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정신문 한승호 기자]
단풍이 곱게 물든 백운산 자락 해발 500미터에 자리 잡은 한 농막에 두 농민이 앉아 있다. 이들 앞엔 이날 아침 수확한 떫은감이 20kg 컨테이너 상자와 원형 바구니에 수북이 담겨 곳곳에 놓여 있다. 한 농민이 떫은감 하나를 꺼내 꼭지 부분을 다듬기 시작한다. 감을 빙글빙글 돌려가며 껍질을 깎아내는 손길이 거침이 없다. 이들 모습 뒤론 전날 밤 작업을 마친 감타래가 고운 빛깔을 드러내며 농막 처마에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보통 감 깎는 기계를 사용해 곶감을 만드는데 우린 전부 손으로 해. 감 깎는 것까지 모두. 완전 수동이지(웃음).” 조선 시대 고종이 즐겨 찾았다 해 ‘고종시’로 유명한 경남 함양의 곶감, 그 타래 만들기에 나선 산골마을 농민들의 손길이 바지런하다. 이들이 하루 평균 깎아내는 감이 어림잡아 1000여개, 오롯이 그들만의 노동력으로 만들어내는 곶감이다.
“아직 밭엔 따지 못한 감이 많은데 날이 갑자기 추워진다고 하니까 마음이 더 바빠. 나무에서 감이 얼어버리면 곶감 만들기가 쉽지 않거든. 점심 먹고 나면 또 감 따러 가야 해.”
이달 중순은 넘어야 감 깎는 일이 마무리될 것 같다고 밝힌 이상윤(78, 백전면 백운리)씨가 주변에 수북이 쌓여 있는 떫은감을 보며 말한다. 이씨의 손길을 돕는 권호남(77)씨 또한 “곶감일을 한번 시작하면 한 달 가까이는 꼬박 농막에만 붙어살아. 정말 감 따고 감을 깎다 보면 하루가 눈 깜짝할 새여”라고 추임새를 넣는다.
백운산을 오르내리는 2차선 지방도로 바로 옆에 터를 잡은 탓에 곶감 작업 시기엔 이곳을 지나는 많은 이들이 오가다가 잠시 들려 말을 붙이기도 한다는 농막에 지난 4일 기자 또한 우연히 지나다가 머물게 됐다. 차창 밖으로 가을 햇살에 유난히 도드라진 감의 주황빛과 농막 처마에 줄줄이 매단 감타래가 시선을 붙잡았기 때문이다.
그 연유를 이미 알고 있다는 듯 이씨는 “빠르면 올해 연말, 내년 초엔 쫀득쫀득하게 잘 마른 고종시를 맛볼 수 있을 것”이라며 “기회가 되면 그때에도 다시 한번 들려달라”고 당부했다. 더불어 감나무에서 잘 익은 홍시 한 알을 먹어보라며 건네주는데 그 맛이 가히 일품이다. 그러니 올겨울에 함양에 안 가고 배길 일인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