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농기계, 힘이 덜 들었으면 좋겠다”

  • 입력 2015.05.22 13:38
  • 수정 2015.05.22 13:41
  • 기자명 박선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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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박선민 기자]
 

▲ 전남 순천의 여성농민 박순애씨가 이앙기를 밀며 빠르고 능숙하게 모를 심고 있다. 박씨는 여성농민이 농기계 사용의 부담감에서 벗어나면 농기계 사용은 어렵지 않다고 말했다.한승호 기자

이른 아침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해 모내기 일정이 꼬이고 말았다. 원래라면 아침 7시부터 모내기 현장에 나갔겠지만 비가 좀 잦아들기를 기다렸다가 아침 9시쯤 모내기에 나선다.

전남 순천시 황전면 비촌리에서 논농사를 짓는 박순애씨는 물 빼는 작업을 하러 간 남편의 연락을 받고 모내기하러 나갈 채비를 한다.

보통 대형 농기계를 이동하고, 운영하는 역할은 대개 남성들이 맡기 마련이지만, 박씨는 동네에서 유일하게 농기계를 모는 여성농민이다. 박씨는 능숙하게 이앙기를 점검한 후 트럭에 싣고 논으로 이동했다. 박씨가 사용하는 기계는 보행용 이앙기다.

논에 도착해 트럭에서 이앙기를 내렸다. 박씨는 능숙하게 이앙기 시동 줄을 잡아당겼다. 시동이 걸리지 않는 이앙기를 살펴보더니 기름이 안 나와서 그렇다며 기름을 넣고 다시 시동을 거니 제대로 시동이 걸렸다. 동네 주민도 지나가면서 박씨에게 기술자가 다됐다며 감탄사를 내뱉는다.

논에 들어가려니 이앙기 시동이 또 걸리지 않는다. 그런데 이번엔 시동 줄을 몇 번 당겨도 걸리지 않는다. 시동 거는데도 많은 힘이 필요해 보인다. 그제야 박씨는 남편을 부른다. 남편이 줄을 당기니 걸리지 않던 시동이 한 번에 걸린다. 이후 박씨는 이앙기에 모판을 싣고 빠르게 작업을 시작했다.

모내기철인지라 주변 논에서도 한창 모내기에 전념하느라 바쁘다. 바로 옆 논에서 작업을 하는 한 여성 농민은 모판에 물바구미 약을 치는 작업을 하고 있다. 대형농기계 작업 위주로 이뤄진 논농사라 여성농민들은 모판을 들어주거나 농약을 모판에 치는 등 보조 역할에 머물고 있다.

모판에 약을 치던 여성농민은 농기계를 모는 것은 항상 남자 몫이라고 말했다. 위험하고 작동법이 어렵기 때문이다. 이런 고정관념이 있기 때문에 여성농민들도 애써 하려고 하지 않는다고 전했다. 그녀는 동네에서 여자가 농기계 모는 건 흔치 않다며 박씨가 특이한 것이라고 웃으며 말했다.

“힘이 필요하니까 여성들은 농기계를 잘 못 다루지요. 보조역할만 할 뿐이예요.”

박씨가 이앙기를 배운 까닭은 이앙기가 없었던 당시 이앙기 인력을 사서 모를 심기엔 소득에 비해 지출이 너무 컸기 때문.

“인력을 사서 하기엔 아까우니까, 답답하고 내가 직접 해야겠다 생각했지. 남편한테 이앙기를 사서 가르쳐 달라 그랬지.”

박씨는 작동법을 익히고 나서 기계를 작동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고 했다. 이앙기를 배우고 나선 품을 받고 모심는 작업도 했다.

그러나 논농사에 필요한 농기계는 무겁고 다루기 힘든 대형 농기계들이 대부분이다. 때문에 박씨는 대형 농기계는 힘이 많이 든다고 전했다. 젊을 때 힘을 많이 쓰다 보니 97년엔 허리디스크 수술을 받고 지금은 장애 판정을 받은 상태다.

박씨는 경운기도 능숙하게 몰아 여러가지 짐을 옮기기도 한다. 비탈길에서의 경운기 운전도 어렵지 않다. 콤바인도 요령만 알면 할 수 있다고 장담했다.

“‘남자도 못하는디, 어려운디’라고 동네사람들이 그러더라. 근데 해보니까 다 할 수 있겠던데. 겁이 나서 못 다루는 것이지, 농기계 작동을 어렵다고 생각해 본적은 없어.”

그러나 농기계는 힘을 써야 하는 것들이 많기 때문에 힘이 덜 든다면 여성농민들도 농기계를 다루기 훨씬 수월할 것이라고 아쉬움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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