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문화재를 넘어 대중 곁에 다가온 ‘문배주’

원료 수수·조 100% 국내산 … 잡곡 판로처 기능도 톡톡

  • 입력 2016.03.04 11:24
  • 수정 2016.03.07 10:43
  • 기자명 안혜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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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안혜연 기자]

문배 과실 향이 난다 해서 이름 붙여진 문배주는 국가 중요무형문화재 제86호로 지정된 우리 전통주다. 현재 문화재청에서 국가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한 전통주는 문배주, 두견주, 교동법주 뿐이다. 

과실 향이 난다는 특징 때문에 과실이 들어간 술로 오해할 수도 있지만 정작 문배주에는 문배는커녕 어떠한 과실도 들어있지 않다. 오직 수수와 조, 밀을 이용한 누룩 등 곡식을 원료로 만든 문배주는 그 독특한 향 때문에 더욱 의미 있다. 

문배주는 고려 건국초기 왕건에게 진상됐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올 정도로 오래된 술이다. 그리고 현재의 문배주는 문배주 제조법을 5대째 이어오고 있는 이승용(43)씨의 고조할머니인 박씨할머니가 가양주 형태로 명맥을 이어 온 것으로 출발했다. 

문배주를 상품화 한 것은 이승용씨의 증조할아버지 이병일씨와 할아버지 이경찬씨가 1946년 평양에 평천양조장을 지으면서부터다. 이후 전쟁이 일어나면서 남쪽으로 내려와 ‘거북선’이라는 이름으로 문배술을 생산했으나 양곡관리법으로 인해 생산이 중단되는 아픔을 겪어야 했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양곡관리법이 풀리고 이경찬씨가 중요무형문화재 문배주 제조기능보유자로 지정되면서 문배주는 다시 빛을 볼 수 있게 됐다. 

문배주의 가치는 그 맛과 향뿐만 아니라 원료가 되는 수수와 조가 100% 국내산이라는 점에도 있다. 농가와의 계약재배 비중이 제일 많고 일부 농가나 영농조합법인과의 직거래, 그리고 김포시내에서 자사 자체재배를 통해 원료를 조달한다. 

주 계약재배 지역은 강원도 영월 지역이었으나 최근엔 충북 단양, 전남 해남·신안, 경북 일대까지 확대했다. 이는 전통주가 우리나라 잡곡 판로의 하나의 가능성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 문배주 제조를 5대째 이어오고 있는 이승용씨가 최근 새롭게 시판된 유리병 문배주를 가리키고 있다.

문배주는 만들기 시작해 약 15일 발효를 거쳐 짧게는 6개월에서 1년까지 숙성 기간을 가진다. 경기도 김포시 통진읍에 위치한 문배주 양조장에서 만난 이승용씨는 “수수 자체의 단맛으로 인해 첫 맛은 달지만 끝 맛은 드라이한 맛입니다. 첨가물이 없어서 목 넘김이 좋고 숙취도 없죠”라고 문배주의 특징을 들었다. 

이승용씨는 젊은 감각으로 새로운 마케팅도 시도하고 있다. 기존 도자기로 만들어진 문배주 병 외에 깨끗한 느낌의 유리병을 새로 디자인해 시판한 것. 시도는 성공적이었다. 유리병을 시판한 이후 서울 내 20~30군데에 불과했던 문배주 취급 식당은 현재 200여개로 늘어났다. 

이씨는 “도자기가 갖고 있는 올드함을 좀 벗어나고 싶었어요. 젊은 소비자들이 생각하는 전통주의 식상함 등을 현대적으로 표현하고 싶었고, 그렇게 만들어야 젊은 층에 다가갈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라며 “도자기는 도자기대로 유지하고 유리병을 개발하면서 한식 주점이 아니더라도 이자카야 등에서도 문배주에 쉽게 접근하고 있는 추세입니다”라고 말했다. 뿐만 아니라 기존 도수인 40도 외에 23도, 25도 등 상대적으로 낮은 도수로 개발된 문배주도 반응이 좋다고 한다. 

전통주 진흥을 위해 이승용씨는 소비자와 전통주가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전통주 진흥을 위해선 당연 소비가 많이 돼야 합니다. 소비자가 쉽게 다가갈 수 있는 마트 등에 전통주가 많이 진열돼 있어야 하고, 기존에 소비하던 맥주나 소주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전통주도 평상시에 소비될 수 있다는 인식이 많이 생겨야 합니다. 원료를 안정적으로 공급받을 수 있는 여건도 중요하죠. 술은 농산물이 있어야 만들 수 있는데 원료 가격이 급상승 한다거나 물량이 줄어버리면 어려워질 수밖에 없습니다.” 

러시아의 보드카, 프랑스의 꼬냑, 영국의 위스키처럼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술 하면 문배주가 떠오를 수 있도록 만들고 싶다는 것이 이승용씨의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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