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북녘은] 심장에 남는 사람

  • 입력 2024.03.10 18:00
  • 수정 2024.03.10 18:29
  • 기자명 염규현 통일디자인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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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규현 전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부국장
염규현 전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부국장

 

북한의 ‘통일 지우기’, ‘한반도 지우기’가 사회 전 분야로 확대되는 모습이다. 국가(國歌) 가사에서 기존 ‘삼천리 아름다운 내 조국’을 ‘이 세상 아름다운 내 조국’으로 바꿨고, 북한의 공식 무역·투자 전용 사이트 ‘조선의 무역’ 누리집의 한반도 이미지도 사라졌다. 외국문 출판사 ‘조선의 출판물’ 사이트의 한반도 이미지도 보이지 않는다. 이제 조선중앙TV는 한반도 전체가 표시돼 있던 기존 날씨 프로그램 그래픽의 배경 이미지 대신 북한 지역만 확대한 이미지를 사용 중이다. 일본 언론 보도에 따르면 평양 지하철 노선도의 ‘통일역’이 단순 ‘역’으로만 표시됐다고 한다. 북한 조선우표사가 운영하는 누리집에서도 남북정상회담 기념우표는 물론 한반도·통일 등 한국과 연관된 주제로 제작된 우표를 찾아볼 수 없다. 대신 ‘괴뢰한국’, ‘괴뢰대한민국’이란 적대적 단어들이 확산되는 모습이다.

이렇게 통일을 배제한 북한에 대응해 우리 정부는 역으로 자유민주주의 통일을 강조하는 새로운 통일관을 준비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8·15광복절 축사를 통해 이를 발표할 예정이다.

그 끝을 알 수 없을 정도로 멀어지고 있는 남북의 오늘을 보면, 불과 20여년 전 남북 간 교류협력이 활발했던 시기가 마치 꿈처럼 느껴진다. 비교적 자유롭게 북한을 오가며 농업을 비롯해 다양한 분야에서 협력 사업을 진행했던 시간들이 아득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이렇게 오랫동안 남과 북의 마음은 얼어붙어 있지만, 당연하게도 자연의 시간은 무심히 흘러간다. 봄은 성큼 다가오고, 농부들의 마음이 분주해지는 시간도 다가오고 있다. 지난달 26일 북 매체는 “각지 농업 근로자들이 봄밀, 보리 씨 뿌리기에 들어갔다”고 보도했다. “농업위원회와 각급 농업지도기관들에서 밀, 보리 재배면적을 늘리는 것과 함께 지력을 높이고 선진적인 종자 처리 방법을 받아들이면서 씨 뿌리기 준비를 갖추기 위한 작전과 지휘를 하고 있다”고도 소개했다. 북한의 곡창지대인 황해도를 비롯해 평안남도와 평양·개성·남포 등 대도시의 농촌 지역에서도 씨 뿌리기를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대내외적으로 식량자립이 여전히 쉽지 않은 북한이기에, 매년 농사에 사활을 걸고 주민들을 독려할 수밖에 없다. 여전히 북한은 ‘자력갱생’ 중이다. 지난해 북한의 식량작물 생산량은 전년 대비 31만톤 증가한 482만톤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유엔식량농업기구(FAO)가 추정한 연간 필요량 576만톤에는 여전히 못 미치는 수준이다. 올해 북중수교 75주년을 맞아 양국 간 대대적인 협력과 지원이 있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러시아와의 협력관계가 올해도 지속될 것으로 예상되지만 아직은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처럼 남북이 점점 더 서로에게 멀어져가는 상황에서, 여전히 통일과 평화의 꿈을 간직한 채 20여년 동안 희망을 싹틔우고 있는 이들이 있다는 것은 어쩌면 작은 기적일지 모른다.

경남통일협력회(경통)도 이러한 작은 기적 중 하나다. 2005년 창립한 경통은 ‘통일딸기’로 잘 알려져 있다. 통일딸기는 ‘봄에 경남에서 키운 어미 모종을 평양으로 보내 여름 내내 튼튼하고 병에 강한 아기 모종을 증식시켜 가을이 시작될 무렵 다시 경남으로 들여와 재배한 딸기’를 말한다. 2006년부터 매년 남북을 오가던 통일딸기는 2014년 이후 그 길이 막혔지만, 여전히 경통은 매년 봄이면 통일딸기 모종 생산사업을 위해 모주와 생산자재를 준비하고 있다. ‘통일’을 전 사회에서 지우려는 북한이 소중한 통일딸기마저 지우려 할까 걱정되는 지금, 여전히 통일딸기 체험 행사를 치르며 평화의 끈을 이어가려는 경통의 일꾼들을 볼 때마다 감사한 마음을 가질 수밖에 없다. 남과 북에 이들처럼 ‘심장에 남는 사람’들이 남아있는 한, 지금의 단절도 끝내 허물어질 것이라 믿는다. 그 누가 아무리 지우고 덮으려 해도 희망을 지워버릴 수는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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