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식품부 누구 위해 일하나

“농민 없는 관료조직” … 기재부나 농식품부나
장·차관 및 국장 현장방문, 기획된 성과확인 자리

  • 입력 2017.04.21 22:52
  • 수정 2017.04.21 23:47
  • 기자명 원재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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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원재정 기자]

5월 10일 새 정부 출범을 앞두고 정부의 각 조직이 술렁이고 있다. 확대되거나 축소되는 건 아닌지, 주요 대선후보의 정부조직개편안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기 때문이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지난 2013년 박근혜정부 출범에 따라 식품위생관리 중 유통·판매단계 업무를 식품의약품안전처로 이관했지만 생산부터 판매까지 전 단계의 위생관리가 필요하다는 19대 대선 공약이 나오면서 식약처 업무를 되가져오는 ‘조직 부풀리기’에 급급한 모양새다. 문제는 농림축산식품부가 몸집 키우기에 집착하는 것과 반대로 농민은 넘치는 수입농산물에, 널뛰는 농산물 값에 벼랑 끝에 서 있고 농촌인구는 늙고 쪼그라들었다. 농식품부는 과연 누구를 위해 존재하나.

2015년 9월 16일 전국농민회총연맹 전남, 전북, 충남 지역 농민들이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농림축산식품부 앞에서 쌀 수입 중단과 쌀값 폭락 대책을 마련할 것을 정부에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조상규 전농 전북도연맹 의장이 박근혜 대통령이 대선후보 시절 만든 현수막에 ‘약속을 지키지 못하면 물러나야’라고 적고 있다. 이날 이동필 장관 면담이 예정돼 있던 전남지역 농민들은 기자회견을 빌미로 면담을 취소한 이 장관을 강하게 성토했다. 한승호 기자

농민 없는 농식품부

1948년 ‘농림부’가 신설된 이래 1973년 농수산부, 1986년 농림수산부, 1996년 농림부, 2008년 농림수산식품부, 2013년 박근혜정부 시절 현재의 ‘농림축산식품부’로 명칭이 바뀌었다. 명칭이 줄었다 늘었다 했지만 대한민국 정부조직 17부 3처 17청 중 하나인 농림축산식품부는 중앙행정부처로서 △식량의 안정적 공급과 농산물에 대한 품질관리 △농업인의 소득 및 경영안정과 복지증진 △농업의 경쟁력 향상과 관련 산업의 육성 △농촌지역 개발 및 국제 농업 통상협력 등에 관한 사항 △식품산업의 진흥 및 농산물의 유통과 가격 안정에 관한 사항 등이 주요 임무이다. 장·차관과 2실, 4국 8관 46과(담당관·팀)를 비롯해 5개의 소속기관(농림축산검역본부,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 농식품공무원교육원, 한국농수산대, 국립종자원)까지 모두 3,277명이 몸담고 있다. 식량의 안정적 공급, 농민 소득과 복지증진은 농식품부의 주요 설립근거다. 하지만 좀처럼 ‘농심’을 찾기 힘들다는 게 농식품부에 대한 평가다.

18대와 19대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소속 한 보좌진은 “농민 없는 농식품부가 가장 문제다”고 단언했다. 그는 “농식품부는 관료 조직 중 하나이지만 기획재정부 공무원과 농식품부 공무원은 달라야 하지 않나”라며 “물가정책만 놓고 봐도 기획재정부가 물가안정에 초점을 둔다면 농식품부는 생산자 관점에서 물가를 바라봐야 한다고 본다. 특히 농가소득 보장과 물가안정이 상충될 때 농식품부는 생산자 이익을 대변하는 역할에 나서야 하는 것 아닌가. 기재부와 농식품부 조직의 설립목적이 다른데, 최근엔 차이가 없다”고 쓴소리를 했다.

또 다른 보좌진은 “6차산업 정책도 농가소득 보장이 목적이 돼야 한다. 하지만 정책만을 위한 예산이 편성되다보니 현장과 괴리가 생기는 것”이라며 “농민들은 6차산업화라는 게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지 막막할 뿐 아니라, 소농들의 진입장벽은 너무 높다. 일부 규모화 된 농가들이 보조금을 통해 소득을 올리는 구조를 바꿔보려는 정부의 마인드가 없어 뵌다”고 답답한 심경을 털어놨다.

