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정신문 권순창 기자]
이성희 농협중앙회장이 임기 보름을 앞두고 돌연 사퇴를 선언했다. 후임 회장의 원활한 업무인계를 위한다는 명분이지만, 4.10 총선에 도전하기 위한 행보라는 게 농업계의 보편적인 해석이다. 농업계는 이 회장이 4년 동안 보여온 반농업적 행보를 들춰내며 비판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농협중앙회 정관이 규정하고 있는 이성희 회장의 임기는 오는 3월 21일 농협중앙회 정기총회가 종결될 때까지다. 그런데 이 회장이 지난 27일 이사회에서 중도사퇴 의사를 표하면서 농협 안팎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농협중앙회는 신속하게 3월 6일 회장 퇴임식, 11일 신임 회장 취임식 일정을 잡았다.
이 회장은 임기 내내 자신의 연임을 위한 법 개정에 골몰했을 정도로 직책에 애착이 많았던 인물이다. 비록 보름이지만 자발적으로 직책을 내려놓는 모습에 많은 이들이 의아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물음표는 ‘이성희 회장 총선 도전설’이 등장하면서 사라졌다. 「공직선거법」상 농협중앙회장이 총선 비례대표로 출마하려면 선거일 30일 전까지 회장직을 사퇴해야 한다. 퇴임 날짜인 3월 6일은 선거일 35일 전으로, 법 규정과 정확하게 맞아떨어진다.
더욱이 이 회장이 현 집권여당에 나름의 견고한 인맥을 보유하고 있다는 건 본지를 비롯한 유수의 언론에서 보도한 바 있다. 실제로 ‘이 회장이 국민의미래(국민의힘 비례위성정당)에 비례 공천을 신청했다’는 소문이 활발하게 돌고 있는 상태다. 임기 내내 연임을 꿈꿔온 이 회장의 명예욕에 비춰봐도 총선 도전은 일관성이 있는 시나리오다.
문제는 이 회장이 4년 임기 동안 농산물 개방, 쌀값 폭락, 양곡관리법 개정 무산 등 주요 농정현안에 대해 방관적 혹은 반농업적 입장을 보여온 인물이라는 것이다. 가뜩이나 총선에 농업계 후보 할당 부족이 논란인 터에, 그 한 자리를 이 회장이 차지한다면 농민들의 입장을 국회에 반영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농협중앙회장이라는 직책 자체의 문제도 있다. 농협중앙회가 거대 자본과 조직망으로 정계를 움직인다는 의혹은 지난 4년 농협중앙회장 ‘셀프연임’ 추진 사태로 한층 구체화돼 있다. 퇴임 농협중앙회장이 정계에 진출하는 선례를 만들었다간, 앞으로 농협의 정치유착이 더욱 심해지고 농민을 위한 농협 본연의 역할이 약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
농업계에선 성토가 이어지고 있다. 한국농어민당은 29일 성명을 발표, “농협중앙회장 자리는 정계진출의 발판이 될 수 없다”고 일갈했다. 특히 “다행히 셀프연임은 물 건너갔지만 이 과정에서 보여준 이 회장의 모습은 50년 농협 역사에 또 하나의 흑역사로 기록됐다. 이에 대한 반성과 참회의 시간도 없이 비례후보 등록을 위해 조기퇴임까지 강행하는 이유가 궁금하다”며 “세간의 의혹처럼 셀프연임을 위한 로비 과정에서 발생한 불법행위들의 책임을 모면하기 위한 ‘방탄 비례후보 등록’이 아니길 바란다”고 꼬집었다.
전국농민회총연맹 역시 같은날 성명에서 “한때는 법까지 바꿔가며 연임으로 임기를 늘리려 애쓰더니, 이제는 다음 행보를 위해 주어진 임기조차 마치지 않으려는 변덕이 그저 황당할 따름”이라며 “설령 ‘방탄 비례대표 의혹’이 사실이 아니더라도 자신의 임기조차 내팽개치고 ‘금배지’를 탐내는 모습은 무책임과 노욕의 소치일 뿐이다. 이 회장은 노욕을 접고 마지막 20여 일의 임기라도 농업·농촌·농민을 위해 봉사하며 백의종군하라”고 꾸짖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