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농어업인육성기본계획 13년,
법과 현실은 멀다

농가 인구 중 여성 52% … 남성중심 제도, 체질변화 시급
성과 있으나 현장과 온도차 여전…중장년층 지원 사업 확대해야

  • 입력 2013.12.01 16:30
  • 기자명 원재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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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농민, 법에서 권리 얻다

여성농어업인육성법(이하 여성농업인육성법)은 지난 2001년 12월 제정됐다. 농촌인구 감소와 고령화라는 어려운 여건 속에 가정일과 농삿일의 상당수를 여성농민이 담당하게 됐지만 정작 정책에선 ‘존재감 없는’ 모순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반성이 그 출발점이다.

앞서 1998년 국민의정부 출범 당시 종전의 정무장관(제2)실을 10년 만에 폐지하고 대통령 직속 여성특별위원회가 신설되면서 행정자치부, 교육부, 법무부, 농림부, 보건복지부 5개 부처에 여성정책담당관실이 신설됐다. 이후 농림부가 주관하는 여성농업인육성법이 제정되고, 2001년부터 여성농업인육성 5개년 계획이 수립됐다.

여성농업인육성기본계획은 5년 단위로 재설계 되고 있으며 현재 3차 계획이 시행중이다. 농림축산식품부는 1차 기본계획(2001 ~2005)이 경영능력 향상을 위한 교육과정 개설과 출산한 여성농민의 농가도우미 지원사업을 도입하는 등 여성농민 육성정책의 기반을 마련했다면 2차 기본계획(2006~2010)은 ‘농업인 확인서 발급제’ 시행, 농어업경영체 등록시 경영주 외에 배우자도 등록할 수 있도록 하는 등 제도적인 기반을 마련했다고 평가하고 있다. 올해로 13년차, 십여년 연륜의 여성농업인육성기본계획. 현장에서 어떤 평가를 받고 있을까.

 

▲ 지난달 25일 서울여성프라자에서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주최로 3차 여성농업인육성기본계획 중간평가 토론회가 있었다.

‘보육’에 예산 치중 … 40~50대 여성농민 지원제도 더 확대돼야

지난달 25일 서울여성프라자에서는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회장 강다복) 주최로 3차 여성농업인육성기본계획 중간평가 토론회가 열렸다. 여성농민을 비롯해 농식품부, 농경연 등 정부와 연구단체들이 함께 더 나은 여성농민들의 삶을 위해 머리를 맞댔다.

아이를 업고 참여한 한 여성농민은 토론회가 끝날 때까지 들락날락 다리품을 팔아야 했지만, 법이 만들어지고 현장에서 뿌리내린 지 십여년을 몸소 겪었을 주체로서 끝까지 자리를 지켜냈다.

이날 토론회에서 현장 여성농민들이 말하는 첫 번째 문제는 보육중심에 치우쳤다는 점이다. 2013년 여성농업인육성기본계획 예산 중 보육관련 예산이 전체 예산의 84.7%를 차지하고 있다는 점은 단적인 예이다. 여성농민들이 농촌에서 아이를 낳아 키우는 문제가 개선됐다는 점은 반가운 일이지만, 어린자녀가 있는 젊은 여성농민들은 소수이고 농삿일을 도맡아 하는 주력층이 40~50대 여성농민인 점을 감안하면 피부에 와 닿지 않는다는 평가다.

농협 조합원 가입, 여전한 금녀의 벽

여성농민들이 강조하는 것 가운데 하나가 ‘법적 지위 확보’ 문제다. 진전된 것은 지난 2차 기본 계획에서 농가경영체 등록에 경영주와 종사자를 함께 쓰고, 농지원부에 가족란을 추가했다는 점이다. 여성농민들이 농민으로서의 위치를 서류상에서 확인할 수 있게 됐다.

그러나 도시보다 보수적인 농촌에서 제도는 현실과 동떨어졌다는 지적이다. 한 예로 여성농민이 지역농협에 조합원으로 가입돼 있는 남편 외에 복수조합원 가입을 문의한 결과 “농지가 없거나, 영농자재 거래 실적이 본인 명의로 없으면 있던 조합원도 정리하려 한다”는 대답을 들었다는 것.

영농현실에서 농지는 대부분 남성농민들 명의가 돼 있으므로, 법과 제도가 열려있다 한들 현실은 견고하게 닫혀있을 뿐이다.

