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북녘은] 우리는 무엇을 알고 있는가

  • 입력 2023.12.17 18:00
  • 수정 2023.12.17 18:52
  • 기자명 염규현 통일디자인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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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규현 통일디자인연구소 연구원
염규현 통일디자인연구소 연구원

 

어느 매체에 실린 탈북민의 고향 이야기를 읽었다. 강냉이에 얽힌 사연이었다. 1990년대를 회상하며 글쓴이는 “그 당시 우리에겐 쌀값이 아닌 장마당 강냉이값이 살아가는 모든 지표의 기준”이었다고 표현했다. “굶지 않으려면, 아니 죽지 않으려면 강냉이가 있어야 했다”는 것이다. 고난의 행군 시기, 처참했던 북한의 풍경을 그대로 보여주는 글이었다. 필자의 글을 통해 그가 2000년대 중반 탈북했음을 알 수 있었다. 때문에 그는 지금도 “가끔 북한 소식을 듣는 기회가 되면 쌀값보다는 강냉이값을 묻는다”고 말했다. 그에게 강냉이는 여전히 북한 주민들의 주식이다. 씹어도 씹어도 깔깔한 식은 강냉이밥에 대한 기억이 그의 뇌리에서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비교적 최근 탈북한 이들의 이야기는 그의 ‘추억’과는 사뭇 다르다. 강냉이밥 이야기를 하면 언제 이야기를 하느냐는 표정이다. 요즘 북한에서는 쌀보다는 오히려 빵을 더 많이 먹는다는 다소 생경한 이야기도 듣게 된다. 정말 지금 북한에서 강냉이밥은 ‘추억’이 돼버린 걸까.

그러다 뉴스 하나를 접했다. 최근 북한을 방문한 러시아 연해주 주지사와 북한 대외경제상이 회담을 열어 경제 분야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는 소식이다. 코제먀코 연해주 주지사는 11월 현지 매체 인터뷰를 통해 북한과 관광·통상·농업 분야 협력 방안을 논의할 예정이라고 밝힌 바 있다. 그리고 이번 회담을 통해 북한 조선국제무역촉진위원회와 연해주 정부 간에 ‘무역경제협조쌍무실무그룹 제13차 회의 의정서’가 조인됐다.

우리 정부는 북한과 연해주와의 이번 회담에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제재 결의 위반인 북한 노동자 파견 문제가 주요하게 논의됐을 것으로 분석했다. 아울러 국가정보원은 북한이 최근 대러 노동자 파견을 추진하는 움직임이 있어 관련 동향을 주시 중이라고 밝혔다.

물론 코로나19 이전 북한 당국이 야심 차게 준비했던 관광산업을 재개하기 위한 움직임일 수도 있고, 노동자 파견 등 외화벌이를 위한 논의도 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탈북민에게 들은 ‘빵’ 이야기와 뉴스가 겹치며 얼마 전 북한 소식에 정통한 전문가로부터 전해 들은 이야기가 불현듯 떠올랐다. 그것은 연해주에서의 밀 생산에 관한 이야기였다. 전문가 이야기에 따르면 이미 김정일 국방위원장 시절 연해주에서 밀 생산에 대한 합의가 있었는데, 이후 국제제재 등 여러 사정으로 추진되지 못했다가 코로나19로 완전히 멈췄다고 한다. 그것을 이제 다시 본격적으로 시작하려 한다는 것이다. 이번 북한과 연해주와의 회담과 의정서 조인 등을 통해 그의 이야기에 한층 더 무게가 실린 셈이다. 북한이 러시아에 과거와 비슷한 수준의 노동력을 제공하고 대신 연해주에서 밀을 생산해 일정량을 가져갈 수도 있을 것이다. 향후 더 상황을 지켜봐야 명확히 알 수 있을 테지만 연해주 주지사가 ‘농업 분야’의 협력을 언급한 만큼 가능성은 충분히 있어 보인다.

늘 굶주리고 처참한 북한의 모습만을 기억하는 이들에게 북한이 자국 인민들의 높아진 수요를 충당코자 러시아에서 밀 농사를 짓는다는 것은 쉽게 상상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최근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평안북도 신의주의 밀가공 공장 개건 현대화 공사가 마무리됐다고 보도한 바 있다. 여전히 강냉이가 주식이라면 선뜻 이해되지 않는다. 이쯤에서 자문해본다. 내가 알고 있는 북한은 어디에 멈춰있을까, 우리가 알고 있는 북한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그리고 바로 오늘의 북한은 우리들의 ‘상상’과 ‘추측’에서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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