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정부, WTO 규정만큼 농업정책 펼치기나 했나

이준원 전 농식품부 차관 농민신문 칼럼에 대한 반론

  • 입력 2024.03.17 18:00
  • 수정 2024.03.17 18:50
  • 기자명 이무진 해남군농민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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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무진 해남군농민회 회장
이무진 해남군농민회 회장

지난달 27일 농민신문 이준원 전 차관 칼럼에서 야당 단독으로 통과된 ‘양곡관리법’과 ‘농수산물 유통 및 가격안정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주제네바 대한민국 대표부에서 세계무역기구(WTO) 농산물 협상과 협정 이행을 담당했던 이로써 비판하며 가격지지정책이 국제무역 규범인 WTO 규정상 문제가 없는지 면밀한 검토가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국제사회 흐름에 역행하기보다 공익직불금을 내실화해 농가소득 보장을 강화하자고 했다.

이준원 전 차관의 주장은 맞는 말일까? 해남 땅끝에서 농사짓는 내가 보기엔 20년 전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한 과거 속 주장으로 보인다. 반론으로 할 말은 많지만 우선 이런 주제로 이준원 전 차관쪽이나 농민신문에서 토론회 등 다양한 방식의 공개 논의를 진행하고자 제안하면 언제든지 참여하겠다는 말을 먼저 전한다.

WTO 규정상 국내 농업보조금은 무역왜곡효과가 있어 감축의무가 존재하는 `무역왜곡보조'와 무역왜곡효과가 없는 `허용보조'로 나뉜다. 감축대상보조(AMS), 최소허용보조(DM), 블루박스(BB)는 무역왜곡보조에 해당하고, 그린박스(GB)는 허용보조에 해당한다. 이준원 전 차관도 언급하고 있듯이 미국과 유럽은 국제적 비난에도 불구하고 2010년 이후 무역왜곡보조(AMS, 블루박스, DM)를 늘려왔으며 이를 농업이 지역사회를 유지하는 방안으로 활용하고 있다.

윤미향 국회의원이 지난해 농식품부로부터 제출받은 ‘연도별 WTO 농업보조금 현황(2009~2018)’에 따르면, WTO 협정상 농업보조금 지급허용액은 AMS 14조9000억원과 DM 67조7388억원을 합해 10년간 82조6388억원에 해당하지만 WTO에 농업보조금을 신고한 가장 최근인 2018년까지 10년간 국내 농업보조금 지급액은 지급허용액의 13.51%인 11조1686억원에 불과했다고 밝히고 있다. 특히 고추, 마늘 등 특정 품목에 지원되는 품목특정DM 지급 허용액은 총 2조8495억원이지만 그중 5.6%인 1598억원 지급에 그쳤다고 정부 스스로 밝히고 있다.

세계는 기후위기와 전쟁 등으로 자국의 식량생산의 지속성을 높여내기 위한 특단의 조치들을 준비하거나 시행하고 있다. 하지만 현재 한국의 상황은 어떤가? 말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최악의 상황이다. 기후위기와 경제위기로 인한 물가상승에 대응하기 위해 농업은 내팽개치고 오로지 농산물 수입에 급급하고 있다. 그러는 사이 한국의 농업기반은 무너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럼 과연 수입농산물은 계속 쌀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을까? 수입쌀 장립종 평균공매가가 2021년 1kg당 1338원에서 지난해 11월 2274원까지 폭등하고 있다. 현재 국내산 저가미 쌀값은 1kg당 2210원이다.

WTO가 붕괴되고 있으니 그 규정을 거부하라는 말은 하지 않겠다. 하지만 현재 WTO 상소기구가 마비상태이고 대안임시 기구로 다자간임시상소중재약정(MPIA)을 일부회원국들이 운영하고 있는 처지이다. 그리고 각국의 식량에 대한 수출금지 조치 등 WTO에서 금기시하는 행위들을 각국은 아무런 제재없이 시행하고 있다. 상황이 이런데도 우리는 WTO 규정을 바짓가랑이 잡듯 붙들고 있어야만 하는지. 이제껏 WTO가 지급 허용을 동의한 AMS와 DM 예산마저 다 사용하지 않으면서 식량위기의 시대 농업의 생산지속을 포기할 작정인가? 미국 등 주요국이 도리어 식량안보를 지키기 위해 무역왜곡보조를 늘리고 있듯 허용보조 비율이 높은 우리나라 농업보조금도 농산물 가격지지를 위한 품목별 보조금 규모 확대 등 무역왜곡보조의 적극적인 활용을 검토해야 할 것이다. 현재 국내에서 수급불안 품목인 마늘, 양파 등의 가격지지를 위한 정부 정책을 수립하는 것이 이준원 전 차관이 주장하듯 국제사회 흐름에 역행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도 WTO의 품목특정DM 지급 허용액으로도 충분히 가능하다는 사실을 숨기지 말았으면 한다. 그리고 프랑스 정부가 `농산물 최저가격제도' 도입을 공식적으로 논의하겠다는 입장을 견지하는 등 세계가 변화하고 있는 농업환경에 적극 대응하는 것을 직시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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