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생명농업’ 실천하는 가농소 사육농가들

고된 사육환경 속에서도 ‘순환고리’ 위한 고민
“가농소 20주년 맞아 사육방식·규정 재정립”

  • 입력 2024.03.03 18:00
  • 수정 2024.03.04 15:08
  • 기자명 한우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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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한우준 기자, 사진 한승호 기자]

지난달 28일 경북 안동시 도산면 온혜리 금동중씨 축사에서 사육 중인 가농소. 소의 이력을 알리는 귀표와 더불어 가톨릭농민회가 지원한 소임을 알리는 귀표가 하나 더 붙어있다.
지난달 28일 경북 안동시 도산면 온혜리 금동중씨 축사에서 사육 중인 가농소. 소의 이력을 알리는 귀표와 더불어 가톨릭농민회가 지원한 소임을 알리는 귀표가 하나 더 붙어있다.

 

가톨릭농민회가 약 30년전 처음 ‘생명농업’을 실천하기로 결정한 이래, 가톨릭에 몸담은 농민들은 자연의 순환과 생명가치의 존중이라는 원칙 아래 영농하려 노력하고 있다. 가톨릭농민회의 생명농업은 국가에서도 인정하는 무농약농업이나 유기농업과 일부 공통점이 있지만 그것과 완벽하게 일맥상통하는 것은 아니다.

생명농업에서 가장 중요시하는 건 ‘순환’의 완성으로, 인증의 획득이나 시장에서의 결과를 넘어 실질적으로 자연의 순환을 가능케 할 ‘순환농업’의 실현에 가장 무게를 둔다. 예컨대 경종농사는 무농약을 기본으로 하고 상당수 품목은 아예 유기재배만을 인정하는데, 화학비료의 사용을 금하고 유기농자재를 사용하게 하는 점 등의 기본원칙은 같지만 여기에 지력을 보존하기 위한 윤작·간작·혼작, 경축순환을 위한 자가퇴비 사용이 추가로 권장된다.

자가퇴비는 오직 가축을 통해 생산할 수 있는 만큼, 목표 달성에 있어 축산업은 필수요소다. 이 생명농업 운동에서 경축순환의 한축으로서 온전히 서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들이 바로 전국 약 400여두 ‘가농소’의 사육농가들이다. 가농소는 철저하게 ‘순환고리’로서의 역할을 위해 사육된다. 따라서 배합사료를 먹지 않는다. 수입산 원재료를 기반으로 대량 생산되는 배합사료를 소비하는 건 순환과 탄소중립 측면에서 어떤 기여도 하지 못한다는 인식 때문이다.

가축을 식량과 퇴비로 ‘환원한다’는 측면에서, 가농소들은 우리 전통농업에서 그랬던 것처럼 농사부산물을 위주로 먹으며 자라야만 한다. 이 때문에 사육 실패의 위험이 매우 크고 관행사육에선 요구되지 않는 성격의 강도 높은 노동이 뒤따른다.

농가들의 신념과 함께 고된 가농소 사육을 함께 지탱해 온 건 그 가치를 존중한 소비자들이었다. 생명농업의 지향점 중 하나가 ‘공동체’의 형성이다. 이 공동체는 생산자들뿐만 아니라 이를 구매하는 소비자들까지 포함된 형태를 말한다. 현재 생명농업의 가치에 동의하는 도시 소비자들은 건강한 먹거리를 얻는 대가, 즉 농축산물 구매가격을 생산비에 기반해 정하고 있다.

이 공동체가 바로 한국 천주교의 각 지역교구 우리농생활공동체(우리농)로, 가농소의 경우 지난해까진 지육 1kg당 2만3,000원의 가격에 구매가 이뤄졌으며 올해부터는 2만7,000원으로 인상됐다. 시장의 가격은 물론이고 소의 등급 판정 역시 가격 결정에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점에서 생명농업 속 가농소의 성격을 쉽게 엿볼 수 있다.

