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 대란, ‘농-농 갈등’점입가경

정읍지역 조합장들 반란, “대농민 선전포고”
조합원 3차 나락적재, 조합장 탄핵 서명도

  • 입력 2010.01.10 20:34
  • 기자명 김규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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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 대북지원을 중단한 정부로부터 퇴로를 차단 당한 농민들이 이번엔 농협장들로부터도 퇴로를 차단당하면서 궁지에 몰렸다. 지난해 11월 20일 정읍지역의 농협조합장들이 공동으로 기자회견을 통해 대농민 선전포고를 한데 이어 지난 연말에는 조합장들이 조합원을 경찰에 고발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쌀대란에 대한 정부의 무대책속에서 우려했던 농-농 갈등이 점입가경으로 치닫고 있는 것이다. 공동 기자회견을 통해 노골적인 담합을 과시하면서 전국농민들에게 충격을 안겨 주었던 정읍지역의 조합장들이 급기야 농민조합원들을 경찰에 고발하는 사태까지 몰고 갔다.

정읍지역 농민들은 “조합장들은 자신들이 살아 남기 위해 조합원들을 죽이는 방법을 택했다”며 결사항전을 준비하고 있다. 지난 한해를 소용돌이 쳤던 쌀대란이 새해와 함께 전국적으로는 정리 상태에 있지만 정읍지역에서는 점점 더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농협장 “단경기 쌀값 오를 것”

지난해 4월 8일 정읍지역 6개농협 조합장(정읍농협 유남영, 신태인농협 김영일, 황토현농협 고명규, 샘골농협 정태호, 칠보농협 김현충, 태인농협 이문석)들과 농협중앙회정읍시지부 김용복 지부장이 2008년산 재고미 대책회의를 개최했다.

당시 정읍지역 농협들은 2008년산 벼를 전북의 타 지역보다도 2천원 높은 5만4천원에 수매 했다. 수매 당시 쌀값은 오름세를 보이고 있었다. 그런데 2009년 새해를 맞으면서 쌀값은 점점 떨어져 갔다. 대책회의를 하던 4월8일 당시 시세는 5만1천500원으로 2천500원의 시세차가 발생했다.

조합장들은 높은 가격으로 수매한 것을 후회하면서 쌀값이 오르기만을 고대했다. 조합장들은 6∼7월 경이면 쌀값이 오를 것이란 기대와 함께 대책회의를 마쳐야 했다.

당시 정읍지역의 08년산 재고미(40kg포대)는 통합미곡처리장 30만가마, 황토현농협 12만가마, 샘골농협 10만가마, 정읍농협 10만가마, 칠보농협 10만가마, 태인농협 6만가마 등 총 78만가마가 창고에 쌓여 있었다.
이러한 상황과 관련 정읍지역 농협장들은 시장원리를 무시한 나락 매입을 후회하면서 대책회의를 마친 것으로 전해졌다.

조합장, 농민단체와 대화 거부

농협장들의 판단과는 달리 농민들은 정부의 쌀대북지원 중단과 계속해서 증가되고 있는 MMA물량 등으로 수확철로 접어들면 더 큰 문제가 올 것이란 예상하고 있었다. 이에 농협측과 쌀값 전망과 관련 협의를 진행하려 했지만 농협측은 농민들과의 만남 자체를 거부했다. 오히려 농민들의 강압으로 비싼 값에 수매한 것 때문에 농협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언론 등을 통해 홍보했다.

▲ 전북 정읍의 황토현농협 조합원들이 쌀값하락 담합과 13명의 조합원을 경찰에 고발한 조합장에 맞서 나락을 3차에 걸쳐 적재했다.
농협장들이 농민단체들과의 대화 자체를 거부하자 마음이 급해진 농민들은 개인 유통업자를 농협과 연결시켜 재고미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으나 이 마저도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정읍지역의 한 농민은 지난해 봄 자신이 알고 있는 유통업자를 농협측에 소개했다.

당시 쌀값은 5만2천원 선. 5만3천원에 매입해 달라며 유통업자를 설득해서 농협측에 소개했지만 농협측은 이를 성사시키지 않았다. 농협측은 농민과 유통업자가 합의한 5만3천원에 100원을 더한 5만3천100원을 수정 제의했다. 그러자 유통업자는 “5만3천원도 농민회 회원들이 요구해서 억지로 합의를 한 것”이라며 냉소를 짓고 돌아섰다는 후문이다.

