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농산업 10년의 숙원, 전국단위 단일쿼터제

낙농 선진국, 생산자 중심으로 단일쿼터 관리
복잡한 산업구조·다양한 이해관계 … 국내 도입 까마득

  • 입력 2015.11.07 11:35
  • 수정 2015.11.07 11:37
  • 기자명 권순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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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권순창 기자]

수급조절에 치명적 한계를 드러내고 있는 낙농산업에서 전국단위 단일쿼터제가 수급조절을 위한 가장 효과적인 대안임에는 이견이 없다. 그러나 도입을 저해하는 갖가지 요소들은 흡사 시한폭탄을 둘러싼 복잡한 전선을 연상케 한다. 10년째 거론되고 있을 정도로 중요한 낙농 전국단위 단일쿼터제는, 또한 10년째 진전이 없을 정도로 어려운 사안이기도 하다.


선진국형 모델, 전국단위 쿼터제

생산자 중심의 전국단위 단일쿼터제는 낙농 선진국의 공통된 정책모델이다. 우리나라와 같은 유제품 수입국 가운데 안정적인 농가소득으로 유명한 캐나다와 이웃나라 일본이 대표적이다.

캐나다는 정부와 생산자단체의 긴밀한 공조체계를 통해 원유수급을 조절하고 있다. 우선 정부기관인 캐나다낙농위원회(CDC)는 국산 유제품 생산과 직결되는 가공원료유 쿼터만을 관리한다. 가공원료유 쿼터량을 설정하고 생산비를 기초로 한 목표가격을 정해 이를 보장한다.

핵심적인 역할은 각 주의 생산자단체인 우유판매위원회(MMB)가 도맡는다. CDC 산하 우유공급관리위원회(CMSMC)가 지역 MMB에 가공원료유 쿼터를 배분하면, MMB는 자체적으로 설정·관리하는 음용유 쿼터와 함께 이 가공원료유 쿼터까지 통합 관리한다. 지역 내 원유를 일원적으로 집유해 유업체에 공급하고 용도별 차등가격에 의해 판매한 수익을 농가엔 종합유가로 정산한다.

특기할 점은 가공원료유 쿼터는 정부기관인 CDC가, 음용유 쿼터는 생산자단체인 MMB가 각각 따로 주관한다는 점이다. 가공원료유 쿼터는 정부가 엄격히 관리해 생산기반을 보호하고, 음용유 쿼터는 생산자단체가 탄력적으로 운영하면서 연간 총 쿼터량을 맞추는 방식이다.

일본의 낙농은 최근 TPP 등의 변수에 직면해 있긴 하지만 생산자 중심의 자율쿼터제 방식이 잘 정착한 모델로 꼽힌다. 지역낙협의 중앙조직인 중앙낙농회의(JDC) 산하 원유수급위원회에서 과잉재고, 낙농경영 안정성, 수입상황 등을 고려해 음용유 쿼터를 설정한다. 이 쿼터가 각 지역의 지정생산자단체에 배분되면 지정생산자단체는 캐나다의 MMB와 마찬가지로 일원집유와 독점공급, 종합유가 정산을 수행한다.

자율쿼터제 방식이지만 일본 전체 원유생산량의 97%가 이 체제 속에서 관리되고 있다. 원유수급 불균형 시의 다양한 정부 정책지원 대상을 쿼터제 참여 농가로 한정하면서 사실상의 강제성을 부여한 까닭이다. 가공원료유 측면에서는 홋카이도 지역 원유의 가공원료 사용을 정책적으로 지원하고 있는데, 음용유 부족 시 이 가공원료유를 전용함으로써 쿼터제의 완충효과를 꾀한 것이 특징이다.

조석진 한국낙농육우협회 낙농정책연구소장은 우리나라에 도입해야 할 전국단위 단일쿼터제의 핵심으로 ▲집유-가공의 분리 ▲일원집유, 다원판매 ▲용도별 차등가격제 ▲종합유가제를 꼽았다. 생산자단체가 일원집유해 유업체에 다원판매하며, 용도별 차등가격에 의해 판매한 후 농가에는 종합유가로 산정하는, 선진국 사례에서 볼 수 있는 공통적 구조다.


국내도입 논의, 10년째 제자리

전국단위 단일쿼터제는 낙농산업의 특성을 반영한 근본적이고 효율적인 수급관리 체제로 주목받아 왔다. 낙농진흥회가 집유일원화에 실패한 이래 전국단위 쿼터제 마련에 대한 갈증이 꾸준히 이어졌지만 현실은 ‘어디서부터 손 대야 할지 모를’ 난관의 연속이다.

가장 먼저 꼽을 수 있는 걸림돌은 형평성 문제다. 현재 우리나라 낙농산업은 업체별로 집유능력, 판매능력 등 경영요건이 제각각 달라진 상태로 굳어져 있다. 쿼터는 고무줄처럼 늘어나 있고 쿼터가격까지 천차만별인 상황에서 기준을 통합하는 것 자체부터가 수많은 잡음을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다. 농가 입장에서도 엄연히 사유재산으로 자리잡은 쿼터의 소유권을 조율 과정에서 일부 침해받을 소지가 있다. 쿼터값이 리터당 50만~70만원까지 솟구쳐 있는 상황에서 이는 작지 않은 문제다.

유업체들로선 전국단위 쿼터제 하에 기업 자율성을 침해받는 게 가장 우려스런 점이다. 직속 계약농가가 없어지고 독점권을 가진 집유주체와 거래하는 것은 아무래도 경영상의 제약을 가져오게 된다. 어렵사리 전국단위 쿼터제를 도입했다 치더라도 경영악화로 수입원료에 의존하는 업체가 하나둘 생긴다면 제도 자체가 크게 흔들리게 된다.

또한 생산자 중심의 단일쿼터제에선 협동조합이 중요한 기능을 맡게 되는데, 그 협동조합 가운데 민간유업체와 경쟁관계에 있는 서울우유협동조합이 포함돼 있다는 점도 유업체들이 껄끄러워하는 부분이다. 서울우유의 집유-가공 분리라는 대형 공사가 선행돼야 할 수도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정부의 지원이다. 시유 이외의 국산 가격경쟁력이 떨어지는 상황에서 용도별 차등가격제가 제 기능을 하기 위해서는 국산 유제품 생산을 위한 정부의 가공원료유 차액지원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덧붙여 재정적, 제도적인 추가 지원이 있다면 준비 과정의 혼선을 최소화할 수도 있는 문제다.

조석진 소장은 “지금 우리 낙농산업에 필요한 건 ‘개선’이 아니라 ‘개혁’이다”라고 힘줘 말했다. 큰 틀에서의 근본적인 체질개선이 없다면 낙농 위기는 계속 중첩된다는 주장이다. 한국낙농육우협회는 최근 다시 한 번 ‘생산자 중심의 전국단위 단일쿼터제’를 정부에 강력히 건의하고 나섰다. 유업체를 중심으로 전국단위 쿼터제에 대한 회의적 시각도 깊어가는 상황에서 전환적인 논의를 이끌 계기가 될 수 있을지 기대가 모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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