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수농자재지원조례, 제2의 농민수당으로 확산해야

  • 입력 2023.12.17 18:00
  • 수정 2023.12.17 18:52
  • 기자명 한국농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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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역지자체 최초로 전라북도에서 필수농자재지원조례가 통과됐다. 지난 13일 열린 전북도의회 본회의에서 재석의원 29명은 ‘필수농자재지원조례안’을 만장일치로 가결해 주목받고 있다.

필수농자재지원조례는 생산비 폭등과 농산물 가격 폭락 사이에 숨통을 틔워보자는 농민들의 절박한 요구에서 출발했다.

농사를 짓는 데 꼭 필요한 농자재값 폭등세는 심각한 상황이다. 지난 11월 오미화·박형대 전라남도의원이 주최한 생산비 폭등과 농가경제 대책을 논의하는 긴급현안 토론회에서 정부가 적극 추진하는 스마트팜 농가가 하소연을 했다. 6,400평 유리온실 스마트팜에서 미니파프리카를 키우는 이 농가는 최근 3년간 비료·유류비·전기요금 등이 적게는 40% 많게는 90% 올랐다고 실상을 전했다. 관행 농민들도 농자재값 폭등 부담은 마찬가지다.

통계청이 발표한 ‘2022년 농가판매 및 구입가격 조사 결과’에도 농자재값 폭등 실태가 드러나 있다. 통계청 농가구입가격지수는 농축산물 72개 품목의 지난 2015년 가격을 기준삼아 100으로 두고 이보다 얼마나 올랐는지 또는 얼마나 내렸는지를 판단하는 지표다. 실제 2022년 농가구입가격지수는 125.5로 전년 대비 12.7% 상승한 것으로 조사됐다. 품목별로 세분해 보면 비료가 전년 대비 132.7% 올라 상승폭이 가장 컸고, 영농광열비 66.9%·영농자재비 29.2%·판매자재비 23.8%·사료비 21.6% 순으로 가격이 올랐다. 노무비 상승률도 높아 전년보다 13% 상승한 것으로 조사됐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농촌현장에서 체감하는 농자재값 상승률이 통계청 수치보다 훨씬 높다는 점이다.

반면 농산물값은 상승한 농자재비가 전혀 반영되지 않고 있다. 농민들은 면적을 줄여 생산비 부담을 최소화하거나 수십 년 동안 재배하던 작목을 바꾸면서 버티고 있다.

그러다 지난해부터 ‘필수농자재지원조례’ 운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배보다 배꼽이 더 큰’ 농사의 자구책 마련에 나선 것이다.

이번 전북도의 조례 통과는 광역지자체 최초라는 의미 외에도 현장 농민들과 연구자, 농민 출신 도의원 등이 직접 학습하며 바닥부터 준비해온 성과라는 데 큰 의미가 있다. 9월엔 관련 심포지엄을 개최해 농민은 물론 전북도정과 도의회, 전문 연구진이 함께 논의를 이어갔다. 생산비를 보장해야 농가소득을 유지하고 이를 통해 농업재생산이 가능하다는 논리를 강화하면서 필수농자재지원조례의 필요성과 의미를 알려 나간 것이다.

물론 이번에 전북도의회를 통과한 필수농자재지원조례에 아쉬움이 없는 것은 아니다. 예산부담을 느낀 전북도와 절충점을 찾다 보니 지원기준이 다소 두루뭉술해졌다. 당초 조례안에는 ‘지원 대상 필수농자재의 가격이 최근 5년 동안 최고·최저 가격을 제외한 평균 가격의 5% 이상 폭등할 경우 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결정한 인상된 금액의 전부 지원’하도록 돼 있었으나, 심의를 앞두고 ‘5%’와 ‘전부’라는 규정이 빠지게 됐다. 그럼에도 필수농자재 인상 문제를 농민 개개인이 감당하는 게 아니라 행정에서 인상 대책을 세울 수 있도록 한 것은 큰 의미다.

전북도의 조례 통과 바람은 더 강하게 불 것으로 예상된다. 이미 지난 9월 전국에서 가장 먼저 충남 공주시가 조례를 제정했으며, 경북·충남에선 주민조례청구가 진행 중이다. 제주에서도 관련 토론회를 열고 제도마련에 적극 나서고 있다.

필수농자재지원조례는 이제 농민들에게 보통명사가 된 ‘농민수당’의 뒤를 이어 마음편히 농사지을 수 있는 보완대책으로 확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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