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자재 자가제조, 그 험난함 견디고 희망 찾은 농민들

수확량 감소 및 원료 수급 위한 ‘고생길’ 감수 … 시행착오 겪으며 자가제조 실험 진행

  • 입력 2024.01.07 18:00
  • 수정 2024.01.07 18:28
  • 기자명 강선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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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강선일 기자]

농자재를 직접 만들어 쓰는 친환경농민들이 있다. ‘농자재 자가제조’는 유기농업의 원칙 중 하나라지만 원칙 지키기가 어디 말처럼 쉬운가? 때로는 직접 원료를 찾고자 발품을 팔아야 하고, 농자재를 만들어 쓰는 과정에서 온갖 시행착오를 거쳐야 한다. 그럼에도 생산비 절감, 외부투입재 최소화, 자원순환 등의 목적으로 농자재를 만들어 쓰는 농민들의 노력은, 기후위기 시대 현장의 대안 모색 사례로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일부나마 그 사례를 살펴보자.

경북 김천시 대덕면의 ‘자연그대로 영농조합법인(대표 문동원, 자연그대로)’은 친환경 토마토를 전문적으로 재배하는 영농조합이다. 2010년 김천시농민회 회원 일부가 ‘친환경 토마토 재배를 통한 농가소득 안정’을 표방하며 결성한 자연그대로 작목반이 모태로, 2020년 영농조합법인으로 전환했다.

자연그대로는 오직 여름에만 토마토를 재배한다. 토마토를 1년에 두 번 재배할 시 토양이 쉬지 않고 일해서 토양이 지치고 토마토의 품질도 떨어지므로, 토양을 최대한 관리해 여름 작기(6~10월)에만 집중적으로 토마토를 재배하는 것이다. 여기서 관건은 토마토를 친환경적으로 잘 재배하기 위한 ‘토양 관리’다. 이를 위해 조합원들은 토마토 재배용 퇴비를 자가제조한다.

매년 1~2월, 자연그대로 조합원들은 김천 일대의 산야를 누빈다. 퇴비의 핵심 원료인 부엽토와 갈대를 채취하기 위해서다. 대체로 산야에 쌓인 눈이 슬슬 녹고, 습기도 사라지는(습기가 남은 흙을 모으면 흙이 더 무거워서 운반이 어렵다) 1월 중순부터 부엽토 수집에 나선다.

부엽토 수집 작업은 약 20일간 진행하며, 하루 1톤씩 총 20톤 가량의 흙을 모은다. 갈대의 경우 강가에서 베어 모아 분쇄한 뒤 퇴비 재료로 활용한다. 부엽토와 갈대, 부식토, 버섯 배지, 인근 정미소에서 구한 미강, 직전 해 토마토 수확 뒤 남은 토마토 대 등을 섞어 퇴비를 만든다(3월).

토마토 수확이 끝난 직후인 11월부터 돌려짓기를 시작하는 보리도 토양 관리 과정의 핵심 원료다. 퇴비는 4~5월에 걸쳐 발효 작업(2회에 걸친 뒤집기 작업)을 진행한 뒤 5월 말 보리를 갈아엎은 밭에 100평 당 약 350kg씩 살포한다. 이 과정에서 보리도 갈아서 땅에 넣는다. 보리 재배 뒤 녹비작물로서 토마토 재배 토양에 투입해 염류집적(토양에 투입된 양분이 과다하게 쌓여 오히려 작물 생장을 방해하는 상황) 문제를 해소하는 것이다.

