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농민으로 산다는 건] 남해축협사태 해결, 농협중앙회가 나서야

  • 입력 2024.03.24 18:00
  • 수정 2024.03.24 20:48
  • 기자명 구점숙(경남 남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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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점숙(경남 남해)
구점숙(경남 남해)

세상이 많이 달라졌다고는 해도 농촌 지역의 성 불평등 문제는 아직도 여간 심각한 것이 아닙니다. 성차별 문화가 일상생활 곳곳에 너무도 깊숙하게 자리 잡고 있어서 무엇이 성평등에 가까운 것인지 가늠하기가 어려울 때가 많습니다. 그런 일상 속에서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사태가 발생하였으니, 바로 우리 지역 축협조합장이 여직원들에게 지속해서 성적 괴롭힘을 일삼아 온 일입니다. 이미 언론을 통해 세상에 알려져서 곧장 해결될 것 같았는데, 의외로 사태가 지속되고 있습니다.

직급이 조금이라도 높은 사람에게 함부로 대응하기가 어려운 것이 직장 내 문화인데, 직선 조합장 앞에서는 말할 것도 없지요. 그러니 우리지역 뿐만 아니라 전국의 여러 협동조합에서 이와 비슷한 일들이 간간이 터져 나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렇게 힘센 우리지역 3선 축협 조합장이 여직원들을 향해 성적 수치심을 유발하는 발언을 일삼고, 조합장실이나 승용차 안에서 신체 부위를 접촉하는 일을 지속해서 이어 온 것입니다. 참다 참다 더는 못 참겠다고 직원들이 대책위원회를 구성하여 활동을 개시하면서부터 지역사회에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그 과정까지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사실 성적 피해자 낙인이 두려워 나서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마음먹고 나서면 상황은 달라지게 되어있습니다. 한 달 보름 전쯤에 축협 조합장도 사임서와 취하서를 교환하기로 했는데, 갑자기 돌변하여 사퇴는커녕 증거를 대라며 변호사까지 선임해서 적반하장으로 나서는 것입니다.

사태가 이 정도면 지역 내에서 여론이 들끓어야 하는데, 의외로 조용합니다. 한 다리만 건너면 서로 아는 좁은 사회이다 보니, 뒤에서는 말해도 앞에서 말하기를 꺼리는 까닭이겠지요. 그래서 여성농민회가 나서기로 했습니다. 여성농민회야 처음부터 농촌 성평등을 일관되게 주장하며 실천해왔고, 그런 까닭에 여러 정책적인 변화가 있었습니다. 뒤늦게 성명서도 내고 현수막도 붙이고, 온라인 서명파일을 퍼 나르며 사태 해결에 힘을 보태게 된 것입니다.

그 와중에 또 좀 당황스러운 일은, 조합장이 마을 사람을 통하기도 하고 남편에게 직접 연락을 취하기도 하며 움직이지 말라는 뜻의 힘을 행사하는 것입니다. 그 부분에서는 더 화가 치밉니다. 여성농민단체에서 주동적으로 움직이는 것을 알게 되어서 할 말이 있으면 직접 연락을 취할 일이지, 남편에게 연락하는 것은 무슨 태도랍니까? 여성을 얼마나 대상화시키고 있는지, 그것이 얼마나 문제인지 정말 모르는 것 같습니다. 여성을 대상화한다는 것은, 여성이 고유의 경험과 인지, 감정을 지닌 주체적 존재라는 생각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것은 더 나아가 ‘성적 대상화’와 연결되기도 합니다. 자신의 성적인 행동이나 말로 인해 상대가 수치심을 느끼게 되거나 불쾌감을 느끼게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거나 못하는 것이지요. 이런 의식이 바탕이 되면 성범죄를 일으키고도 죄의식을 느끼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본인이 죄의식을 느끼든 말든 이미 성범죄로 분류되어 있습니다. 지난달 경남지역에서 여성 동기를 성적 대상화한 예비 소방관 9명이 자격을 상실하기도 했으니까요. 힘없고 어린 남성에게는 엄격하고, 힘센 남성에게는 관대한 것이 성범죄이던가요?

`미투' 바람이 불고 또 불어도 체면, 관습, 남의 이목 때문에 제대로 저항하지 않고 연대하지 않는 농촌의 성평등 지수는 여전히 낮기만 합니다. 좁은 지역사회의 여론으로 정화되기 어려운 상황이라면, 농협중앙회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합니다. 아니, 이런 사태가 발생하지 않도록 성평등 교육을 일상적으로 진행해야 하고, 사태를 인지한 순간부터는 신속하게 감사권을 발동해 해결해야 합니다. 앞선 사례서 소방당국이 능동적으로 대처함으로써 얻게 된 것은 정당성이지요. 적어도 성평등에서는 말입니다. 농협중앙회도 더는 미적거리지 말고 신속하게 대처해서 행정과 더불어 농촌 성평등을 실현하는 최고 단위가 되어주기를 희망합니다. 그래야 농촌이 살만해지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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