이 때문에 여성농민들이 ‘농업경영체등록’ 때 ‘공동경영주’로 법적인 지위를 확보해야 한다고 일관되게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농식품부는 농업경영체 등록의 제도 시행 취지가 ‘농장단위’이기 때문에 논농사는 남편, 밭농사는 아내가 주 농업인이라면 각각 농업경영체 등록을 하는 게 현 제도상 맞다는 입장이다.

양성평등 교육, 법에는 있으나 현실엔 없다

여성농업인육성법 시행계획에는 ‘양성평등’ 교육이 있다. 하지만 지역에서 실제 양성평등 교육이 철저히 시행되고 있는 곳은 단 한 곳도 없다는 비판도 나왔다. 도시도 마찬가지지만 보수적인 농촌에서 여성농민 권리를 세우기 위해서는 의식의 변화가 가장 근본적인 해법이다.

가부장적인 전통 사고방식 속에 여성농민은 가사를 전담할 뿐 아니라 양육을 책임지며 농삿일 또한 담당해야 하므로, 꼭두새벽부터 한밤중까지 1년 365일 노동에 시달리는 삶을 살아야 했다. 하지만 양성평등이라는 관점이 확산되는 요즘, 남편이 가사를 분담하고 양육의 공동책임자가 되고 있다.

문제는 농촌은 도시에 비해 그 속도가 더디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교육을 통해 인식을 개선하는 계기가 필요한데 권고사항이다 보니 소홀히 다뤄지기 십상이다. 때문에 양성평등 교육을 의무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예를 들어 1년에 몇 차례 있는 영농교육, 여성농민단체가 실시하는 교육 등에 성평등교육을 의무화하고, 이에 대한 인센티브를 제공하자는 주장이다.

아울러 성인지적 관점의 정책 평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제시됐다. 좋은 농업정책도 남성농민 중심으로 치우진 경우가 허다해 이를 각각 평가하고 다음 정책이 남녀 모두를 아우를 수 있는 정책으로 재편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소규모가공, 보호제도 강화

농업의 6차 산업화가 화두다. 농산물 생산 외에 가공, 유통, 관광까지 농민들 특히 여성농민들에게 보다 많은 능력을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여성농민들이 1차 농산물을 가공해서 부가가치를 높이고자 할 때의 걸림돌이 식품위생법이다. 고춧가루로 판매를 하는 것도, 두부를 판매하는 것도 자칫 범법자가 될 처지인 것이다. 지자체의 조례로 가능하다고는 하지만 시행되는 곳도 드물고, 상위법인 식품위생법의 범주에는 문제가 될 소지가 크기 때문이다. 이에 여성농민들은 소규모 가공에 대한 보호제도를 요구하고 있다.

마을로 찾아가는 정책 필요

여성농민이 집을 비우는 일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좋은 교육이 있어도 시와 도를 넘거나 서울 경기 지역에 있으면 포기할 수 밖에 없다”는 원망도 터져나왔다. 예전에 마을회관에서 하던 농부증을 예방하던 체조도 이젠 군단위 문화센터에서 하기 때문에 접근이 어렵다. 이런 문제가 현장에서는 비일비재하다. 정책의 집행단위를 마을단위로 최소화 해 달라는 요구다.

법 시행 10년, 여성농민 삶속에 뿌리내려야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012년 15세 이상 여성농업인 인구는 51.5%이고, 농업 주 종사자는 53%에 이른다. 이제 농촌 인구뿐 아니라 농업 주생산자도 여성 비중이 절반을 넘어섰다. 여성농민들이 요구하는 권리는 사실상 특별한 것이 아니다. 이제껏 남성농민에게 치우쳤던 법과 제도의 균형을 맞추자는 데 근본 의미가 담겨있다.

여성농업인육성법 시행이 10년을 넘어서면서 변화는 상당하다. 농어업경영체 등록도 일부 개선됐고, 농가도우미를 비롯해 영농·가사도우미도 확대 시행되고 있다. 농촌 젊은 여성의 상당수를 차지하는 결혼이민여성에 대한 사회적 배려도 높아졌을 뿐 아니라, 2011년에는 ‘무소득 배우자’로 간주돼 가입할 수 없었던 국민연금 지역가입 제도가 개선되고 보험료 일부 지원 성과도 낳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성농민들의 삶은 여전히 지난하다. 대부분의 중장년층 여성농민들에게 ‘여성농민정책’이란 다른 나라 얘기이고, ‘권익’이란 낯선 단어다. 법과 제도의 변화속도 만큼 여성농민들에게 파급력을 갖추기 위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원재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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