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친화형 농기계, 여성농민 피부에 와 닿아야

여성 농민, 여성 친화형 농기계 필요성 느끼지만 … 실질적인 보급은 ‘글쎄’

  • 입력 2015.05.22 13:44
  • 수정 2015.05.22 13:45
  • 기자명 박선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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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박선민 기자]

여성 친화형 농기계가 여성 농민의 영농활동을 돕기 위해 필요하다는 데는 모두가 공감대를 갖고 있다. 그러나 현장에선 실질적으로 개발이 활성화되고 보급이 이뤄지고 있는지는 의문이란 지적이다.

남성 위주의 대형농기계서 탈피

상주시 외서면에서 농사를 짓는 황재순씨는 5,000평 논농사와 함께 2,000여평의 밭에 고추, 생강, 땅콩, 참깨, 양파 등 여러 가지 작목을 심고 있다. 그는 최근 작목반에서 구입한 제초형 관리기를 사용하고 있다. 친환경 농사라 제초 작업이 쉽지 않은 터에 동력으로 손쉽게 작동할 수 있는 관리기 2대를 마련한 것이다.

황씨는 “예전엔 밭에 쪼그려 앉아 호미로 직접 풀 베고 메는 작업을 했는데, 이번 관리기로 로터리 작업을 더 빠르게 할 수 있고, 동력으로 움직이다 보니 서서 할 수 있어서 힘이 덜 들고 허리도 덜 아프다”고 말했다.

과거에 비해서 여성농민의 농기계 사용이 증가하고 있지만, 농업활동은 여전히 대형농기계 위주로 이뤄지고 있다.

그러나 여성 농민이 대형농기계를 사용하기엔 안전사고 우려와 기계운전으로 인한 심적 부담이 큰 실정이다. 관리기의 경우 여성이 사용하기에는 로터리 작업이나 제초작업 시 적정하중문제로 중심을 잡기 힘들다. 밭작물에 많이 쓰이는 예취기, 탈곡기도 무겁고 조작이 힘들어 여성 농민이 기피하는 농기계다. 기계가 급발진 할 경우 대처능력의 부족으로 안전사고 우려도 있다.

이춘선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전여농) 정책위원장은 “영농활동 중 트랙터에서 떨어지는 사고가 가장 많이 발생한다. 또 대형농기계는 직접 운전을 해야 하는데 여성농민들은 조작법을 잘 모르고 위험하단 인식 때문에 사용을 꺼려 한다”고 전했다.

이렇다보니 여성 농민이 영농활동의 주변으로 밀려나는 현상이 발생한다. 대형농기계 사용은 대부분 남성이 맡아서 하고 있기 때문에 여성농민은 보조역할에 머무르기 때문이다.

이에 강원도 양구군에서 농사를 짓는 용옥천씨는 “극단적으로 남편이 죽으면, 보조만 하던 나는 농사를 그만둘 수밖에 없다”며 “여성농민은 남성의 보조적 역할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라도 여성 친화형 농기계 개발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황재순씨는 “예전에는 남편들이 기계 작업을 다 해놓으면 여성농민들은 보통 보조역할에 머물렀는데, 여성 친화형 기계를 사용하니 주체적으로 남편 일이 아닌 ‘내 일’이란 생각이 더 든다”고 말했다.

한편, 파종, 이식, 수확기에 노동력이 대량 투입되는 시기에는 품을 사는 것도 문제다. 이는 결정적으로 농가소득에 영향을 미친다. 기계화는 노동량을 획기적으로 줄여준다. 농업공학연구소 조사에 따르면 여성 친화형 농기계인 자주식 양파수확기의 경우, 양파수집, 줄기절단, 톤백담기 등 작업을 수행할 때 인력으로 할 경우 ha당 601시간이 필요한데 비해 기계는 8.4시간 밖에 들지 않는다고 보고했다. 인건비와 생산비를 줄이기 위해서라도 밭농사의 기계화가 필요하다.

▲ 경북 상주에서 농사짓는 황재순씨가 사용하는 동력형 관리기다. 동력을 이용한 농기계는 여성친화형 농기계의 주요한 특징이다. 동력 덕분에 밭 작물에 필요한 농작업을 손쉽게 행할 수 있다.