80여만가마의 재고미와 함께 맞이한 정읍 지역의 가을. 수확을 앞둔 농민들은 또다시 농협조합장들과의 협의를 요구했다. 8월을 지나면서 해마다 진행되어 온 나락값 조정을 위한 협의였지만 정읍지역 농협조합장들은 농민들과의 협의를 계속해서 거부했다.

정읍시농단협은 총 3차례에 걸쳐 나락값조정을 위한 협의를 농협측에 요구했다. 농협중앙회정읍시지부에 공식적인 협의 요구를 2회에 걸쳐 했지만 조합장들은 협의는 물론 농단협 관계자들과의 만남 자체도 거부했다.

그러던 중 10월9일 장태평 농식품부 장관이 정읍을 방문했다. 농단협 임원들은 장 장관과 간담회를 마치고 나오는 조합장들을 만나 나락값에 대한 협의를 요구했지만 “너희들과는 절대 만나지 않는다”는 대답만 들었다.

정읍시농단협은 3차례에 걸친 협의 요구에도 조합장들이 거부하자 한달 후인 11월 9일 수확한 나락을 정읍지역 6개 농협에 적재하면서 본격적인 쌀값투쟁을 시작했다.

농단협, 11월9일 적재투쟁 돌입

농민들의 벼 적재투쟁이 본격화되자 기다렸다는 듯이 정읍지역 6개 조합장들이 그동안의 침묵을 깨고 공동으로 기자회견을 통해 ‘09년 추곡수매 정읍관내 조합장들의 입장’을 밝혔다. 이들은 지난해 11월 20일 정읍시청 브리핑룸에서 합동 기자회견을 갖고 “더 이상 농민단체들의 요구를 들어줄 수 없다”고 밝혔다.

이들은 기자회견문을 통해 “최근 10년간 시세보다 높은 가격에 쌀을 수매해 50억의 적자를 보았다”면서 그 책임을 농민단체와 정부에 전가 했다.

조합장들은 정읍지역 농협의 50억 적자에 대해 “농협 경영 부실은 모두 정부 정책의 잘못 때문에 빚어진 현상으로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위해 정부가 나서야 한다”는 정부 책임론과 함께 “매년 수확기때 연례행사처럼 겪어 온 농민단체와 가진 수매 협상은 시장논리보다 벼 야적투쟁·천막농성 등 강압에 못이겨 시장 가격보다 높은 가격에 수매할 수 밖에 없었다”며 농민단체 책임론을 주장 했다. 

이날 기자회견장에는 정읍시 대표조합장인 이문석 태인농협조합장을 비롯 정읍농협 유남영, 황토현농협 고명규, 샘골농협 정태호, 신태인 농협 김영일, 칠보농협 김현충 조합장이 참여 했으며, 이문석 대표 조합장이 회견문을 낭독 했다.

농민들 2차 나락 적재투쟁 돌입

조합장들이 공동으로 농민단체들과 전면전을 선포하자 농단협도 25일 반박 기자회견을 열고 2차 적재투쟁과 함께 조합장들을 규탄했다. 농민들은 ‘정읍지역 조합장 벼 자체수매 가격담합 기자회견’을 통해 “그동안 농단협의 대화 요구를 거부해 온 조합장들이 공동으로 기자회견을 함으로서 스스로 무능함을 자인 한 것”이라고 주장 했다.

농민들은 “쌀값 하락의 근본 원인은 정부의 안일한 쌀대책에 있는데도 칼 끝을 정부가 아닌 농민들에게 겨누고 있다”며 “조합 적자의 원인은 쌀값 정세를 읽지 못한 채 안일하게 대처해 온 무능한 조합장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이날 기자회견 과정에서 2차적재를 강행하는 농민들과 농협 직원들간에 몸싸움이 벌어지기도 했다. 농민들의 적재투쟁을 막기위해 임산부까지 동원한 사실이 알려지자 농민들은 조합장들의 무능력과 도덕성등을 강력하게 항의 했고, 조합장들은 농민 2명을 경찰에 고발했다.

▲ 이수금 전 전농의장이 17명의 조합원들을 경찰에 고발한 정읍지역 조합장들의 행태와 관련 대표조합인 태인농협 앞에서 단식농성을 벌이고 있다.

