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불편함

  • 입력 2024.02.11 18:00
  • 수정 2024.02.11 18:45
  • 기자명 장수지 기자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명절을 앞두고 차례상 차림 비용과 농수축산물 물가에 대한 온갖 언론 보도가 쏟아지고 있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등 관계기관 조사 결과를 앞세워 올해 설 명절 차례상 차림 비용이 지난해와 비슷한 수준이라는 보도도 언뜻 눈에 띄지만 값이 오르지 않은 품목이 없다거나 급등한 농산물 가격에 설 물가에 비상이 걸렸다는 자극적인 제목의 보도, 비싼 가격 탓에 차례상을 풍족하게 차릴 수 없어 조상님께 죄송하다는 제목을 단 기사 등이 대부분이다. “설 연휴 물가 안정을 최우선에 두겠다”는 대통령의 발언을 전재한 보도와 더불어 농식품부에서 설 물가 안정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의지를 담아 배포한 보도자료 형식의 기사도 적지 않다. 해당 기사에는 성수품 공급을 유례없는 수준으로 늘리고, 대형마트와 전통시장을 통해 할인지원을 강화하겠다는 농식품부의 ‘노력’이 가득 포함돼 있다.

서울에 거주 중인 1인 가구 소비자기도 하지만 농업전문지 기자로서 농업·농민·농촌 상황을 일반적인 도시 소비자에 비해 다소 잘 안다고 자평하기에 개인적으론 명절 전 산발적으로 뿌려지는, 물가에 치중된 앞선 보도들에 불편함을 느낄 수밖에 없는 것 같다. 본인 역시 한정된 수입으로 생계를 꾸리기에 장바구니 물가에 물론 민감하지만, 설 명절을 앞두고 농산물 가격의 높고 낮음을 감히 따지기엔 지난해 농민들이 겪은 재해의 크기가 워낙 컸기 때문이다. 제대로 수확할 농산물이 없어 가계를 유지하는 건 물론이고 대출 이자를 내기 위해 새로 대출을 받아야 했던 만큼 농민들의 상황은 명절 한철 농산물 가격이 높다는 투정을 하려야 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했다.

게다가 설 명절 차례상에 빠질 수 없는 사과·배 가격이 아무리 높다 한들 재배 농민의 소득엔 도움이 되질 않는 사실 또한 명절 물가를 논할 수 없는 이유 중 하나다. 내다 팔 사과·배가 없기에 비싼 가격으로 거래되는 사과·배 소식은 다른 나라 이야기와 다를 바 없다. 빗발치는 재해에 온갖 ‘운’이 다해 좋은 품질의 사과·배를 일부나마 수확했더라도 설 명절 ‘특수’를 누릴 수도 없다는 얘기. 이미 농산물은 농민 손을 떠난 지 오래여서다. 결과적으로 조상님께 죄송할 정도로 값이 오른 사과·배는 유통업계 배만 불릴 뿐 농민들의 삶에 큰 영향을 끼치지 않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농식품부가 거듭 강조해 마지않는, 물가 안정을 위한 할인지원 혜택 확대 역시 유통업계 손실을 줄여주기 위한 장치일 뿐 농민들을 위한 대책이 아니다. “농업·농촌·농민을 위한 농식품부 예산으로 유통업계 먹여 살린다”는 농민들의 얘기가 헛말이 아닌 이유다.

온 세상이 값비싼 농산물과 소비 물가로 시끄러운 와중에 지난해 대응할 수조차 없는 이상기후와 자연재해로 많은 것을 잃은 농민들은 올해도 묵묵히 농사 준비에 돌입한 상태다. 명절 때마다 물가 이슈로 언론 보도가 되풀이되지 않게, 물가 운운하는 떠들썩한 주류 언론들의 보도에 불편함을 느끼지 않게 올 한해 농민들의 농사에 큰 피해가 없길 감히 바란다.

키워드
#기자수첩
저작권자 © 한국농정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