 

 

지난달 28일 가톨릭농민회 생명농업실천위원회 주최로 가농소 1차 실태조사가 진행된 가운데 경북 안동시 도산면 온혜리 소재 이태식씨의 가농소 축사를 가농 활동가들과 농민들이 둘러보고 있다.
지난달 28일 가톨릭농민회 생명농업실천위원회 주최로 가농소 1차 실태조사가 진행된 가운데 경북 안동시 도산면 온혜리 소재 이태식씨의 가농소 축사를 가농 활동가들과 농민들이 둘러보고 있다.

 

 

가농소의 오늘

그러나 이렇게 철저한 생산비 보장체계에도 불구하고 가농소의 사육규모는 점점 줄고 있다. 우리 농축산업이 규모화·산업화에 치중하면서 발생한 여러 가지 환경 변화로 인해 당초의 사육취지와 소비가치를 만족하는 고기를 생산하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예로, 일반적인 한우 사육농가들과 달리 가농소 사육농가들은 도축장에서의 ‘원쁠’, ‘투쁠’ 판정이 반갑지 않다. 반갑지 않은 정도를 넘어 ‘좋지 않은 반응’이 이어질까 우려한다. 문제는 가농소에서 이런 고등급의 판정을 받는 소가 늘어나고 있단 점이다.

이게 대체 무슨 걱정일까? 가농소를 찾는 소비자들은 순환고리 속에서 자란 소가 내어주는 ‘기름기 적고 담백한 고기’에 상품성이 있다고 여기며 이런 관점은 구이용에서조차 같다. 즉 근내지방도 위주의 현 한우 등급 판정체계 기준 1+등급 이상의 등심이 그대로 납품될 경우, “왜 이렇게 지방이 많느냐”는 항의가 나올 수밖에 없다. 이들은 일반적인 소비자들과 달리 등급에 맞춰 가격을 지불한 소비자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도축과정에서 기름을 인위적으로 걷어내려는 시도도 하지만 작업의 효율성이 떨어지고, 무엇보다도 육량과 상품성이 모두 하락하는 문제가 생긴다. 김중일 가농 안동교구연합회 차장은 “기존엔 보통 2·3등급, 정말 잘 나와야 1+등급이었는데 지금은 3등급은 거의 없고 평균이 1등급이다. 일부러 걷어내려 해도 그럴 수 없는 기름들(등심의 마블링 등)이 있는데 ‘이런 건 어떻게 제거를 할 방법이 없습니다’라고 설명해도 도시 쪽에서는 아무래도 저항이 있을 수밖에 없다”라며 생산자의 고충을 이야기했다.

특히 육량 하락의 문제는 결국 고기를 소비자에게 전달하는 우리농 측의 손실로 이어지고, 이는 가농소 사육의 지속가능성을 저해할 수밖에 없는 만큼 농민들도 이 문제를 더 두고 볼 수 없는 처지다. 일단 사육농민들은 이 같은 현상의 원인으로 한우산업의 성장에 따라 농가들의 전체적 사양관리 수준이 높아진 점, 그리고 무엇보다도 근내지방도 향상을 중점에 두고 오랜 기간 국가적으로 추진된 한우의 개량사업을 꼽고 있다. 딱히 소를 과도하게 먹이려 노력하는 것이 아닌데도 1등급 이상의 판정이 잦아질 정도로 소가 살찌는 건 결국 소의 종자가 변한 것이 원인이라는 추정이다.

나날이 공고해지는 주류 생산체계에 의한 영향에 대응하고, 이를 최소화하기 위해선 기존의 사육방법을 가다듬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백승진 가농 전국축산위원장은 “소가 출하되기까지의 기간이 긴 만큼 성과를 내는데도 분명 시간이 오래 걸리겠지만, 가농소 생산자들끼리 새로운 사육방식과 사양관리에 대해 연구하고 노력해야 할 것 같다”라며 “원주교구(평창)에서는 농후사료를 줄이고 조사료를 더 늘릴 수 있는 사육형태에 대해 막 논의를 시작한 상태”라고 말했다.