지난해 3월 경북 김천 자연그대로영농조합 회원들이 지역에서 모은 원료로 만든 퇴비의 2차 교반작업(퇴비를 휘저어 섞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자연그대로영농조합은 지역에서 조합원들이 모은 부엽토 및 갈대, 미강 등을 퇴비의 원료로 활용한다. 박경범 자연그대로영농조합 기획이사 제공
지난해 3월 경북 김천 자연그대로영농조합 회원들이 지역에서 모은 원료로 만든 퇴비의 2차 교반작업(퇴비를 휘저어 섞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자연그대로영농조합은 지역에서 조합원들이 모은 부엽토 및 갈대, 미강 등을 퇴비의 원료로 활용한다. 박경범 자연그대로영농조합 기획이사 제공

이러한 노력으로 거두는 성과는 무엇일까? 첫째, 생산비가 절감된다. 박경범 자연그대로 기획이사는 “토마토 농사 과정의 농자재 투입비용은 일반 토마토 농사 대비 약 5분의 1 수준”이라고 밝혔는데, 그 이유를 들어보자.

“농협에서 공급하는 20kg짜리 퇴비 한 포대당 가격은 4,000원대(정부·지자체 보조금 지원 시 2,000원대)다. 100평 기준으로 약 40포대를 투입하는 게 일반적이니, 미보조 시 약 16만원, 보조 시 약 8만원이 투입된다. 1,000평 기준이면 미보조 시 약 160만원이 투입되는 거다. 반면 자연그대로는 직접 산야를 다니며 모은 부엽토와 갈대 등으로 퇴비를 만들어 쓰니, 별도로 퇴비를 구매하지 않아도 되는 거다. 그나마 들어가는 비용은 부엽토 등 원료 수집 작업 시 쓰이는 차량(8명의 자연그대로 조합원이 함께 이용) 기름값과 식비, 미강 5포대 구입비용 정도다. 미강 또한 5포대 다 해봐야 50만원이고, 구입한 미강을 조합원이 나눠 쓰니 개인 부담은 크지 않다.”

둘째, 수익도 안정적이다. 자연그대로 조합원들의 토마토 경작면적은 도합 1만2,000평으로, 농가 한 가구당 평균 1,500평 가량 경작한다. 지난해 기준 자연그대로의 전체 조수익(생산비를 빼지 않은 전체 수익)은 8억원으로, 한 농가당 평균 1억원의 조수익을 거둔 셈이다. 조수익 중 빼야 할 생산비는 △조합원 자조금 20%(지난해 기준 약 2,000만원) △개별농가 인건비 7%(약 700만원) △기타 부재료 비용 3%(약 300만원) 등 30%로, 나머지 70%(약 7,000만원)가 순수익이라는 게 박경범 기획이사의 설명이다.

참고로 자연그대로는 모든 농작업을 8명의 조합원이 공동으로 진행한다. 부엽토 등 퇴비 원료 수집도, 퇴비 제조도, 토마토 농사도 모두 함께한다. 각 조합원이 거둔 한 해 수익의 20%씩 거출한 자조금을 모아 공동 생산비 및 교육·운영비로 활용한다. 그러다 보니 농민들로선 인건비(토마토는 여타 작물 대비 수확 작업이 어려운 편이 아니라 인건비가 많이 들진 않음) 및 일부 부재료 비용 이외의 개별 비용은 들지 않는다.

셋째, 토양 관리에 따른 토마토 품질 향상이 이뤄졌다. 박 기획이사는 “일반 토마토의 당도는 10브릭스를 넘기기 쉽지 않은데, 자연그대로에서 생산하는 토마토는 11~12브릭스 가량 된다”고 한 뒤 “경도, 즉 튼실함 또한 뛰어나다. 일반 토마토는 상온에 두면 순식간에 물러지는데 우리 토마토는 상온에서 두 달 가량 보관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자연그대로에서 생산한 토마토는 전량 ㈜흙살림에 납품되며, 흙살림을 통해 수도권 학교급식에 공급된다.

물론 성과를 거두기까지의 과정은 녹록지 않았다. 친환경농사를 통해 지금과 같은 토마토 품질을 확보하려면 장기간에 걸친 토양 순환체계 구축이 필요한데, 이를 위해 농사 초창기 5년간은 일반 토마토 재배 대비 감소하는 수확량을 감수해야 한다는 게 박 기획이사의 설명이다. 그러다가 5년이 지나고선 토양 재생력이 복원되고, 그에 따라 2회 이상 토마토 연작을 하지 않는다는 가정하에 여름 작기 토마토 생산량도 늘어난다는 것이다.

