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양고추 농가 말라가는데 농식품부는 매뉴얼·형평성 타령

가격폭락 못막는 ‘찔끔’ 수급대책
현장얘기 무시한 채 헛돈 들인 산지폐기

  • 입력 2017.04.23 11:08
  • 수정 2017.04.23 11:11
  • 기자명 홍기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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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홍기원 기자]

농림축산식품부는 농민들에게 쌀농사를 타 작목으로 전환하라고 성화지만 정작 고소득 작목으로 꼽혔던 시설원예 작목들조차 가격폭락에 허물어지고 있다. 농식품부는 ‘찔끔’ 수급대책만 내놓고 있어 시설원예 작목 가격도 대책 없이 표류하는 게 현실이다.

경남 밀양시 무안면 들녘은 풋고추 하우스가 밀집해 있다. 그 중 다수를 차지하는 청양고추가 올해 가격이 폭락하며 시장격리 대책으로 지난달 상품폐기에 이어 이달엔 고춧대 벌채가 진행되고 있다. 그마저도 신청면적의 일부에서만 이뤄지고 있을 뿐이다.

무안면에서 청양고추 농사를 짓는 손기혁씨가 생산비와 현재 시세를 계산해보니 1,652㎡(500평) 규모 하우스 1동에서 약 2,000만원의 적자가 나왔다. 현재 시세는 10㎏ 1박스당 2만원 수준으로 수확할수록 빚만 늘어날 뿐이라는 얘기다. 생산비라도 건지려면 10㎏ 1박스당 최소 5만원 이상은 나와야 하는데 격차가 너무 벌어졌다.

손씨는 “청양고추에서 다른 작목으로 전환하는 게 쉽지 않다”라며 “파프리카도 이제는 어렵고 방울토마토로 전환한다는 추세다. 그런데 토마토는 일조량이 고추보다 많아야 하고 토양도 지역조건과 맞지 않다”고 말했다. 진퇴양난이다.

청양고추 농가인 김영희씨가 지난 17일 고춧대 벌채를 앞두고 밀폐한 하우스 내부를 둘러보고 있다.

역시 무안면 청양고추 농가인 김영희씨는 755평 하우스 1동이 고춧대 벌채 대상으로 확정됐다. 벌채에 따른 지원은 1평당 5,000원으로 초반 경비도 못 건질 수준이지만 김씨는 “그나마 다행”이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이번 고춧대 벌채는 밀양뿐 아니라 청양고추 주산지인 진주, 창원, 창녕, 고성에서 이뤄지고 있다. 그런데 경남도내 청양고추 재배면적은 약 870㏊인데 벌채 면적은 34㏊로 전체면적의 4%에 그쳤다. 그마저 시기도 한 발 늦었다는 평이다.

현장 농민들은 지난달 상품폐기부터 문제였다는 시각이다. 이학순 밀양시농민회 무안면지회장은 “상품폐기 기간이 1주일에 그쳐 그 때 수확한 농가들만 해당됐다”라며 “경남지역 청양고추 농가들이 함께 하우스종량제 등을 건의했는데 정부에선 하기 어렵다고 한다. 농민들이 아무리 얘기해도 말귀를 못 알아듣는다”고 탄식했다.

이헌식 밀양시농민회장은 “상품폐기 때에도 이 방식은 수확하면서 인건비에 선별비까지 들여 폐기해야 해 헛돈이 드니 처음부터 벌채를 하자고 건의했다”라며 “농식품부가 벌채는 안 된다고 해서 못했는데 효과가 없어 이제와 벌채를 하는 거다. 이런 탁상공론으로는 절대 가격을 반등시킬 수 없다”고 지적했다.

지난달 상품폐기 물량은 총 140톤 수준으로 전체 생산량에 비할 수 없을 정도로 미미한 수준에 그쳤다. 각각 상품폐기에 1억7,000만원, 고춧대 벌채에 약 5억원 남짓의 예산이 소요됐으나 밀양시 청양고추 생산액만 연간 500여억원에 달해 ‘찔끔’ 대책이란 비판을 면피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이 회장은 “결국 쌀이 소득이 안 돼 시설원예 작목 농사가 늘어나며 생산이 늘어난 게 근본 원인이다. 농산물 최저가격을 보장해야 해결할 수 있다”라며 “지역에선 품목별 협의회나 자조금 사업을 추진하려 하는데 정부가 농민들과 잘 소통해 어려운 얘기를 함께 들어줬으면 한다”고 호소했다.

농식품부는 1~2차에 걸친 산지폐기가 별 효과를 거둘 수 없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어쩔 수 없다는 분위기다. 농식품부 원예경영과 관계자는 “1차 상품폐기 때 현장에선 아예 폐기를 주저하는 의견도 많았다”라며 “매뉴얼을 봐도 산지폐기하도록 명시돼 있다”고 해명했다. 이어 “예상보다 생산량이 늘어 고민을 많이 했지만 타품목과 형평성 문제가 있어 적정 금액을 편성했다”라며 “최근에 가격이 상승하고 있어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고 덧붙였다.

‘찔끔’ 대책의 이유가 매뉴얼과 형평성에 있었다니 농민들의 탁상행정에 대한 개탄이 전혀 근거없는 목소리는 아니었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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