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정신문 한승호 기자]
일정 간격으로 논둑에 세운 한반도 단일기가 바람에 펄럭인다. 북녘의 산하에서 흘러 내려온 물을 받아놓은 남녘의 논엔 철원평야의 하늘이 선명하게 투영돼 보인다. 누가 먼저라 할 새 없이 바지춤을 걷고 논으로 스며든 농민들과 인천도시농업네트워크 회원 수십여 명이 한 손에 모를 들고 선다. 아이와 어른 할 것 없이 못줄잡이의 신호에 허리를 숙였다 펴기를 여러 번, 대여섯 포기의 모가 일렬로 가지런히 논에 심기고 풍물패의 농악소리가 모내기에 나선 이들의 신명을 돋운다. 어떠한 경계도 없이 사방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땀을 식히기에 모자람이 없다.
탈북자단체의 대북전단 살포에 대한 맞대응으로 북한의 오물풍선 살포가 이어지며 남북관계가 악화일로에 있는 가운데 지난 1일 강원 철원군 철원읍 민간인통제구역 내에 마련된 철원군농민회 통일쌀경작지에서 통일쌀 모내기가 열렸다.
남북의 대결과 반목, 전쟁위기보다 한반도의 평화와 화해, 통일을 바라는 간절한 염원들이 모인 자리에서 위재호 철원군농민회장은 “통일쌀 모내기를 시작한 지가 어느덧 10여년이 지났지만 남북관계는 그때나 지금이나 별로 달라진 게 없다. 특히 윤석열정부 하에서는 통일의 ‘통’자도 꺼내기 어려운 현실”이라면서도 “오늘 여기 남녘의 땅과 북녘의 물이 만난 곳에서 우리부터 통일의 마음을 키워나가야 할 것 같다. 시국이 어렵지만 농민이 씨앗을 뿌리고 키워 수확하듯 우리 스스로 통일의 씨앗을 뿌리고 키워 수확하자”며 통일쌀 모내기의 의미를 전하는 한편 참석한 이들을 독려했다.
김충기 인천도시농업네트워크 대표도 “도시에서 일상을 살다 보면 농업·농촌의 현실 그리고 통일에 대해 이야기할 기회조차 갖기 어렵다”며 “오늘 하루만이라도 통일의 의미와 농업·농촌의 의미를 함께 되새기는 날이 됐으면 좋겠다”는 말로 화답했다.
한반도 평화에 대한 간절한 바람 때문일까. 통일쌀 경작지 400여평 손모내기는 2시간 만에 끝났다. 농민들은 기꺼이 모내기에 함께 해준 시민들에게 감사의 말을 전했고 시민들은 올가을 통일쌀 추수에도 함께할 것을 다짐했다.
한편, 철원군농민회는 남북 간 교류가 사실상 불가한 상황에 따라 작년에 이어 올해도 통일쌀 경작지 수익금을 일본 내 우리 후손들에게 우리 말과 글을 가르치고 있는 일본 조선학교에 후원할 예정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