이어 “물론 부처별 정책평가라는 것이 수치로 재단되다 보니 소농들이 1년 단위로 성과를 내주지 못하는 한계도 분명히 있다. 하지만 개방농정으로 농업과 농촌을 망가뜨려 놨다면 교육이 백년지계이듯, 농업도 백년지계라는 생각으로 장기정책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015년 7월 22일 농림축산식품부가 밥쌀용 쌀 9만 톤을 계획대로 수입하겠다는 내용의 보도가 나오자 경기 여주지역 농민들이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농림축산식품부 앞에서 ‘밥쌀용 쌀 수입 반대’, ‘이동필 장관 사퇴’를 촉구하는 연좌 농성을 하고 있다. 한승호 기자

장관의 현장 방문,
아무리 다녀도 귀가 막히는 구조

쏟아지는 업무에 늘상 야근인 중앙부처 공무원들의 고충을 모르는 바 아니다. 하지만 현장에서 멀어지고 서류에만 매달리다 보면 ‘탁상행정’의 늪에 빠지게 된다. 농민들은 농식품부와의 연결통로에 심각한 갈증을 느끼고 있다. 김재수 장관은 농업현장 민원을 해소하는 차원에서 ‘농정신문고’와 ‘금요농정 브라운 백 미팅’을 각각 개최하고 있다. 농정신문고는 농식품부에 접수된 각종 민원을 장관이 직접 검토한 후 민원인에게 전화를 걸어 해법을 제시하거나 추가 애로사항을 접수하는 방식이다. 지난 3일 6번째 농정신문고가 개최됐다. ‘브라운 백 미팅(brown bag meeting)’은 간단한 점식식사를 곁들인 토론 모임을 뜻하는데, 농삿일을 하던 농민이 흙 묻은 바지를 툭툭 털고 이야기하기엔 어째 단어부터 낯설다.

농촌의 한 활동가는 “농식품부가 시급히 개선해야 하는 것이 현장과 관련한 부분이다. 장관이나 관련 국장급 라인들이 실제 현장의 민낯을 보는 통로가 없다. 장관이 농촌현장을 방문했다 해도 이미 지정된 선도농들과의 ‘기획된’ 만남만 있다. 농민들의 불편과 불만은 사전 차단되기 일쑤”라며 “현장에 장관이 오든 국장이 오든 사업성과를 미리 정해놓고, 그것만 보러오는 형식적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아무리 현장을 많이 다니고 농민과 소통의 장을 펼쳤다 해도, 귀가 막히는 구조”라고 꼬집었다.

전현직 장관에 대한 소통방식도 한마디 덧붙였다. “이동필 장관의 경우 농촌을 열심히 돌아다니며 페이스북으로 알려내 소탈하다는 인상이 짙고, 김재수 장관은 엘리트적 모습이 강하다. 세련돼 보이나 만나는 폭이 얄팍하다는 생각이다. 격식 없이 연다는 ‘브라운 백 미팅’도 효용성 측면에서 무게감이 없다. 서울로 불러올리지 말고 현장에서 농가들과 새참 먹으면서 말을 섞을 장관은 없나.”

2015년 7월 24일 전국농민회총연맹 소속 농민 50여명이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농림축산식품부 앞에서 ‘밥쌀 수입 저지와 신의 없는 이동필 장관 사퇴를 위한 농민 투쟁 돌입’ 기자회견을 열고 장관 사퇴를 외치고 있다. 한승호 기자

농업 위기는 곧 농식품부 위기

국회 한 관계자는 “농식품부가 농림청으로 축소되는 것도 농담으로 흘릴 일이 아니다. 농민 인구가 줄고 생산성이 떨어지면 다른 부처와 통폐합도 가능한 것 아닌가”라며 우려했다. 농민권익을 위해 앞장서야 한다는 주문에서 나온 말이지만, 가벼이 넘길 수 없는 상황이다. 농민들이 가장 중요하다고 꼽은 농가소득문제도 ‘농업’이라는 1차 산업을 되살리는 정책보다 농촌관광이나 농식품 수출 등 우회적인 방법을 앞세우고 있다. 지난해 지자체가 농산물값 안정을 위해 자구책으로 마련한 ‘최저가격보장조례’를 막아선 것도 농식품부다. 쌀값문제도 빼놓을 수 없다. 올해 쌀 생산조정제 예산확보에 실패한 농식품부는 수급안정을 위한 변방의 대책들만 나열하고 있다. 못자리를 하는 농민들이 올해 수확기 쌀값도 걱정해야 하는 불안한 심경에 공감한다면 실효성 없는 정책만 홍보한다거나 사상 최고의 쌀재고량을 떠안고 있는 사태를 앞두고 지자체에만 책임을 떠넘길 수 없을 터.

경기도 여주에서 벼농사를 짓는 농민 전용중씨가 ‘쌀값문제의 명약’이라며 한마디 던진다. “농식품부 공무원들의 월급을 쌀값과 연동해서 산정하라. 1년 연봉이 백미 200가마, 식으로 쌀값을 기준 삼는다면 땡볕에 현장오지 않아도 되고 농민과 대화하지 않아도 된다. 쌀값관리가 정책 1순위가 될 게 분명하니까.”

새 정부 새 농정은 ‘농심’을 충전하는 데서부터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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