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대통령, ‘농산물 최저가격 보장제’ 도입 전격 선언

그간 생산비 보장 외쳐 온 진보 농민진영 손 들어
주요 정부 수반의 ‘사회주의적 제도’ 치부는 여전
"불공정 무역·유통마진 손질 함께 병행해야 의미"

  • 입력 2024.02.27 18:26
  • 수정 2024.03.04 15:03
  • 기자명 한우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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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한우준 기자]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지난 24일 개막한 프랑스 농업박람회 현장에서 농민들에게 둘러싸인 채 자신의 정책 구상을 설명하고 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유튜브 갈무리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지난 24일 개막한 프랑스 농업박람회 현장에서 농민들에게 둘러싸인 채 자신의 정책 구상을 설명하고 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유튜브 갈무리

농업문제 해결이 국가·사회적 과제로 떠오른 프랑스에서 ‘농산물 최저가격 보장제도’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거리에 쏟아진 농민들을 농촌으로 되돌려 보내야만 하는 입장에 처한 프랑스 대통령이 직접 최저가격(prix planchers)을 정책으로 보장하겠다고 발언했는데 이를 두고 각계에서 활발한 토론이 이어지고 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국내 최대규모의 농업행사 프랑스 농업박람회(SIA 2024)를 앞두고 개막 당일 농업계를 초청해 농업문제 해결을 위한 대토론회를 열겠다고 제안했다. 지난 1월 중순 이후 지속된 대표 농민단체들의 전국구급 시위는 SIA 2024를 배경으로 농업에 대한 새 보호조치를 발표하겠다는 마크롱 대통령의 약속 이후 소강상태에 접어든 상황이었고, 이어 마크롱 대통령이 그 형태로 ‘대토론’을 언급한 것이다.

그러나 이 계획은 개막일 직전 ‘없던 일’이 됐다. 농민들이 혼란과 갈등만 가중할 ‘쇼’를 반복하지 말고 당장 실질적 해결방안을 내놓으라며 이를 강하게 거부해서다. 유류세 인상 조치로 인해 촉발된 2018년의 ‘노란조끼 운동’ 사태 당시에도 마크롱 정부가 해결방법으로 대토론을 선택하고 실제 실행했으나 적지 않은 부작용을 낳은 바 있다.

박람회 개막까지 지연되는 혼란 속에 마크롱 대통령은 토론회 대신 농민 대표들과의 비공개 간담회를 어렵사리 진행했고 이 자리에서 몇 가지 조치를 약속했다. 이날 간담회에서 대통령은 긴급자금지원계획을 수립하고, 작은 흠결로 인해 보조사업에서 제외되는 일이 없도록 규제를 단순화하며 농민들의 ‘실수할 권리’를 보장하겠다고 말했다. 농약 규제와 관련해 다른 국가보다 프랑스가 앞서나가지 않기 위해 노력할 것이며 농업과 식량을 국가적 주요 의제로 법에 명시할 거란 언급도 있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가장 주목받은 내용은 농산물가격의 하한선, 즉 ‘최저가격’을 법률의 틀 안에서 설정하겠다고 한 약속이다. 품목별로 설정된 생산비 지표를 따라 하한가를 정한 뒤 제조업체 혹은 유통업체가 그 이하로는 구매할 수 없게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마크롱 대통령은 현재의 유통체계를 두고 ‘우리 농민들과 그 소득의 희생을 부르는 가장 약탈적 관행’이라고 언급하기까지 했다.

대통령의 전격발언에도 불구하고 제도가 실질 도입되기까진 많은 논의와 갈등이 수반될 것으로 보인다. 정부 부처와 농업계 주요세력이 동의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이 내용은 지난 2023년 말 좌파 정당에 의해 입법이 추진되기도 했으나 최종 부결된 바 있기도 하다. 당시 농림부와 재무부 등 주요 부처장관들은 이 제안을 ‘사회주의 정책’으로 규정해 반대했으며 대통령의 제안 이후에도 입장을 바꾸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또 임원진에 농식품 기업인사들이 포함돼 있는 제1노조(FNSEA)의 경우 최저가격이 오히려 농민의 소득을 제한하는 유리천장으로 작용할 수 있고, 지역별 생산비의 격차를 반영할 수 없다며 이에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 ‘이익이 남는 가격’의 보장에 집중해왔던 우파 성향의 제2노조(Coordination Rurale)의 대표자들은 이번 발표에 대해 일단 ‘진전’·‘올바른 방향’이라고 평가하면서도 실질적인 결과물이 등장하기 전까진 행동을 끝내지 않겠다고 밝힌 상황이다.

그간 ‘노동의 대가를 포함한 최저가격의 보장’을 정확하게 짚어 요구의 첫머리로 내세웠던 제3노조(Confédération Paysanne, CP)는 우선 환영의 뜻을 나타냈다. CP는 프랑스정부가 농산물 최저가격의 보장정책을 추진하고 동시에 자유무역협정(FTA) 체제에서 탈피하라고 요구해왔다. 그 압박의 일환으로 CP는 최근 식품유통기업을 대상으로 물리적 행동을 반복해왔으며, 가장 최근에는 지난 21일 소속 농민 200여명이 프랑스의 대표 유업체이자 초대형 다국적 식품기업인 락탈리스(Lactalis)의 본사를 7시간가량 점거하기도 했다. 락탈리스가 강요하는 원유구매가격으로는 낙농가의 소득과 영농지속을 바라기 어렵단 이유에서다. 

CP는 대통령의 발표를 환영하면서도 최저가격 보장제가 불공정 무역으로부터의 보호, 즉 FTA의 중단과 병행해야만 효과를 낼 수 있다고 건의했다. 또 최저가격 보장제가 곧 소비자 구매력 상실을 부를 것이란 우려에 대해서도 유통업계의 마진을 규제하는 것으로 대응이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CP는 “최저가격 보장을 대신할 대안이 없다. 세계화 시장에서 국제 경쟁을 계속하면 농가 소멸을 향해 나아갈 뿐”이라며 “이를 ‘소련스럽다’고 치부하며 반대하는 건 그저 농식품기업의 이익의 보호를 위한 무례한 발언에 불과하다”라고 반발했다. 

각계 요구 사항을 바탕으로 3주 내 논의를 시작하자는 대통령의 제안에 따라, 프랑스 농업계는 곧 이 제도의 구체적 기틀 마련을 위한 의사일정을 시작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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