보다 잘 노는 방법을 배우고, 스스로 밥해먹고 뒷정리하는 것에서 칭찬을 받는 아이들. 글자를 모르던 설움 속에 세월을 지내던 할머니들은 ‘꽃보다 청춘학교’에서 공부한다. 아이부터 노인까지 마을도서관에서 어우러진다.

크고 작은 농촌공동체들이 각자의 색깔로 빛을 발하면서, 삭막하고 막막한 농촌사회가 다시 활기를 찾는 현장으로 초대한다. 비록 획기적인 소득을 자랑할 순 없지만 오늘이 내일 같은 삶을 살던 무료한 농촌마을이 새로운 꿈을 꿀 수 있다는 것만큼 흥미진진한 것이 있을까.

깊숙이 들여다보면 부족한 것도 있고 허술하기도 하지만 농민들이 모여서 부족함을 채우고 내일을 계획하며 하루하루를 가슴 벅차게 살아가는 마을들.

한국농정신문은 창간 17주년을 맞아 공동체를 꾸리고 희망을 만들어가는 전국의 농촌과 땀 흘리는 농민들의 모습을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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