여성 친화형 기계 개발·보급 활성화 필요

여성 친화형 농기계의 필요성이 커짐에 따라 정부도 농기계 개발에 나서고 있지만 현장에선 여성 친화형 기계를 체감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여성 친화형 농기계 보급의 중요성을 인식해 여성농업인육성기본계획에서도 전문여성 농업경영인력 육성을 목표로 설정하고 여성 친화형 농기계 개발을 추진과제로 꼽고 있다.

여성 친화형 농기계 개발에 대한 요구가 늘어남에 따라 매년 4~6대 정도로 개발하고 있다. 최근 5년간 총 25대를 개발했다. 지난해 개발된 농기계는 ▲잡곡 파종기 ▲곶감 중량 선별기 ▲송풍기능 농약 방제복 ▲발누름판 부착 삽 ▲농작업화 등 5종이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여성 친화형 농기계가 피부에 와 닿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여성농민들은 여성 친화형 농기계가 무엇인지, 개발이 됐는지조차 모르는 상황이다.

농민들에 따르면 임대사업소에는 여전히 트랙터 부착형 기기가 대부분인데다 이앙기, 탈곡기 등 수도작과 대형기계 위주로 집중돼 있다. 농기계 임대사업소는 농기계 구입부담을 덜어주고 농기계 이용률을 높이기 위한 목적에도 불구 여성친화형 농기계 보유는 미미한 상황이다.

황재순씨는 “여성농민들이 가져와서 사용할만한 것들이 별로 없다”며 “대부분 남성들만 사용하는 기계 위주로 트랙터에 부착해서 쓰는 것들 뿐”이라고 말했다. 또 “빌리려면 트랙터를 직접 가져가서 빌려야 되고, 또 기계를 직접 가지고 가서 부착하는 것이 농기계를 사용하지 않는 여성 농민들에겐 익숙치 않아 임대사업소에 가서 빌릴 생각도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용옥천씨도 여성 친화형 기계는 듣지도, 접하지도 못한 상황이라고 전했다. 양구군 역시 친환경 농업 육성을 위해 ‘제초제 없는 마을’을 목표로 설정하고 보조지원사업을 하고 있다. 용옥천씨는 “보조지원사업은 관리기, 예초기 구입 등에 맞춰져 있다”며 이런 농기계들은 “여성들이 하기엔 힘이 많이 들어 여성이 쉽게 운영할 수 있는 여성 전용 예초기가 나왔으면 좋겠다”고 바람을 나타냈다.

농식품부 농기자재정책팀 관계자는 여성친화형 농기계에 대해 “여성 친화형 농기계가 따로 명시된 것은 아니다. 여성만 쓰는 기계가 아니고 다루기 쉽게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일축했다. 이 관계자는 “농기계 기종만 3만여개인데 어떤 기종이 여성 친화형이라고 확실히 말할 수 없다”라고 말했다.

임대사업소의 여성친화형 농기계 보유에 대해선 “각 지역별로 지역기술센터가 농기계 선정 심의위원회를 열어 각 지역 농업에 필요한 농기계를 구입한다”고 전했다. 또 “여성 농민 대상으로 농기계 교육을 실시하는데 여성 농민들의 영농활동이 바빠 교육 참여율이 저조하다”고 말했다.

이춘선 전여농 정책위원장은 현장의 농민들이 여성 친화형 기계를 잘 모르는 데 대해 “여성 친화형 농기계 개발을 실질적으로 하고 있는지 의문”이라고 문제를 제기했다. 또 농기계 선정 심의위원회가 남성으로만 구성된 점도 지적했다. 여성이 피부로 느끼는 어려움을 반영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뜻이다.

이어 “저속 동력기 부착, 트랙터 기기에 부착하는 형식이 아닌 여성이 직접 손으로 운영하는 형태, 여성의 힘에 맞는 기기 등을 개발해야 한다”며 여성에게 실질적으로 필요한 기계를 개발해줄 것을 촉구했다.
또 전여농은 지역마다 여성농민들이 자주 사용하는 농기계를 조사해서 여성 친화형 농기계로 개발해줄 것을 당국에 요청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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