지난 세월 동안 자연그대로 조합원들이 감수해야 한 것은 토마토 수확량 감소만이 아니었다. 생산비 절감을 위해 한겨울 중 3주일간 산야를 누비며 부엽토를 ‘긁어모으는’ 작업은, 박 기획이사가 “놀러 다니는 셈 치고 다녔다. 겸사겸사 같이 술도 먹고”라고 태연자약하게 이야기한 것과 별개로 ‘사서 고생’하는 일이었다.

고생고생하며 모은 원료로 퇴비를 만드는 과정의 기술적 어려움도 컸다. 농민들이 자체적으로 퇴비 성분 분석을 하기도 어렵고, 그렇다고 원료 배합기준을 전문기관에 의뢰하기도 어려운 상황에서, 농민들은 스스로 퇴비를 만들고, 스스로 배합기준을 맞춰 토양에 퇴비를 뿌렸다. 당연히 명확한 배합기준을 찾는 데도 10년 남짓한 시간이 걸렸고, 실패도 많이 겪었다. 이러한 시행착오가 쌓인 결과, 자연그대로는 과거보다 안정적으로 토양을 관리하며 친환경 토마토를 생산하게 됐다.

박 기획이사는 “쿠바에선 정부기관·연구조직 차원에서 유기농업 확대를 위해 자연에서 확보한 원료로 만든 퇴비의 배합비율 등을 연구한다. 농민들은 정부에서 만든 데이터를 갖고 배합하면 되는 거다. 반면 우리나라에선 연구기관의 연구도 대기업 농자재 사업과 연계해서 진행되다 보니, 지역 자원순환형 퇴비 관련 연구는 부족한 상황”이라며 “현장에서 농민들이 진행하는 다양한 실험에 대해 연구지원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는 바람을 밝혔다.

경기도 김포시친환경농업인연합회와 김포시 농업기술센터 간 공조하에 만든 친환경 비료들. 이 중 가장 오른쪽의 `바이오락토 유산균 발효액'은 유기농업자재로 공시됐다.
경기도 김포시친환경농업인연합회와 김포시 농업기술센터 간 공조하에 만든 친환경 비료들. 이 중 가장 오른쪽의 `바이오락토 유산균 발효액'은 유기농업자재로 공시됐다.

한편으로 생산자조직, 지역 농업기술센터, 지역 기업 간 연계로 친환경농자재를 만들어 농작물의 질을 향상시켜 온 경기도 김포시친환경농업인연합회(김포친농연)의 사례도 눈여겨볼 만하다.

김포친농연 농민들은 김포시 농업기술센터와의 연계하에, 지역 소재 식품기업 ㈜쎌바이오텍이 유산균 식품을 생산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발효액 여액(유산균을 걸러내고 남은 액체) 및 지역 내 양조업체인 문배주양조원이 술을 만드는 과정에서 발생한 주정박(술지게미) 등을 활용해 미생물 농자재들을 만들었다. 그중 ‘바이오락토 유산균 발효액’의 경우,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에 의해 유기농업자재로 공시됐다.

신소희 김포친농연 정책총괄이사는 생강 재배 과정에서 자가제조 농자재를 활용함에 따라 생긴 변화를 언급했다. 신 정책총괄이사는 “생강 캘 때 (생강 뿌리에 붙은) 흙을 떨어내는 게 의외로 큰일이다. 흙이 잘 안 떨어지다 보니 손톱으로 흙을 긁어내다가 손톱이 빠질 정도다. 그런데 지난해 자가제조 비료를 사용한 뒤엔 생강 자체도 과거보다 튼실하게 잘 자랐고, 흙이 파실파실해져 땅에서 생강을 캐낼 때 자연스레 흙이 다 쏟아졌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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