 

 

지난달 28일 경북 봉화군 소천면 두음리 이상식(오른쪽)씨 축사에서 가톨릭농민회 생명농업실천위원회 활동가들이 가농소 1차 실태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지난달 28일 경북 봉화군 소천면 두음리 이상식(오른쪽)씨 축사에서 가톨릭농민회 생명농업실천위원회 활동가들이 가농소 1차 실태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생명농업”

그밖에도 숱한 고민이 산적해있다. 가농소 역시 일반 한우와 마찬가지로 불고기·국거리·뼈 등 비선호부위의 소비가 더딘 점이 소비에서 큰 문제로 작용하고 있다. 본래 도축된 가농소는 소비지에서 한 마리 그대로 ‘책임소비’를 하는 것이 원칙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여러 예외가 생겨나고 있으며 이 같은 문제의 핵심엔 결국 비선호부위의 재고 적체가 크게 자리하고 있다. 이 같은 문제들이 어우러져 유기축산에 준하는 환경에서 자랐다는 가치에도 불구하고 명절 등 특별한 시기가 아니면 대부분 냉동으로 공급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생산측면에서는 유기순환·지역순환 달성이라는 목표를 대개 지켜내고 있다. 다만 이 취지의 완벽한 달성을 막는 조사료의 수급 불안은 항상 고민거리다. 농후사료의 경우 농가마다 끈질긴 노력을 쏟으며 어떻게든 공급선을 확보하고 있으며, 퇴비 역시 가톨릭농민회 내부 자기소비에 활용하는 것은 물론이고 고급 퇴비를 찾는 주변 농가들에게 판매가 가능한 수준의 물건을 만들어내고 있다. 그러나 조사료의 경우 현실적으로 유기농 볏짚 부산물을 1년 내내 먹일 수 있는 양을 확보할 방법이 없어 최초의 목표를 완벽하게 지켜내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또 최초 가농소의 사육규정을 정할 때 생명농업 실천 취지에 맞춰 거세우 사육을 금지해 현재 가농소로 자라는 소들은 전부 암소다. 때문에 수송아지가 나오면 우시장에 내보내는데, 영농지속의 측면을 고려해 생축가격을 최대한 확보할 수밖에 없고 이로 인해 소규모 사육농가라 할지라도 관행적 사육방식을 병행해야 하는 문제가 있다.

하나같이 어려운 과제들에도 불구하고 남은 사육농민들의 의지는 굳건하다. 경북 봉화군에서 매년 20여두의 가농소를 출하하는 이상식 가톨릭농민회 안동교구 한우분과장은 “우리의 목표는 경제적 이익이 아니라, 전 지구적 기후 문제·생태적 문제까지 다 바라봤을 때 가장 합리적인 방식의 사육을 하는 것”이라며 “앞으로는 우리의 방식이 실제로 어떠한 효과를 내는지도 이제 한번 세상에 드러내 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를 위한 사육방식의 효과 검증을 위한 연구용역이나 유기축산 인증 등의 추진·기획도 검토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안동교구의 농민사목을 담당하는 안영배 신부는 “물론 우리가 정신과 원칙을 훼손하는 일이 있어선 안 되겠지만, 이제는 문제를 풀어갈 수 있도록 논의하고 또 최선의 방법을 택할 ‘중요한 결정’이 필요한 시기라고 본다”라고 말했다. 안 신부의 말대로, 가농소 20주년을 맞은 올해 가톨릭농민회는 소비자들과 함께 가농소의 지속가능한 사육을 위한 방향성과 다양한 실천방식을 논의하고 규정을 재정립할 계획이다. 그 구상은 한국 천주교가 매년 농촌의 가치를 드높이기 위해 정한 농민주일(7월 셋째주) 즈음 윤곽이 드러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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