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월북’이냐 ‘절멸’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 입력 2024.01.28 18:00
  • 수정 2024.01.28 20:17
  • 기자명 강선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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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강선일 기자]

강선일 기자
강선일 기자

한반도 남측의 사과가 ‘월북’ 중이다. 정확히는 재배 가능지역이 ‘북상’ 중이다. 과거 남측의 대표적 사과 주산지였던 대구시는 더는 주산지라 하기 어려울 정도로 재배농가가 줄었다. 기후위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경북 영주 등지로 이미 산지가 북상한 상황이다.

이대로 기후위기가 심화된다면 2050년대에 한반도 남측에선 강원도 일부 지역에서만 사과 재배가 가능하리라는 진단이 제기된다. 2060~70년대엔 아마 남측에선 (통일이 실현되지 않았다고 가정한다면) ‘국산 사과’를 접하기 힘들어질 것이며, 사과 주산지는 휴전선 너머로 ‘월북’할 것이다.

그러나 기후위기 속에서 사과의 ‘월북’을 우려할 것도 없이 사과가, 그리고 사과 재배농가가 ‘절멸’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된다. 유력 보수언론은 농림축산식품부 입장이라며 ‘미국·뉴질랜드산 사과’ 수입 가능성을 시사했다. 정부는 이 보도를 부인하면서도 “사과를 결코 수입하지 않겠다”는 말은 하지 않는다.

적지 않은 언론은 사과 수입을 안 하니까 식탁 물가가 폭등한다느니, 물가안정을 위해 사과 수입을 해야 한다느니 하는 보도를 쏟아내며 정부를 압박한다. 정작 그러면서도 사과가 비싸진 이유가 △생산비 폭등 △기후변화로 인한 생산량 격감 △유통구조의 불합리성 등이라는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

언론의 일방적 기사를 접하는 농민들의 속에는 천불이 난다. 가뜩이나 천불 나는데, 미국산 사과로 가공한 주스가 ‘사과 주산지’의 신년 행사장에 오른 것까지 목도하니 더더욱 천불이 나지 않겠는가?

기후 상황이 안 좋으니 병해충은 병해충대로 창궐한다. 사과농가들은 복숭아순나방·복숭아심식나방·노린재 등 온갖 해충과 탄저병 등의 병해에 내내 시달렸다. 노린재의 경우, 정부가 벼 재배농가들에 벼 대신 심으라고(그럼으로써 쌀값 보장 책임을 회피하려고) 권유한 논콩이 대량 식재되는 과정에서 늘어났다.

하물며 이러한 병해충을 농약 없이 대응해야 하는 친환경 사과농가들의 심정은 어떠할까? 무기도, 방패도 없는 백성이 거란군 기마부대를 맞닥뜨린 기분일 것이다. 백성에게 줘야 할 무기와 방패는 무엇일까? 최소한 석회보르도액 등 친환경 약재를 통해 어떻게 효과적인 방제가 가능할지 정부·연구기관 차원에서 연구해야 하건만, 현장 농민들은 연구기관에서 그러한 연구 한 번 없었음을 비판하고 있다.

국가가 ‘과일계의 쌀’ 사과를 이토록 외면하고, 사과농업의 앞날을 포기한 채 미국산 사과 수입카드를 만지작거리는 이 상황 자체가, 사과 재배 농민에겐 ‘절멸의 징조’다. 농민들은 절멸도, 월북도 안 된다고 단호하게 외치고 있다.

이 시점에서 다시금 농민 한 분을 호명하고 싶다. 친환경 사과 재배 농민이자, 열심히 아스팔트 농사짓던 유기농민 유문철님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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