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정신문 한승호 기자]
아직 여려 살랑이는 바람에도 갈피를 못 잡고 흔들리는 고추 모종을 밭두둑에 심고 흙을 북주는 한 여성농민의 손이 진흙 범벅이다. 손 마디마디마다 엉겨 붙고 허옇게 말라버린 진흙에 일평생 농사로 일궈온 삶을 방증하듯 주름이 갈래갈래 도드라져 선명하다. 그 부르트고 주름진 두 손으로 고추 모종을 세우는 손길이 유난히 조심스럽다. 하여, 검은 비닐로 덮은 두둑과 물기를 머금은 진갈색 흙 사이로 올곧게 서 있는 고추 모종의 연둣빛은 더욱 선연할 따름이다.
지난달 29일 충북 제천시 덕산면 신현리 들녘, 논을 메워 조성한 밭에서 김해수(73)·장선자(67)씨 부부가 두세 달 가까이 정성껏 육묘한 고추 모종을 옮겨 심고 있다. 물이 덜 빠진 밭이라 장화에도 진흙이 덕지덕지 붙어 힘이 배로 들 법도 한데 멀칭 비닐에 일정 간격으로 구멍을 뚫고 물을 흠뻑 주면서 고추 모종을 심는 부부의 손길이 척척 들어맞는다. 반가운 봄비 소식에 서둘러 나선 자리, 행여 모종이 쓰러질까 흙을 북주는 작업까지 살뜰히 챙기니 오전 한나절이 금방이다.
켜켜이 주름진 두 손의 주인공, 촌에서 나고 자라 남편과 결혼을 하고 자식을 건사하며 이때껏 농사일로 평생이라는 장씨가 밭고랑 사이에 쪼그려 앉아 흙을 북주며 넋두리처럼 했던 말을 조금이나마 지면에 옮긴다. 노동의 풍경은 숭고한데 그 풍경에 깃든 함의는 계속 곱씹을 수밖에 없는 현실이기에….
“씨앗값 비싸지. 비룟값 비싸지. (재배 과정에) 일주일에 한 번씩 탄저(병)약을 치는데 혹 보름 만에 쳤다? 그럼 바로 탄저(병)가 오니 약값도 많이 들지. 들어가는 게 많으니 잘 팔아야 하는데 팔 때만 되면 싸게 팔리니 적자유. 그래서 속이 썩어유. 안 할 수도 없고 논(농사)으로 값이 안 되니까 밭으로 바꿔 채소(농사)를 해도 그래. 타산이 안 맞아. 내 땅이니까 어떻게든 하지만 남의 땅에 농사짓고 들어가는 거 다 빼고 나면 정말 없어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