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북녘은] 식량난 대 의식주

  • 입력 2024.01.28 18:00
  • 수정 2024.01.28 20:18
  • 기자명 김일한 동국대 DMZ평화센터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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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한 동국대 DMZ평화센터 연구위원
김일한 동국대 DMZ평화센터 연구위원

 

연말 연초 김정은 위원장은 공개적인 자리에서 매우 이례적인 용어 두 개를 사용했다. ‘식량난’과 ‘의식주’다.

지난해 말 김정은 위원장은 2023년 국가 경제실적에 대해 “올해처럼 경이적인 승리와 사변들로 충만된 해가 없었던 반면에 지난해(2022년) 농사를 잘 짓지 못하여 심각한 식량난을 해결해야 했다”고 평가했다. 아울러 국가경제실적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김 위원장은 2020년 대비 2023년 국내총생산액이 140% 증가했고, 금속공업이 평균 270%, 공작기계부문이 510%, 그리고 농업에 필수적인 질소비료 생산이 130% 증가했다고 밝혔다. 그중에서도 2023년 식량작물을 생산계획 대비 103% 증산하면서 2023년도 “경제사업에서 달성한 가장 귀중하고 값비싼 성과”라고 치하했다.

김정은 위원장의 식량난 발언과 함께 최근 북한 언론은 식량문제와 관련해서 과거와는 다른 이례적인 보도를 이어가고 있다. 2023년 초 “개성시민인민들은 식량문제로 하여 참으로 어려운 난관(노동신문, 2023년 10월 29일)”을 겪었으며, “황해남도에서 지난 시기 영농사업에서 나타나던 여러가지 페단(노동신문, 2023년 12월 31일)” 등 농업생산에서 발생한 문제들을 적나라하게 보도하고 있다. ‘식량난’, ‘어려운 난관’, ‘페단’ 등 국가적으로 숨기고 싶은 사실을 이례적으로 공개하는 의도가 미스터리할 정도다. 과거의 사례를 보면 그렇다는 것이다.

몇 가지 이유를 추론해 볼 수 있다. 먼저, 식량위기가 대응이 가능한 수준이었다. 둘째, 문제를 드러냄으로써 농업생산성을 강화하는 기회로 삼았다. 셋째, 향후 농업부문의 긴장감을 조성하기 위한 충격요법 등이다. 결과적으로 개성시 등 일부 지역에 식량문제가 발생한 것은 사실로 보이지만 전국적인 현상으로는 평가하기는 어려우며, 또한 아사자가 발생할 정도의 위기는 아닌 것으로 판단되는데 김정은 위원장의 ‘식량난’ 발언이 아사자 발생을 전제한 표현으로 해석하기에는 무리가 따르기 때문이다. 분명한 것은 2022년 식량증산 실패가 2023년 농업·농촌부문 예산을 대폭(14.7%) 증액해 농업 인프라를 보완 개선하는 계기가 됐다는 점이다.

한편 북한에서 대중적으로 쓰이는 ‘식의주’ 대신 김 위원장은 ‘의식주’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1985년 김일성 주석이 의식주를 식의주로 고쳐쓰기를 주문하면서 식의주가 공식적인 용어로 사용된 지 39년 만에 의식주라는 용어가 다시 등장한 것이다. 선대와의 차별성보다는 국가 정책의 우선순위 변경을 염두에 둔 변화로 해석할 여지가 있다. 식용, 가공용, 사료용 등 식량작물이 여전히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의복, 주택 등 인민생활 향상을 위한 종합적인 정책추진을 고려했을 가능성이 높다. 부족하지만 농업 생산성이 일정한 수준에서 상향 안정화되고 있다면 충분히 고려할만한 정책적 선택이기 때문이다. 김 위원장이나 연설문 작성자의 실수가 아니라면 말이다.

‘전쟁’, ‘적대적 두 국가’와 같은 험악한 비난에 묻혀 주목받지 못했지만, 최고지도자가 ‘식량난’이라는 국가적 치부를 드러내고, 40여년 간 쓰던 식의주를 ‘의식주’로 바꿔쓰는 등 북한 내부에서 또 다른 변화가 진행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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