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계 다다른 한우 소농 … “소 먹이기 정말 어렵네요”

  • 입력 2023.12.03 18:00
  • 수정 2023.12.03 18:04
  • 기자명 한우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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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한우준 기자]

그리 넓지 않은 축사임에도 소를 키우는 공간이 비어 있다. 전남 구례에서 40두 규모로 한우를 사육중인 김일순씨는 “차라리 일용직 일을 더해서 소를 먹이는 게 낫겠다는 생각도 한다”고 말했다. 한승호 기자
그리 넓지 않은 축사임에도 소를 키우는 공간이 비어 있다. 전남 구례에서 40두 규모로 한우를 사육중인 김일순씨는 “차라리 일용직 일을 더해서 소를 먹이는 게 낫겠다는 생각도 한다”고 말했다. 한승호 기자

 

조사료도 긁어모으고 일용직도 해보지만…

전남 구례군 구례읍에서 한우 40두를 키우는 김일순씨는 한우 사육농민이자 감나무 재배농민이며, 또한 트럭에 장비를 싣고 다니며 트랙터 바퀴를 출장 정비하는 수리기사이기도 하다. 이날도 김씨는 경남 하동군 화개면에 정비를 나갔다 땅거미가 지고서야 집으로 돌아온 뒤 랜턴 불빛 아래서 사료를 급이하고 있었다.

여기에 요즘은 조사료 값을 최대한 절약하기 위해 틈만 나면 여기저기 남의 논까지 찾아다니느라 김씨는 요새 말 그대로 ‘눈코 뜰 새’가 없다. 김씨의 우사 곳곳에선 흔히 볼 수 있는 ‘롤’ 형태가 아닌, 작은 정육면체에 가까운 볏짚 더미가 눈에 띄었다. 김씨는 “배합사료에 들어가는 돈은 농가가 어떻게 해볼 수가 없어서 조사료 비용이라도 아끼려 하고 있다”라며 “볏짚 사일리지를 통으로 사게 되면 지역에 따라 7만원에서 8만5,000원까지도 가는데, 옛날 방식의 재래식 기계를 하나 사서 트럭에 싣고 직접 논에 가 이렇게 사각으로 묶어서 가져오는 방식으로 조금이나마 원가 절감을 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사륜구동이 아닌 트럭을 논 안에 들일 수 없다보니, 만든 볏짚 더미는 전부 인력으로 끌어내 실어오고 있다. 한정된 자원으로 하는 이 수작업에 너무 많은 노동력이 들어가다보니 피로감이 극에 달한 상황이지만 별 수가 없다. 소득의 또 다른 한 축이었던 감 농사는 기후위기로 작황이 좋지 못해 계속 줄이고 줄여 이제는 별 도움이 되지 않는 상황이고, 트랙터 타이어 수리 역시 개인 출장 정비사가 아닌 타이어 브랜드에 직접 맡기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마치 ‘한우 소농’과 비슷한 처지가 되고 있다고 푸념했다.

그래서 요즘은 차라리 일용직을 더 해서 소를 먹이는 게 낫겠다는 생각을 하는 동시에, 이런 식으로 언제까지 영농이 지속될 수 있을지 몰라 고민이 깊다고 말했다. 소를 계속 먹이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다 하고 있지만 딱히 희망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당장 사료구매자금 등을 위해 받은 대출의 원금상환이 시작되는 것이 두렵다. 사실상 소를 줄이며 대응할 수밖에 없고, 소값이 좋지 않아 생각보다 더 많은 소를 팔아야 함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김씨는 “송아지가 개량이 잘 돼고 400만~500만원씩 받고, 비육소도 1,000만원씩 받지 않는 이상 지금 수익을 내는 농가는 아마 없다고 본다. 내년에 kg당 1,000원은 더 떨어질 수도 있다는데 그 정도면 아마 상당히 많이 무너질 거다. 우리 지역도 이미 내놓은 축사가 많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현재와 같은 식의 처방은 얼마를 계속하더라도 한우산업을 살리는 데는 무용일 것이라 비판도 했다. 김씨는 “무관세로 대량 수입해 놓고 농가들 직접 지원은 동물 약품 몇 통이 전부다. 대책이라는 게 농가 부채만 계속 늘리고 있다”라며 “이럴 바에는 차라리 포기했다는 걸 인정하고 폐업지원이라도 해주는 것이 차라리 나은 대책”라고 비꼬았다.

 

불안함 속에 고민하는 후계농들

상황이 이렇다보니 지성과 체력을 겸비한 젊은 후계농들 역시 한우사육에서 별다른 희망을 보지 못하긴 마찬가지다. 이들을 통해 접한 문제 모두, 정부 역시 각종 한우산업 대책을 통해 크고 작은 줄기로 다뤄 보려 했던 것들이지만 현장에선 여전히 큰 애로로 남아 있었다.

