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정신문 한승호 기자]
‘극한 호우’에 의한 제방 붕괴로 시설하우스 수십 동이 침수되는 피해를 입은 지 꼬박 열흘이 지났다. 침수 피해는 물이 다 빠지고 나서야 선명하게 드러났다. 당시 물에 완전히 잠겼던 멜론은 하우스와 하우스 사이 농로에서 썩어가고 있었고 폭염에 바싹 말라버린 멜론 줄기와 줄기를 잡아주던 끈, 두 번 다시 못쓰게 된 비닐 등은 하우스 내에 방치된 채 그대로였다. 급작스러운 수해의 아픔을 딛고 새로 농사를 시작하기 위해선 무엇보다 침수됐던 농자재 및 농작물의 철거가 시급했다. 피해가 워낙 크다 보니 시설 철거를 위해 따로 비용을 들여 인력을 쓰기에도 녹록지 않은 상황이었다.
이에 수해 농가의 아픔에 공감하고 이들의 일손을 돕기 위해 시민들이 두 팔을 걷고 나섰다. 전국민중행동과 충남자주통일평화연대, 진보당 충남도당 회원 100여명이 지난달 27일 충남 예산군 신암면 조곡리에 모여 수해 복구 농활을 펼친 것이다. 이 자리엔 전국농민회총연맹과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회원들도 힘을 보탰다.
농활은 삽교천 인근 시설하우스 약 20개 동에서 순차적으로 이뤄졌다. 6~7명씩 팀을 이룬 시민들은 하우스에 매달려 있던 줄을 일일이 풀고, 흙탕물에 범벅이 된 채 그대로 말라버린 멜론 줄기를 한곳으로 모았다. 밭 두둑을 덮고 있던 비닐은 제거해 하우스 밖으로 빼내 돌돌 말았다. 며칠째 전국을 들끓게 한 40도에 육박하는 폭염의 열기에 얼굴엔 땀이 줄줄 흘렀고 상의는 이내 젖어 물결무늬가 생길 정도였다.
하우스 한 동의 철거 작업이 마무리되면 자연스레 그다음 하우스에서 같은 작업이 반복적으로 이뤄졌다. 오전 내내 구슬땀을 흘리며 복구 활동에 매진하자 침수된 이후 방치됐던 하우스는 금세 제모습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트랙터로 로터리를 치고 나면 다시 씨앗을 뿌리거나 모종을 심을 수 있을 정도로 하우스 내 농작물 및 농자재가 말끔히 치워졌다.
지난달 17일 수해로 수확을 보름여 앞둔 멜론 하우스 14동을 포함, 총 32동 하우스에서 침수 피해를 입은 장동진씨는 “제가 여기서 32년간 농사지었는데 수해는 처음입니다. 제방이 터져 들판이 다 잠기는 바람에 올해 멜론은 쫄딱 망했습니다. 그래도 여러분이 와주셔서 힘이 납니다. 정말 고맙습니다”라며 시민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
밭이 다 마르는 대로 다른 작물을 심어 올해 농사를 다시 시작하겠다는 장씨의 말에 시민들은 고된 노동에 연신 땀을 흘리면서도 활짝 웃었다. 대지를 달군 폭염의 열기보다 더 뜨겁고 강렬했던 시민들의 연대에 수해로 망연자실했던 한 농민이 재기를 꿈꾸기 시작했다. 농활의 힘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