정읍의 황토현농협(조합장 고명규)은 정읍지역에서 가장 치열하게 나락 적재투쟁이 일어나고 있는 곳이다. 1만여 포대의 벼가 적재 되고 13명의 조합원들이 경찰로부터 소환장을 받고 있으며, 과반수가 넘는 조합원과 대의원들이 조합장 탄핵을 요구하고 있다.

황토현농협 조합원들은 지난해 11월 9일 정읍지역 1차 나락적재투쟁때 고부, 영원, 소성, 입암 등의 지소에 톤백 300개와 40kg 포대 400개 등 총 7천900(40kg 기준) 가마를 적재한 후 다음날인 10일 천막농성에 돌입했다. 이후 11월 20일 2차적재투쟁으로 본점(고부)에 톤백 50개를 적재 하면서 황토현농협의 벼 적재량은 총 1만여개에 이르고 있다.

조합원 과반수 서명에도 더 받아라

이들 농민들은 정읍지역 조합장들이 공동으로 기자회견을 통해 농민들과의 전쟁을 선포하자 황토현농협 소속 4개면 이장단과 농민단체가 연석회의를 갖고 ‘가마당 4만9천원 전량수매’와 ‘올해(2009년) 안 수매 완료’를 조합장에게 요구했다. 그러나 고명규 조합장은 농민단체가 아닌 조합원들의 요구가 있으면 5만원이든 6만원이든 수매하겠다는 입장을 피력 했다.

선출직 이사 11명 전원 사퇴선언

이에 황토현농단협과 이장단협의회가 이틀 후인 11월 26일 서명에 착수해서 20일만인 12월 14일 조합원 과반수 이상의 서명을 받아 조합장에게 제출했다. 황토현농협의 조합원은 총 4천151명이다. 한 조합원은 “지역을 떠나 있는 조합원들이 20% 정도이고 농사를 짓지 않는 조합원들을 감안할 때 대부분의 조합원들이 서명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고 조합장이 ‘조합원 전체’의 서명을 요구하자 농단협과 이장단협의회는 2차 연석회의를 열고, 조합장 탄핵을 결정했다. 이들은 12월 22일 조합장과 상임이사의 해임 요구를 위한 대의원 서명을 시작했으며 2일 후인 12월 24일 해임요구서 서명을 완료했다. 황토현농협의 대의원은 총 88명이다.

사태가 이렇게 되자 조합장과 상임이사, 사외이사를 제외한 총 12명의 선출직이사들 중 11명의 이사들이 사퇴를 선언했다. 황토현 농협은 13명의 조합원을 건조물침입, 업무방해 등의 혐의를 걸어 경찰에 고발했으며, 오는 2월 쯤 대원대회가 열릴 예정으로 있다.

정읍 지역의 쌀투쟁과 관련 2명의 조합원들이 경찰에 고발된 칠보농협(조합장 김현충) 조합원들은 “조합장이 조합원을 고발한 경우는 처음”이라며 강력하게 성토하고 나섰다.

농민들은 지난 4일 지역의 이장단, 번영회, 농업경영인, 농민회, 자율방범대, 새마을협의회, 청년회 대표 등과 함께 김현충 조합장을 만나 “어떻게 조합원을 고발할 수 있느냐”며 강력하게 항의한 뒤 고발을 취소해줄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김 조합장은 “5개 농협장이 연명으로 고발한 사안이라 어렵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이에 지역 대표들이 “그러면 칠보농협 조합원만이라도 취하해 달라”고 요구하자 “농민들이 담합 하니 조합장들도 담합하는 것”이라고 말해 고소를 취하할 뜻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이들 단체장들은 “그러면 앞으로 후배들에게도 이렇게 고발을 남발할 것이냐”며 강하게 항의했다.

농민이 죽어야 농협이 유지된다?

칠보농협 조합원들은 정읍지역 조합장들의 담합이 성공할 경우 전국적으로 확산될 것이라고 보고 있다. 한 조합원은 “조합장이 조합원을 적으로 삼고 있다”면서 “농민단체들에게 농협 적자의 책임을 떠 넘기면서 자신들의 무능함을 피해 가려 하고 있다”며 성토했다.

또 다른 조합원은 “적자 농사에 먹고살기도 힘든데 조합장의 역할과 임무까지 교육해야 할 판”이라면서 “이번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2010년에도 답이 없다”며 비장한 각오를 보였다. 그는 농협장들의 행태와 관련 “농민이 죽어야 농협이 유지된다”며 한탄했다. 〈김규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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