후계농 안모(31)씨는 사룟값 폭등시기 대출을 받아 급한 불을 껐던 주변 농가들이 결국 폐업을 고민하는 모습을 보고 있다. 영농환경이 크게 나아지지 않은 상황에서 대출상환과 사육을 양립하기 어려운 소규모 농가들은 결국 사육을 포기하게 될 거라 얘기했다. 그는 “내년부터 사료구매자금 상환이 도래하는 지역 동료 농가들 몇몇은 결국 접을 고민을 하는 것 같다”라며 “대농들과 달리 소농들은 자금 회전력이 좋지 못해 결국은 소를 팔아야 상환이 가능한데 소 값이 워낙 좋지 않다보니 그만둘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마찬가지로 대학을 졸업하고 부모의 번식우 육성전문농장을 돕고 있는 A(32)씨는 요즘 부업에 뛰어드는 걸 고민하고 있다. 그는 “사룟값 인상이 너무 크다. 사건 하나 터지면 사룟값은 가파르게 오르는 반면 인하를 할 때는 터무니없이 조금 내린다. 결국에는 자가 배합을 해야 하는 실정인데 저 혼자서는 어림도 없다. 부모님 세대는 소만 있으면 먹고 살 순 있다곤 했는데, 저도 지금까지 해온 게 축산이니 계속하긴 하겠지만 사실 앞이 불투명해 보인다”라며 “도축장에 보낼 때는 한 마리 600만원, 700만원밖에 안하는 소가 시장에서는 가격이 엄청나게 뻥튀기 되는데, 키우는 사람도 비싸서 못 먹는 소를 소비자들이 얼마나 사먹겠냐는 생각이 든다”라고 말했다.

 

 

전남 강진군 성전면의 축사에서 한 농민이 소에게 먹이로 줄 볏짚을 풀고 있다. 한승호 기자
전남 강진군 성전면의 축사에서 한 농민이 소에게 먹이로 줄 볏짚을 풀고 있다. 한승호 기자

 

 

“농가 전체 보듬을 수 있는 정책, 사룟값 파고 막아줄 방파제 필요”

농가들의 지속 가능한 한우영농에 관심이 많은 업계 관계자들은 한우 농가 집단 전체가 혜택을 누릴 수 있는 보다 근본적인 제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명길 전국한우협회 음성군지부장은 한우 농가들에게 직접적인 지원이 돌아갈 수 있는 사업들이 한우산업 대책에 포함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대책의 주력으로 취급받는 사료구매자금 사업은 절대 농가 전체를 위한 정책이 아니며, 각종 자재비 등 생산에 드는 실비에 대한 지원사업이 차라리 도움이 될 것이라고도 덧붙였다. 무엇보다 사료업계와 함께 하루라도 빨리 사룟값을 낮추는 데 전력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김 지부장은 “지금 금리를 생각하면 현금 여력이 되는 대농들에게 있어 이 사업은 대출을 넘어 이익이다. 하지만 중소농가들은 사료회사로 곧장 들어가 몇 달이면 사룟값으로 사라지는 2,000만원짜리 빚을 더 얻을 뿐이다. 지역 내 상환이 다가온 농가들은 주변에 말도 못하고 소를 팔아 없애거나 더 비싼 대출을 얻을 궁리만 하고 있다”라며 “원료곡 가격이 상당히 내려갔는데, 하루 빨리 최대한 낮은 사룟값을 실현하는 게 조그만 농가도 다 혜택을 보는 길”이라고 말했다.

황명철 박사(전 한우정책연구소 부소장)는 일각에서 제기하는, 그리고 이웃나라 일본에서 이미 시행 중인 ‘사료가격안정장치’의 도입이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다시금 강조했다. 황 박사는 “우리 사룟값은 해외 원료곡 수급 상황이나 환율, 수송비용, 정세의 영향을 모두 받을 수밖에 없어 항상 불안에 노출돼 있는데, 그렇다면 이에 대해 충격을 흡수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게 국가의 역할”이라며 “파도가 잦은 것은 아니니 평상시에 국가, 사료업체, 농가들이 조금씩 준비해 기금을 만들어 둔다면 사룟값이 급등했을 때 농가들이 부담을 최소화하며 영농을 지속할 수 있는 만큼 사료안정기금과 같은 제도적 장치를 만들어 둘 필요가 있다”라고 제안했다.

예컨대 기금을 충실히 준비해 뒀다면, 최근 사례와 같이 사료값이 30% 이상 오르더라도 20%는 기금으로 대처하고 나머지 10%의 부담만 지울 수 있다는 것이다. 황 박사는 그와 함께 “사료업체들이 원료곡 시세가 낮을 때 집중적으로 곡물을 비축할 수 있도록 정책자금을 지원해 원가를 최대한 낮출 수 있도록 하는 방안도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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